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인터넷은행은 자신들만의 ‘개인 신용평가 모형(CSS)’을 구축하며 중금리 대출 시장 확보에 나섰다. 전통 금융권이 주로 활용해온 소득이나 대출, 소비 등의 기본 영역을 넘어 통신, 쇼핑, 공공 정보 등 개인 생활 전반에 걸친 신용도를 평가 기준으로 활용한다. ‘대출 절벽’에 몰린 중·저신용자와 금융이력부족자(씬파일러)들에게는 어쩌면 제1금융권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반가운 소식으로 들린다.
◇ “AI 활용한 신용평가로 차별화해야”
개인 신용평가 모형(CSS)은 인공지능(AI)을 금융 업무에 응용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대출(여신) 심사에 이용되는 특정 개인이나 기업 신용도를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정해 평점화하는 것이다. ‘AI 평점 대출(AI Score Lending)’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빅데이터는 말 그대로 많은 양의 데이터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양을 기존 정보 처리 시스템으로 다루기 어렵게 되자 생긴 용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터넷은행이 빅데이터를 넘어 AI 활용 단계까지 기술을 고도화해 기존 은행과 차별화를 가져가야만 지속 가능성을 보장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구경회 SK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장기적으로 기존 은행과 밸류에이션 격차를 유지하려면 사업내용의 차별화 포인트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가 차별화 포인트는 ‘고객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신용평가 능력’ 입증이다. 이 부분에서 가치를 보여준다면 향후 사업 확대가 예정된 중금리 대출 분야에서 대손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고, 개인사업자(SOHO) 대출까지도 확대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구경회 연구원은 “디지털 플랫폼 계열사라는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고객 신용위험 측정에 실패한다면, 중금리 대출 부문에서 저조한 성과를 거둘 것”이라며 “이는 기존 은행과 차별화했다고 보는 투자자들의 실망감을 가져오면서 증시에서 밸류에이션 하락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구 연구원은 카카오뱅크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으로 ‘스퀘어’를 꼽았다. 미국에서 핀테크(금융+기술)로 시작해 최근 SOHO 대출로 사업을 확장한 기업이다. 현재 시가총액은 무려 1120억달러(128조6780억원)을 넘어섰다.
그는 스퀘어가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은 ‘고객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신용평가 능력’이라고 지목했다. 재무제표에서 신뢰도가 낮은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들에 관한 결제, 판매, 재료비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AI를 활용한 신용 능력 평가가 확장성을 가져온 것이다.
구 연구원이 제시한 ‘스퀘어’ 말고도 중국에서는 정보통신(IT) 대기업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앤트 파이낸셜 그룹도 AI를 활용해 신용 평점을 산출·평가하는 ‘즈마신용’을 시작했고, ‘쿠디안’이라는 스타트업도 이 같은 모형의 소비자 금융을 개발했다. 앤트 파이낸셜 그룹과 쿠디안은 지난 2017년 전 세계 핀테크 기업 중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일본의 스미신SB네트 은행 또한 ‘AI 평점 대출’을 개시해 2018년부터 중소기업 대상 신규 대출 서비스를 하고 있다.
김대윤 피플펀드 대표는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고성능 신용평가 인프라를 차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금융기관 고유의 차별화한 데이터 ▲신용평가 모형 구축 역량의 내재화 ▲인공지능 기술 도입 등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기존에 다뤄지지 않았던 비금융 데이터와 비정형 데이터를 신용평가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회귀분석과 같은 선형모델보다 딥러닝, XGboost 등의 고도화한 비선형모델이 유리해 AI 기술 필요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권은 이제 빠르게 자체 AI 인력 채용에 집중하고 획일화한 회귀 분석 모형을 넘어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적극 도입한 차세대 신용평가 기술 기반을 쌓아야 한다”며 “보여주기식 마케팅 홍보용이 아니라 본질적인 데이터 기반 AI 기술을 보유하지 못하면 금융산업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를 기존 금융권이 절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빅데이터는 인공지능(AI)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실과 바늘’ 같은 사이다. AI는 데이터를 먹고 자란다. AI를 발전시키려면 방대한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또한 AI 기술은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엔진’ 역할을 담당한다.
◇ “AI 신용 평가 모형, 사생활 침해 말아야”
AI에 의한 신용 평가 문제도 일각에선 제기된다. 신용 이력이 없어 대출받기 어려웠던 개인이나 영세기업이 정당하게 평가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AI 스코어링이 대출 평가가 아닌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노구치 유키오 도쿄대학교 교수는 저서 <AI와 금융의 미래>에서 “AI 스코어링이 사회적으로 통용될 경우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위험도 있다”며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반정부 활동 단속에 사용되는 등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AI에 의한 신용 평가가 신용리스크 때문에 어려웠던 새로운 대출 상품 개발이나 신규 사업 등을 기존보다 빠르고 쉽게 결정하도록 돕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스코어링 대출을 핵심 비즈니스로 삼은 신은행도쿄가 3년 만에 1000억엔 가까운 적자가 누적돼 2018년 도쿄도민 은행과 야치요 은행에 흡수 합병된 사례를 보면, 재무 데이터가 부정확할 위험성도 내포한다.
그럼에도 인터넷은행이 빅데이터 기반의 자체 CSS를 고도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는 사람이 개인 신용도를 평가하는 것보다는 훨씬 객관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AI 스코어링은 채용(입사) 평가를 넘어 사회적으로 통용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빅데이터가 개인 사생활(프라이버시)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있지만, 지금 인터넷은행에게 CSS 고도화는 전통은행과 차별화하는 ‘혁신 모델’이다.
최제민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4월 ‘AI 기반 분석 및 활용 역량 제고 방안’ 보고서를 통해 “은행의 경우 기존 영업 방식에 의한 성장이 뚜렷한 한계에 직면한데다 빅테크·핀테크의 은행업 진출에 따른 경쟁 심화로 AI 활용역량 제고가 시급하다”며 “전통적인 은행과 달리 빅테크 또는 인터넷은행은 AI 기술에 대한 접근 및 활용에 유리하다”고 언급했다.
과연 인터넷은행이 AI 활용에 유리한 장점을 잘 활용할 수 있을지 앞으로가 주목된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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