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은 지난달 14일부터 24일까지 열흘간의 북미 출장에 나섰다. 이번 북미 출장의 키워드는 ‘뉴삼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부회장이 출장에서 만난 모더나·버라이즌·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구글 등은 삼성이 꼽은 미래사업 글로벌 파트너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북미 출장 당시 “단순 추격이나 격차 벌리기로는 안 된다. 가보지 못한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자”고 말했다. 귀국 후에는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니 마음이 무거웠다”며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이 부회장의 위기의식은 삼성전자의 임원인사 및 조직개편에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7일 진행된 삼성전자 연말 임원인사에선 기존 대표이사 3명을 전면 교체하고, 한종희닫기한종희기사 모아보기 부회장, 경계현닫기경계현기사 모아보기 사장 중심의 투톱 체제로 탈바꿈했다.
이 부회장은 북미 출장 이후 12일만인 지난 6~9일 아랍에미리트(UAE) 출장길에 올랐다. 이 부회장이 UAE를 공식 방문하는 것은 2019년 이후 2년 만이다.
그는 UAE에서 귀국 후 “아부다비에서 조그만 회의가 있었다”며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전 세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각 나라나 산업들에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들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18년에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 등 정치인과 데이비드 M. 루빈스타인 칼라일그룹 공동창업자, 토마스 S. 카플란 일렉트럼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업계에선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 등 UAE 고위층과 만나 UAE의 5G 네트워크 사업을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UAE는 자국 내 5G 통신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연내 전국 인구의 90%에 대한 5G 커버리지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미국 정부가 UAE에 무기를 판매하는 대가로 UAE에 구축된 중국 화웨이 통신장비를 철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삼성전자로선 5G 네트워크 사업을 수주할 수 있는 기회다.
이 부회장은 그간 UAE 고위층과 5G 사업을 지속 논의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19년 2월 UAE 출장에서도 무함마드 왕세제와 만나 5G 이동통신,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삼성전자와의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이 부회장은 무함마드 왕세제를 초청해 5G 통신을 시연하고, 스마트공장을 소개했다. 당시 빈 자이드 왕세제는 방명록에 “인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이곳(삼성전자)에서 이뤄지고 있는 혁신과 최신 기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UAE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데 큰 관심이 있으며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들을 응원한다”고 썼다.
아울러 일각에선 이 부회장이 다시 해외 출장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달 27일부터 내년 초까지 서울중앙지법이 2주간 겨울 휴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도 오는 23일 법원 출석 후 약 20일간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
업계에선 이 부회장이 EUV(극자외선) 장비를 독점 생산 중인 네덜란드 ASML을 찾아 장비 확보를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에도 ASML 본사를 찾아 피터 버닝크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지난 북미 출장 이후 현지 상황을 보면서 느낀 위기감이 이번 임원인사, 조직개편 등에 반영됐다”며 “최근 이 부회장이 ‘뉴삼성’으로의 도약을 위해 글로벌 리더들과 만나 네트워크 다지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연말 해외 출장을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정은경 기자 ek7869@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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