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 도약 키워드로 글로벌이 떠오르고 있다. 한국금융신문은 금융업권별 해외진출 현황, 성과와 한계점을 살펴보고, K-금융 경쟁력을 키울 제언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주요 시중은행이 글로벌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해외법인 실적은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시중은행 해외법인 순이익은 전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동남아시아와 중국 법인의 실적이 ‘극과 극’으로 나뉜 결과다. 은행들은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각 지역에서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둔 전략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해외법인 실적 반토막…신한·우리 약진 돋보여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해외법인 순이익은 1642억8800만원으로 전년(4880억2700만원)보다 66.3% 줄었다.해외법인에서 가장 많은 순이익을 거둬들인 건 신한은행이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0개 해외법인에서 4269억1700만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2021년(2568억400만원) 대비 66.2% 증가한 수치다.
동남아, 일본, 북미 등에서 전반적으로 증가했지만, 특히 신한베트남은행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1977억6600만원의 순이익을 올리면서 신한은행 해외법인 실적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신한은행은 1993년 국내 금융회사 중 가장 먼저 사무소 형태로 베트남에 진출해 베트남 5대 도시를 중심으로 지점을 늘렸다. 현재 외국계 은행 중 가장 많은 46곳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신한베트남은행의 현지 영업 확대를 통해 확보한 안정적인 고객 기반과 다변화된 사업 모델이 성장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말 기준 신한은행 대출 자산은 리테일 부문이 64%, 기업 부문이 36% 수준이다. 리테일 대출은 모두 현지 고객 자산으로 구성돼 있고, 기업 부문 에서도 현지 기업 자산이 48%, 한국계 기업 자산이 52%를 차지하고 있다.
사업 다각화도 신한베트남은행의 성장 비결로 꼽힌다. 강규원 신한베트남은행 법인장은 “신한베트남은행은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카론, 신용대출 등 다양한 리테일 상품을 제공하고 있고 기업 대상으로도 무역금융 서비스, 서플라이 체인 파이낸스, 외환 파생상품 등으로 비즈니스 구조를 다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법인인 SBJ은행과 신한은행중국유한공사의 순이익은 각각 1167억3500만원, 457억300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9.6%, 228% 뛰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1개 해외법인에서 2882억9600만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년(1745억9500만원)보다 65.1% 늘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 3대 법인의 성장세가 실적 증가를 견인했다. 인도네시아 우리소다라은행의 순이익이 전년 대비 44.6% 증가한 684억1200만원으로 가장 컸다.
황규순 우리소다라은행 법인장은 “기업부문과 개인부문의 적절한 포트폴리오 구성이 지속적인 성장세의 주요 요인”이라며 “기존 인니법인의 기업금융의 강점과 소다라은행의 개인 리테일 부분의 강점이 잘 조화된 결과 현재 기업과 개인 부분 대출자산 비중이 5대 5로 구성돼 균형적 성장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소다라은행은 기업금융 부문에서 지상사와 현지 기업 대상으로 여신뿐 아니라 종업원 급여 이체, B2B 등 결제성 거래 및 수출입 거래 등을 유치해 영업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또 인도네시아 진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자본금 유치 통해 기업 네트워크를 늘리는 중이다.
개인 부문에선 공무원 연금대출(KUPEN)과 직장인 신용대출(KUPEG)을 중심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개인대출 포트폴리오 다변화 통한 사업 영역 확장을 위해 주택담보대출과 자동차 할부금융도 확대하고 있다.
베트남우리은행의 순이익도 632억1600만원으로 131.1% 급증했다. 캄보디아 우리은행은 598억3600만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이들 법인의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32%에 달한다. 우리은행은 당분간 동남아 3대 법인의 고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전체 손익에서 이들 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안정화되면 캄보디아, 베트남 법인에 대한 추가 증자도 검토할 계획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등 경제 성장률이 높고, 금융 수요가 높은 동남아 신흥 개발국에서 고성장, 고수익 리테일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며 ”오랜 기간 준비와 투자를 해온 결과가 현재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도 고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해 인도네시아와 중국 법인의 실적 부진 여파로 적자 폭이 커졌다.
국민은행 해외법인은 작년 5580억170만원의 적자를 기록해 4대 은행 중 손실액이 가장 컸다. 전년(506억8000만원)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적자 폭이 확대됐다.
캄보디아 법인인 프라삭마이크로파이낸스가 시중은행 해외법인 중 가장 많은 순이익을 올렸지만 인도네시아 법인인 부코핀은행의 순손실이 발목을 잡았다.
프라삭마이크로파이낸스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 대비 13.9% 증가한 2338억5200만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었다. 반면 부코핀은행은 8020억8400만원의 순손실을 기록해 1년 새 적자 폭이 3배 가까이 확대됐다.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자산건전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은 영향이 컸다. 부코핀은행은 지난해 4분기 570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다. 전체 부실채권(NPL) 규모를 상회하는 충당금을 선제적으로 적립해 부실 흡수 여력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국민은행은 2018년 7월 KB부코핀은행의 지분 22%를 취득해 2대 주주가 됐고, 2020년 7월과 9월 2차 유상증자에 참여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지난해 11월엔 3차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 주주에 올랐다.
하지만 부코핀은행은 코로나19 사태 확산 영향으로 적자와 건전성 악화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코핀은행의 적자 폭은 국민은행은 부코핀은행의 부실자산을 정리하고 총 네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투입하는 등 정상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2030년까지의 경영정상화 로드맵을 수립했고, 단기간 내에 유동화구조와 상매각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잔여 부실자산을 상당 부분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흑자 전환은 오는 2025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남훈 KB금융 글로벌사업그룹 전무는 지난 2월 부코핀은행의 경영전략과 관련해 “정상화가 당초 계획보다 2~3년 정도 늦어졌지만 경영 정상화 계획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다”며 “올해 대규모로 충당금을 적립했기 때문에 흑자 전환은 2025년으로 예상하고 있고 2026년부터는 그룹의 자기자본이익률(ROE)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B마이크로파이낸스미얀마법인과 미얀마은행은 각각 12억원, 1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전년 합계 순손실이 93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적자 폭이 크게 줄었지만 흑자 전환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마이크로파이낸스미얀마법인은 우량 고객 위주로 제한적인 영업을 실시하고 있다”며 “시위 격화로 인한 이동 제한 지역, 시민군의 위협으로 인해 회수가 잠정적으로 불가능한 지역에 한해 원리금 추가 유예를 적용하고 기존 파출 수납 중심의 원리금 회수 방식에서 비대면 채널을 통한 원리금 회수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미얀마은행은 개점 직후 발생한 미얀마 군부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인해 필수적인 업무 위주로 제한적인 영업을 실시하고 있다. 향후 서방 국가의 제재 확대 가능성 등을 감안하여 우량 한국계 기업을 중심으로 선별적인 영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국가비상사태의 정상화에 대비해 디지털플랫폼 인프라 구축도 준비 중이다.
하나은행의 경우 지난해 10개 해외법인 중 8곳의 순이익이 늘었지만 중국에서 대규모 적자를 보면서 흑자 폭이 크게 줄었다. 하나은행 작년 해외법인 순이익은 70억9200만원으로 전년(1073억800만원)에 비해 93.4% 줄었다.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는 작년 971억9100만원의 순손실을 기록해 적자 전환했다.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봉쇄정책으로 상하이·장춘 지역이 봉쇄되면서 일부 영업점에서 영업이 중단된 영향이다. 현지 대출 자산에 대한 보수적인 충당금 적립도 실적을 끌어내렸다.
반면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 PT Bank KEB Hana의 순이익은 전년(175억원) 대비 194.3% 증가한 516억원으로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건전성 중심 성장전략…“해외서 비금융 진출” 목소리
은행들은 성장한계에 직면한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시장에서 신성장동력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금융시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 긴축 등의 영향으로 변동성이 큰 상황이다. 이에 은행들은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확대에 대응한 선제적인 리스크 및 건전성 관리에 중점을 두고 글로벌 전략을 펼치고 있다.
국민은행은 글로벌 경영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리스크 관리 및 자산건전성 관리를 평소보다 더 큰 비중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수익성만을 쫓는 영업을 지양하고 우량자산 위주의 선별적 자산 성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공급망 붕괴, 미 금리 인상 등 대내외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해외 점포가 현지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하고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독립 경영 체계로 자리 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컴플라이언스 등 해외 점포 관리에 대한 현지 감독 당국의 요구 수준이 점차 높아지는 데 대응해 선제적인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현지 우수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한편 관련 조직 구성에 대해 지속적인 점검과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하나은행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각국의 금리 인상 등으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글로벌 핵심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리스크에 기반한 글로벌 수익모델을 구축하기로 했다.
은행권에서는 금융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해 은행이 해외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금산분리 규제 완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지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은행들의 배달 앱, 쇼핑몰 등 비금융 융복합 서비스로 글로벌 금융그룹과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은행권은 지난달 ‘금융산업 글로벌화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해외 법인이 비금융 자회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싱가포르에서는 금융사들이 부동산 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해외에서 현지 법을 따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1위 은행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은 규제 완화를 통한 융복합 서비스로 국내 은행의 롤모델로 꼽힌다. 싱가포르 금융당국이 2017년 은행의 비금융 사업 투자가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하면서 DBS는 외부 사업자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자동차, 부동산, 여행 등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켓플레이스’라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국제화대응단’을 만들어 금융사의 해외 진출과 해외 투자 확대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김주현닫기김주현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말 5대 금융지주 회장단과의 간담회에서 “금융회사들이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해외진출・영업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이번에 신설한 국제화 대응단을 통해 현장에 직접 찾아가서 국제화의 걸림돌을 없애고 디딤돌을 놓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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