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이달 말 정기 이사회를 열고 차기 회장 선임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번 이사회에서는 회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세부 일정과 구체적인 절차 등을 논의하게 된다. 은행연합회 이사회는 회장이 의장을 맡고 비상임이사로 참여하는 시중은행, 특수은행, 지방은행 등 11개 회원사 은행장으로 구성된다. 이사회가 회추위 역할도 맡는다. 이사회는 구성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성립하고, 구성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안건을 의결한다.
지난 2020년 12월 취임한 김광수 현 회장의 임기는 내달 30일 만료된다. 은행연합회장은 은행권을 대표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자리다. 임기 3년이 보장되는 데다 연봉이 7억원에 육박하는 고액이기 때문에 새 회장 선임 시기가 오면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김 회장의 연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평가다. 은행연합회 정관상 회장 연임은 1회 가능하지만 실제 연임한 사례는 드물다. 역대 은행연합회장 13명 가운데 연임에 성공한 인물은 1989년부터 3·4대 회장을 역임한 정춘택 전 회장 한명뿐이다. 김 회장 역시 일찌감치 대내외적으로 연임 도전에 선을 그어왔다.
이 중에서도 관료 출신이 대다수다. 은행장들은 관료 출신 은행연합회장을 선호해왔다. 은행연합회장이 정부와의 가교역할을 하는 만큼 정부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은행권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장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 수장들과 현안을 갖고 머리를 맞대며 이견을 조율한다.
관료 출신이라고 모두 은행연합회장을 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 고위 관료나 은행장 등을 거쳐 풍부한 경험과 연륜을 갖춘 인물이 낙점돼왔다. 관료 중에서는 경제부총리 출신이나 장관급 인사가 선임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앞으로 선출될 차기 회장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관료 출신, 은행장 경험, 지역색 등의 조건이 맞는 인사가 선임될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주요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등이 모두 교체된 데다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이 은행권 과점 체제 해소와 상생 금융 확대 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은행연합회에 관 출신 인사를 심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가 관치 금융 논란을 의식해 개입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관료 출신이 은행연합회 회장을 맡을 경우 ‘관피아’라는 수식어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는 여론이 일자 은행연합회장을 비롯한 주요 금융협회장 자리가 민간 출신으로 대거 교체됐다.
현재 차기 은행연합회장으로 다양한 민관 인사가 두루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관료 출신 인사 중에서는 윤종원 전 IBK기업은행장,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두 사람 모두 민관을 두루 거쳐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강점을 지녔다. 다만 최 전 위원장은 은행연합회장 자리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거시경제통’으로 꼽히는 윤 전 행장은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입문해 기획재정부 종합정책과장, 산업경제과장, 경제정책국장 등을 거쳐 대통령비서실 경제금융비서관, IMF(국제통화기금) 상임이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특명전권대사,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이후 2020년 1월 기업은행장으로 선임 돼 올 초까지 3년 임기를 지냈다. 윤 전 행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지만,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조정실장에 내정되기도 했다.
민간 출신으로는 주요 금융지주에서 회장을 지냈거나 용퇴를 앞둔 최고경영자(CEO)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먼저 최근 KB금융지주 회장 인선에서 양종희 회장 내정자와 함께 최종 후보 3인에 들었던 허인 KB금융 부회장이 후보군으로 꼽힌다. 허 부회장은 국민은행 설립 이래 사상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한 인물이다. 지난해 KB금융 부회장에 올라 현재 글로벌부문장 겸 보험부문장을 담당하고 있다. 허 부회장은 경남 진주 출생으로 대구고를 졸업해 정부와 접점이 많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서울대 법학과 80학번으로 같은 과 79학번인 윤 대통령의 1년 후배이기도 하다.
올 3월 퇴임한 손병환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도 거론된다. 손 전 회장은 1990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뒤 조직·인사제도혁신단 팀장, 기획조정실 팀장, 창원터미널지점장, 농협은행 스마트금융부장, 농협중앙회 농협미래경영연구소장, 농협금융지주 사업전략부문장, 경영기획부문장 등을 지내며 농협 내 대표적인 기획·전략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20년 3월 농협은행장에 오른 뒤 2021년 1월 내부 출신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농협금융 회장에 취임해 견조한 실적 성장세를 이끌었다. 현재 KB국민은행 사외이사를 지내고 있다.
오는 11월 임기가 만료되는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지난해 말 자리에서 물러난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지난 9년간 KB금융을 이끌어 온 윤 회장은 탁월한 경영 능력과 리더십으로 조직을 안정화하고 리딩금융그룹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회장은 ‘KB 사태’가 불거진 직후인 지난 2014년 11월 회장으로 취임해 회장과 은행장을 3년간 겸직하며 내분 사태를 조기에 수습했다.
적극적인 인수합병(M&A)과 실적 개선으로 KB금융을 리딩금융그룹으로 도약시키며 3차례 연임에 성공했지만 최근 용퇴를 결정했다. 윤 회장은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거취에 대해 “아직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임기가) 2개월이 남았으니 더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조 전 회장은 1984년 신한은행에 입행해 그룹 회장에 오를 때까지 신한금융 한 곳에 몸담은 정통 ‘신한맨’이다. 2017년부터 6년의 회장 임기 동안 우수한 재무·비재무적 성과로 신한금융을 명실상부한 국내 굴지의 금융지주사로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조 전 회장의 3연임을 유력시해왔으나 지난해 말 전격 용퇴를 결정했다.
IBK기업은행장을 역임한 조준희·김도진 전 행장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조 전 행장은 기업은행의 첫 내부 공채 출신 은행장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기업은행을 이끌었다. 이후 YTN 대표이사를 거쳐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직능본부 금융산업지원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올 초에는 우리금융 회장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김 전 행장은 1985년 기업은행에 입행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뒤 2016년 말 기업은행장에 올라 3년간 임기를 지냈다. 오랜 기간 대관 업무를 수행하며 정무적 감각과 폭넓은 인맥을 갖췄다는 평가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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