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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소법 빛과 그림자 - 은행] 몸사리는 은행원들…대출 철회 2개월새 ‘3배’

기사입력 : 2021-05-31 00:00

상품설명·대기시간 늘어 불만 호소…영업 위축
5대 은행 대출취소액 700억…철회권 악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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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란, 임지윤 기자] “혹시나 규정을 악용해 갑질을 일삼는 블랙컨슈머를 만나 금소법 위반 1호 직원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적극적 영업에 나서는 대신 고객이 직접 펀드를 가입하도록 안내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D은행 관계자)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지난 3월 말 첫 시행된 이후 두 달이 지났지만 은행 현장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시행 초기 극도의 ‘대혼란’은 진정됐다 해도 금소법 위반 ‘1호’가 되지 않기 위한 소극적인 영업은 지속되는 분위기다. 까다로워진 은행 업무절차로 고객들의 불만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 “시간 오래 걸릴 수 있다”…양해 구하는 영업점

26일 오전 서울 중구 A은행 지점. 기자가 상담 창구에 앉아 입출금 통장에 가입하려 하자 창구 직원은 “요즘 모바일로 많이 가입하시는데,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오래 걸릴 수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실제로 입출금 통장을 개설하는 데는 10분가량 소요됐다. 이 은행 관계자는 “금소법 시행 전에는 5분도 안 걸렸는데, 이제는 통장 하나 만드는 데도 길게는 15분쯤 걸린다”며 “고객이 다 안다고 빨리 끝내 달라고 불편을 호소할 때도 있지만, 모바일이 아닌 종이로 계약을 진행할 경우 상품 설명서를 행원이 직접 읽거나 인공지능(AI) 서비스를 통해 진행해야 해서 난감할 때가 있다”고 했다. 이어 “펀드나 개인형 퇴직연금(IRP), 정기예금, 대출 등 특수 상품은 모르겠지만 입출금 통장까지 이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다른 은행 4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입출금 통장 개설은 평균 10분, 펀드나 주가연계증권(ELS) 등 고난도 금융상품의 경우 가입까지 길게는 1시간이 넘게 소요됐다. 금소법 시행 전보다 2~3배 길어진 수준이다.

B은행 관계자는 “고객 연령이나 은행 상품과 상관없이 모든 절차를 금소법 테두리 안에서 똑같이 진행하다 보니 직원도 고객도 불편함이 있다”며 “젊은 세대의 경우 금융지식이 직원보다 높아 다 알아보고 영업점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설명한 뒤 약관에 일일이 서명과 녹취를 받고 있다”고 했다.

◇ 모바일 가입 유도…직원들은 ‘몸 사리기’

금소법 시행으로 상품 가입에 걸리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자 은행들은 모바일 가입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C 은행 관계자는 “모바일을 통해 가입하면 상품 설명서를 고객이 직접 내려받을 수 있고 절차도 훨씬 간편한 데다 금리 우대 혜택도 제공된다”며 “종이 계약을 고집하는 소수의 고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모바일 상품을 권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모바일뱅킹을 이용할 경우 공인인증서 없이 신분증을 통해 5분 내외로 입출금 통장을 만들 수 있었다.

은행권은 금소법 시행 이후 영업 분위기가 다소 위축됐다고 입을 모았다. 금소법 규정과 법 위반 우려 등으로 이전과 같이 적극적인 영업에는 한계가 있다는 전언이다.

D은행 관계자는 “금소법 시행 이후 은행이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하려면 이사회 의결을 거치고 투자설명서 수정도 필요한데 그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아 적극적인 펀드 영업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법 시행 후 대출 철회 급증…빈틈 노려

금소법의 특징은 소비자 권리를 폭넓게 보장한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청약철회권, 위법계약 해지권, 자료 열람 요구권 등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이중 청약철회권의 경우 기존에는 투자자문업과 보험업에만 적용됐지만 예금성 상품 등 일부를 제외한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됐다.

청약철회권은 일정 기간 내 계약을 철회하면 지급한 대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다. 대출성 상품은 14일 이내, 보장성 상품은 15일 이내, 투자성 상품은 7일 이내에 철회권을 행사할 수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 따르면 금소법 시행 이후 두 달간(3월 25일~5월 24일) 소비자가 청약철회권을 사용해 은행이 철회한 대출액은 총 698억원이다. 금소법 시행 직전 두 달간(1월 25일~3월 24일) 철회금액 263억원과 비교하면 2.6배 늘어난 것이다. 건수로 봐도 금소법 시행 전 1641건에서 시행 이후 2762건으로 68.3% 증가했다.

대출 청약철회권은 금소법 시행 이전에도 행사할 수 있었다. 금융위원회가 2016년 청약철회권을 도입하면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소비자에게 대출 청약철회권을 보장해왔다.

다만 금소법 시행 전에는 청약철회권이 법률로 규정되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 청약철회권 악용 가능성 방지를 위해 철회권 행사 횟수도 전체 금융회사에 월 1회로, 동일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연 2회만 가능했다. 철회 가능 대출 금액도 신용대출 4000만원 이하, 담보대출은 2억원 이하였다. 이와 달리 금소법은 사실상 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금융사는 대출 청약청회권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소비자는 14일 이내에 대출을 이용한 기간만큼 이자를 납부하면 중도상환수수료(원금의 약 1.5%) 등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대출과 관련한 기록도 모두 삭제돼 신용등급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대출을 받아 2주 이내에 이익을 본 후 대출을 철회하는 등 청약철회권이 단기 투기성 자금에 악용될 여지가 크다. 최근에는 신용대출 등을 받아 공모주 청약 증거금으로 쓴 뒤 당첨되지 않으면 대출을 하는 방식으로 청약철회권을 이용하는 의심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 펀드에 가입했다가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고 철회할 수 있지만 대출의 경우 통상 금액계획을 세워서 받는 것인데 이후 철회하는 게 흔하지는 않다”며 “값싼 이자로 단기간에 대출을 땡길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는 모럴해저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시행령과 감독규정을 통해 청약철회권을 한 달에 한 번만 행사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실효성 있는 제한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관계자는 “당국 차원에서 청약철회권 악용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과 기준 등을 고도화해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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