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구닫기김남구기사 모아보기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은 달랐다. 지난 14일 모교인 고려대학교를 찾은 83학번 경영대 출신 김 회장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2시간 동안 직설적 화법으로 소통을 이끌었다. 올해로 21번째 그가 직접 방문한 채용설명회 현장이었다.
다만, 미소 뒤엔 ‘배고픈 하이에나’가 있었다. 한국투자금융지주가 나아갈 길과 청년들이 가야 할 방향을 얘기할 때면 눈빛부터 달라졌다. “토큰 증권, 시장성 없다고 느낀다” “마이데이터(Mydata‧본인 신용정보 관리업) 활용 방안은 솔직히 구체적으로 계획이 안 나와있다” 등 회사 홍보팀이 난처할 수 있는 답변도 회장으로서 당당하게 얘기했다.
청년들이 인생을 걸고 회사를 선택하는 시기라는 점을 고려해 사치스러운 얘기를 빼고 필요한 문장만 직설적으로 골라냈다. 지주회장으로서 과하게 마이크를 잡고 본인 인생사와 회사 강점만을 늘어놓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회장으로서 보기 드문 소탈한 화법으로 청년들을 마주했다.
강연장을 ‘헝그리’로 메꾼 김남구 회장… 그 배경은?
“우리 회사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동원참치였어요. 현재는 대한민국 증권 최고 지주회사에 연봉에 있어선 대한민국 최고 직장이 됐습니다. 그냥 컸겠어요? 한국투자금융지주 핵심 자회사인 한국투자증권(대표 정일문닫기정일문기사 모아보기)은 그동안 선배들의 온갖 노력으로 만들어온 회사입니다. 우리는 뭔가를 꼭 이뤄내겠다는 ‘헝그리’ 정신을 가진 사람한테 기회를 드리고 같이 성장할 거예요.”
김남구 회장은 1000명에 가까운 취업 준비생으로 빼곡한 강연장을 ‘헝그리’ 한 단어로 채웠다. 헝그리 정신으로 무언가를 이뤄내겠단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헝그리’의 핵심은 뭔가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헝그리’를 강조한 역사적 인물은 몇 있다.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한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을 남겼고, 2002년 한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려놓은 거스 히딩크 감독은 16강 진출 이후 모두가 환희에 빠진 순간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라고 한 바 있다.
김남구 회장 역시 이러한 의도로 ‘헝그리’란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럴만한 설명을 보탰다.
한 학생의 짓궂은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유추할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 기업금융(IB‧Investment Bank) 부문에 입사 지원했다는 한 학생이 “한국투자증권 선배 몇몇으로부터 요즘처럼 IB 실적을 내기 어려운 시점엔 은행 계열인 NH투자증권(대표 정영채닫기정영채기사 모아보기)이나 KB증권(대표 김성현닫기김성현기사 모아보기‧박정림)으로 가는 게 낫다고 얘기 들었다”며 “한국투자증권은 항상 IB 리그 테이블(League Table‧순위표)에서 1위를 차지하는데 왜 그런 얘기가 나오냐”고 물었다.
그는 “그게 우리의 1등 비결”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은행이 있는 증권사에 가면 편할 수는 있겠지만, 은행이 없었기에 스스로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지금의 한국투자금융지주를 만들었다는 답변이었다.
그의 헝그리 정신 출발점은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 10월 10일 전남 강진군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동원그룹을 이끌어가는 아버지를 두고 있다. 김재철닫기김재철기사 모아보기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그의 동생인 김남정닫기김남정기사 모아보기 동원그룹 부회장과는 10살 터울이 난다.
‘현장경영’을 중요시하는 가풍에 맞춰 그는 철저히 도전 정신을 밑바닥에서부터 배웠다. 대학 졸업 무렵인 4학년엔 미국 알래스카행 명태잡이 원양어선에서 6개월가량 선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당시 하루 18시간씩 6시간만 자면서 명태를 잡았다.
증권업에 첫발을 뗀 건 1991년이다. 일본 게이오대학교 경영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온 뒤였다. 동원증권 전신인 한신증권 명동지점 대리로 시작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당시 한신증권은 국내에서도 중형 정도였다. 지점에서 고객과 바둑 둔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체계가 잘 안 잡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동원은 당시 이미 세계 굴지의 원양 기업이었고, 증권 쪽은 바닥으로 보였다”며 “주식도 쌀 때 사자는 것처럼 성장 우위가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증권회사를 이끌어가길 선택하게 됐다”고 전했다. 즉, 일하기 편한 곳을 찾기보다 개척할 곳을 선택한 것이다.
김 회장은 “한국투자증권 경쟁사가 어디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국내에선 경쟁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반에서 1등을 거머쥔 회사가 전교에서 1등 하려고 해야 하지 않겠냐”며 본받고 싶은 회사론 호주의 맥쿼리그룹(Macquarie Group Limited‧대표 셰마라 위크라마나야케)을 꼽았다.
도로‧항만‧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Social Overhead Capital) 투자에 있어 독보적인 전략으로 세계적인 금융사가 됐다는데 높은 평가를 줬다. 그는 “맥쿼리는 자기자본이익률(ROE‧Return On Equity) 20%로 대단히 높으면서도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한다”며 “그 능력을 쫓고 싶다”고 밝혔다.
“그동안 회사를 이끌면서 가장 큰 위기가 뭐였냐”는 질문엔 “가장 큰 위기는 아직 닥쳐오지 않은 위기”라고 말했다. 모든 게 영원하지 않듯 지금의 한국투자금융지주 역시 언젠가 망하는 날이 올 텐데 이겨내지 못하는 그 순간이 가장 큰 위기라는 얘기였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 자질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언급했다. 프랑스어인 이 말은 고귀한 신분(귀족)이란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더해진 단어다.
김 회장은 “과거 인류 역사 5000년의 절반 이상을 살아남은 로마 제국 슬로건(Slogan‧구호)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며 “저희 한국투자증권은 승진할수록 더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지도자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약간 결은 다르지만 헝그리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답답했던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헝그리’ 사례를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그러자 김남구 회장은 우회적으로 답했다. 모범답안을 제시하진 않았다. 그는 “여러분 스스로 얼마나 헝그리한지 물어보라”며 “거짓말은 들통난다”고 강조했다.
다만, 실마리를 줬다. 김 회장은 “세상 모든 게 궁금하지 않냐”며 “‘이게 왜 이렇게 될까?’ 호기심으로 시작해 ‘해보고 싶다’ → ‘쉽지 않네’ → ‘다시 도전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헝그리 정신이 발전한다”고 귀띔했다.
각종 현안에 ‘솔직’ 답변… 털털한 김 회장
김남구 회장은 각종 현안에 ‘솔직’한 답변으로 일관하면서 인상 깊은 모습을 남겼다.
최근 금융회사와 정보통신 기술(IT‧Information Technology) 간 융합이 일어나는 상황 속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블록체인(Blockchain‧공공 거래 장부), 토큰 증권 공개(STO‧Security Token Offering) 연계 사업 계획에 관한 질문에 본인만의 확고한 생각을 드러냈다.
김 회장은 “금융은 플랫폼, IT 회사가 아니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어서 그는 “플랫폼 종사자들은 저희와 생각이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바로는 금융회사에서 IT 역할은 사용자를 더 편하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라며 “IT를 위해 금융이 있는 게 아니다”고 피력했다.
같은 선상에서 가상 자산 관련 상품을 개발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자금조달을 통한 자본시장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하는 증권사 본업과 크게 관계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STO 시장 성장성에 관해서도 보수적 시각을 표했다.
그는 “대부분 투자 목적은 수익”이라며 “거래가 빈번하면 증권사는 수수료를 많이 받을 수 있을 텐데 부동산, 한우, 미술품 등을 토큰 증권화해서 거래하는 게 빈번할지 현재로선 의문”이라 말했다. STO 시장에서 가장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는 분야가 부동산일 것으로 전망되는데, 큰 차이가 없는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 회사) 시장도 침체기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의 마이데이터 서비스 ‘모이다’에 대해선 본인을 깎아내리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회장은 “마이데이터 사업은 제가 예산을 투입해 별로 성과를 못 낸 사업 중 하나”라며 “‘고객 데이터를 모으면 뭔가 될 것이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솔직히 아직 별로 결과가 좋지 않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아마 고객 데이터가 점점 쌓이고 우리가 분석할 수 있는 체제가 돼야 고객 개개인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계속 고민 중”이라 덧붙였다.
김남구 회장은 채용설명회 행사가 끝난 뒤 기자들과 10여 분 넘게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 자리에선 최근 가족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아버지가 이끄는 동원그룹의 HMM(대표 김경배) 인수에서 자본금 지원 논의가 오가는지, 장남인 김동윤 씨 경영승계는 언제부터 본격화되는지 등이었다.
사실 두 질문 모두 그에겐 불쾌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러한 질문은 회사 전체의 이미지와도 연관됐기에 답변을 피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는 기자들과도 미소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역시 ‘솔직’하게 말했다. 물론 모든 걸 얘기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내놨다.
우선 HMM 인수를 추진하는 동원그룹 인수 자금조달에 대해선 “동원그룹이 충분히 자체적으로 인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유동화할 수 있는 자산이 많은 점을 부각했다. HMM 인수 자금 지원 논의는 “아직 연락받은 바 없다”고 선 그었다.
경영승계와 관련한 기자 질문엔 “아들이 사람에 대해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아직 제가 은퇴하기엔 젊지 않아요?”라고 웃으면서 “아들도 동기들과 똑같이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경험을 쌓고 있는 만큼 본인이 진짜 이 업을 좋아하고 맞는지 스스로가 알아 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김 회장 장남인 김동윤 씨는 1993년생으로 지난 2019년 한국투자증권 공개채용을 통해 입사해 현재 본사 경영전략실에서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 김 씨 지분이 0.09% 높아지면서 경영승계 목적이 아니냐는 얘기가 업계에 돌았다.
한편, 한국투자금융지주 핵심 자회사인 한국투자증권은 다음 달 4일까지 서류 접수를 진행할 예정이다. 1997년 외환 위기 때도 인재를 계속 뽑는 등 성장세에 맞게 채용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최종 합격자는 직무역량 평가, 실무 면접, 채용 검진, 최종 면접을 거쳐 10월 21일 발표된다. 지주의 모든 직원은 김남구 회장이 직접 최종 면접을 본다.
현재 모집 분야는 ▲금융 포트폴리오 전문가(PB‧Private Banker)·금융영업마케팅(홀세일·법인 영업·퇴직연금) ▲본사 영업(IB·PF·국제) ▲운용(파생 운용·대체투자·FICC 운용) ▲리서치(Research‧연구) ▲본사 관리 ▲디지털 ▲플랫폼 등이다.
김 회장은 18일을 서울대학교 글로벌 공학교육센터에서 두 번째 채용설명회를 끝으로 올해 취업 준비생들과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대표는 지난 12일 연세대학교에 이어 오는 21일 한양대학교에서 채용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강연회가 열리는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 학생도 참여할 수 있다.
인자한 미소 뒤 ‘배고픈 하이에나’를 떠올리게 하는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해외 무대에서도 ‘헝그리 정신’을 입증할 수 있을까?
1년 뒤 진행될 22번째 그의 채용설명회가 벌써 기다려진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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