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자산운용업계는 힘들었다. 금융감독원(원장 이복현닫기이복현기사 모아보기)이 발표한 ‘2022년 3분기 자산운용회사 영업실적’ 자료에 따르면 올해 7∼9월 자산운용사가 거둔 당기순이익은 362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1.5% 줄었다. 특히 전체 414개사 가운데 226개사는 적자를 기록하고 말았다.
“액티브 ETF, 내년에 45.1% 성장”
개별 증권사 실적을 각각 따져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전반적인 업계 흐름은 올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날씨로 표현하면 ‘구름 갬’이다.
지난 12일 우리금융(회장 손태승닫기손태승기사 모아보기)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3년 국내 펀드 시장 트렌드(Trend‧최신 경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Exchange Traded Fund)의 높은 성장세가 점쳐진다. 연구소는 내년에 액티브 ETF 규모가 45.1% 성장해 14조9000억원에 달할 것이라 내다봤다.
액티브 ETF는 액티브펀드와 ETF 속성을 모두 갖춘 상품이다. 기초지수를 그대로 따라가는 패시브 ETF와 달리 펀드 매니저가 투자 종목과 비중을 조정한다. 기초지수를 70%가량 추종하면서 나머지 30% 범위에서 펀드 매니저 재량으로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돼 있다.
올해 신규 상장된 액티브 ETF 설정액(투자자가 펀드에 넣는 원금)이 패시브 ETF의 약 두 배 수준을 기록하는 등 자금 유입이 활발한 데다 현재 진행 중인 차기 금융투자협회장 선거에 이름을 올린 후보 모두 자산운용업계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겠단 입장을 표하고 있어 내년엔 ETF 시장이 더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대체거래소(ATS‧Alternative Trading System)를 통한 ETF 상품 다양화, 액티브 ETF의 상관계수 완화와 자산구성내역 공개 지연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
액티브 ETF가 성장을 미리 예견했는지 삼성자산운용(대표 서봉균)은 ETF 시장 점유율 1위답게 발 빠르게 대응 중이다. 현재 액티브와 패시브를 각각 전담하는 ETF 독자 사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선두 자리를 4%포인트(p) 내에서 바짝 쫓는 미래에셋자산운용(대표 최창훈‧이병성)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 글로벌(Global‧전 세계) 진출에도 방점을 찍었다. 지난 8월 홍콩 릭소자산운용에서 ETF를 담당하던 김영준 상무를 영입했다. 글로벌 ETF 부문장 자리를 맡기기 위해서다.
서 대표가 삼성자산운용을 이끌기 전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대표 데이비드 솔로몬) 등을 거치며 풍부한 외국계 경험을 쌓았기에 2023년 둘의 시너지(Synergy‧협력 효과)가 더 기대되는 대목이다.
채권형 ETF를 둘러싼 경쟁도 관전 요소다. 금융 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대표 김군호‧이철순)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으로 올해 들어서만 국내 채권형 ETF에 1조7468억원이 순유입됐다. 올해 초 8조7766억원이던 설정액은 10조5234억원으로 늘었다. 80조원 가량 되는 ETF 순자산 총액의 12%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개별 주식과 국고채에 동시 투자하는 혼합형 상품이 인기다. 가령 삼성전자 30%, 국채 70% 비중으로 구성하는 식이다. 혼합형 ETF는 주식의 시세 차익과 국채 이자 수익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식편입 비율이 40% 미만이라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확정기여(DC‧Defined Contribution)형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계좌에서도 투자하는 게 가능하다.
기존엔 혼합형 ETF의 경우, 주식과 채권을 각각 10종 이상 담아 총 20종 넘게 기초지수를 구성해야 했지만. 지난 8월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서 증권 유형 구분이 사라져 개별 투자 효과가 가능한 상품이 대거 등장했다.
현재 채권형 ETF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곳은 KB자산운용(대표 이현승닫기이현승기사 모아보기)이다. KB자산운용은 지난달 21일 만기가 있는 채권형 ETF 2종을 선보이며 국내에서 가장 많은 채권형 ETF 22종을 운용하고 있다. 최근 'KBSTAR국고채30년Enhanced'가 연초 이후 개인 순매수 500억원을 돌파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5일 기준 한 달 수익률은 9.15%로 국내 채권형 ETF 중 1위다. 이현승 대표 연임을 확정 지은 만큼 내년엔 더욱 안정적인 경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 한국투자신탁운용(대표 배재규), 키움투자자산운용(대표 김성훈), NH아문디자산운용(대표 박학주), 한화자산운용(대표 한두희닫기한두희기사 모아보기), 신한자산운용(대표 김희송·조재민) 등도 커지는 ETF 시장 속 삼성·미래로 굳어진 양강 구도에 파열음을 내기 위해 최신 경향을 반영한 ETF 상품을 발 빠르게 출시하고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내년부터 금리 인상 속도가 조절될 것이란 기대감에 채권형 펀드로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며 “금리가 높을 때 채권을 사둔 투자자는 금리가 하락할 경우,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어 내년에도 채권형 ETF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라 전했다.
이어 “자산운용업계 전체 시장은 올해보다 나아질 것”이라며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상품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것이라 관측되는 만큼 금융당국의 규제도 더 철저해질 것으로 보여 어떤 ETF 상품에 얼마만큼 투자해 성과를 보이는지가 승패를 가를 요소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TDF 둘러싼 경쟁도 ‘불꽃’
내년엔 연금펀드 시장 확대에 따른 생애 주기 펀드(TDF‧Target Date Fund) 경쟁도 더 불꽃 튈 전망이다. 올해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사전 지정 운용제도)과 기업의 적립금 운용 위원회 설치 의무화 등이 제도로 마련되면서 연금펀드 상품에 관한 관심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우리금융 경영연구소는 내년에 퇴직연금 펀드와 연금 저축 펀드가 각각 35조8000억원, 21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관측했다.
특히 이달부터 출시되는 정부승인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상품 73%에 TDF 상품이 포함됨에 따라 각 운용사의 차별화 전략에 힘이 더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송태헌 신한자산운용 상품전략센터 수석부장은 지난 15일 ‘2023년 펀드시장 전망’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TDF 중 설정액이 가장 많은 2025 상품의 목표 마감일이 3년 앞으로 다가왔다”며 “매달 발생한 인컴(Income‧배당) 수익을 분배하는 정기적 분배금 상품이 퇴직연금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 내다봤다.
현재 TDF 시장 선두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다. ‘인생과 함께하는 투자’라는 관점을 강조해 온 박현주닫기박현주기사 모아보기 그룹 회장의 경영 철학에 따라 TDF 사업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전체 TDF 시장 10조8226억원 규모 중 미래에셋자산운용은 45%에 해당하는 4조8279억원을 점유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다른 운용사와 달리 처음부터 TDF 자체 운용을 고수해왔다. 그렇기에 위탁 수수료가 투자자에게 따로 부과되지 않았다. 운용‧판매‧신탁‧사무관리 보수를 더한 총 보수에 기타 비용과 피투자 펀드 보수까지 합산해 투자자가 실제로 최종 부담하는 ‘합성 총보수 비용’은 증권사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투자자 비용을 줄이니 수익률은 자연스레 올랐다. 3년과 5년 성과에서 TDF2025‧2030‧2035‧2040‧2045 빈티지(Vintage‧은퇴 목표 시점) 모두 '미래에셋전략배분TDF'가 수익률 1위를 기록했다. 올해 다른 증권사들이 TDF 운용보수를 앞다퉈 내린 것도 이와 같은 이유였다.
다만, 최근 증시 상황이 악화하면서 연금형 펀드도 타격을 받고 있다. 1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대표 김군호‧이철순)와 한국예탁결제원(사장 이명호)에 따르면 지난 3개월간 퇴직연금펀드에서 1조131억원이 순유출됐다. 고금리 예‧적금 등으로 자금이 이동한 것이다. 올 상반기까지 인기를 끈 TDF도 순자산 규모가 가장 큰 ‘미래에셋전략배분TDF’ 2025~2045 시리즈에서 501억원이 빠졌다.
하지만 내년엔 금리 인상 기조가 바뀔 여지가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장기 투자 ▲분산 투자 ▲저 비용 투자 3가지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ETF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는 “순간순간 벌어지는 시장 이벤트(Event·사건)에 연연해선 안 된다”며 “월급의 30%를 꾸준히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게 장기적으로 가장 수익을 내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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