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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끝내 사과 없이...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기사입력 : 2021-11-2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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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민들 유혈 진압하고 권력 장악
민주화로 퇴임 후 추락...마지막까지 진실 외면
한국 민주주의 후퇴시킨 정치군인 시대 종언

5·18 끝내 사과 없이...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이미지 확대보기
[한국금융신문 최용성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90세.

지병을 앓고 있던 그는 이날 오전 8시 40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쓰러져 숨졌다.

그는 최근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정당화하며 희생자와 유족 명예를 훼손했고 마지막까지 반성과 사과 한마디 없이 숨을 거두면서 끝내 진실을 외면한 대한민국 역사의 오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1931년 1월 23일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난 전 씨는 1955년 육사(11기) 졸업 후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만들어 신군부 세력을 형성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로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민주화 열풍이 전국적으로 일었으나 이를 무력으로 짓밟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했다. 특히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들을 유혈진압하며 군사독재 장기화 기반을 다졌다. 이어 간선제로 11·12대 대통령에 올라 1988년초까지 독재권력을 휘둘렀다.

지난달 26일 12·12 쿠데타 동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이어 한달도 되지 않아 전 씨도 세상을 떠나면서 박정희 이후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정치 군인의 시대도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전 씨는 1987년 대통령제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결국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 요구를 수용하는 형태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다. 퇴임 후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1988년 재산을 헌납하겠다고 선언하고 1988년 백담사에 칩거했다. 하지만 재산 헌납은 이행되지 않았다.

전 씨는 1996년 내란, 내란목적살인죄, 뇌물 수수 등 혐의로 1심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추징금 2205억원이 선고됐다. 수감 2년 만인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전 씨는 "전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추징금을 수백만원 내는 것으로 버텼고 이후 이후 고급 골프장에서 목격되며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자 씨와 아들 재국·재용·재만 씨, 딸 효선 씨가 있다.

재임중 국제 유가하락, 달러가치 하락, 금리 하락 등 '3저 현상'으로 사상 최고 호황 기조를 유지했고,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 등으로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도 있지만 당시 경제 상황에 대한 결과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국제그룹 해체 등 기업 길들이기 논란을 비롯해 수차례 발생한 권력형 비리 사건, 수출대기업들로부터 천문학적 재산 형성 논란 등은 물론 민주화운동 탄압, 인권 유린 등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용성 기자 cys@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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