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KB·하나·우리·NH 등 국내 금융그룹들은 고객들의 높아진 ‘디지털 입맛’에 맞춰 조직과 인력 구성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 “빠름, 빠름” 젊은 디지털 인재 주도
윤종규닫기윤종규기사 모아보기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연말 그룹 내 디지털/IT/데이터 관련 업무를 총괄할 ‘디지털혁신부문’을 신설했다.
디지털혁신총괄(CDIO), 데이터총괄(CDO)도 각각 은행과 겸직으로 했다. 주력사인 KB국민은행은 디지털금융그룹과 IT그룹이 함께 근무하도록 코로케이션시켰다.
KB국민은행은 애자일 조직인 ‘에이스(ACE)’도 2017년부터 은행권 선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총 12개의 ACE가 가동 중이다. 부서간 경계 없이 5~7명씩 팀원급 젊은 직원으로 구성해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적시에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하고 있다.
ACE 조직 운영 후 가장 큰 변화는 의사결정 단계 축소가 꼽혔다. 기존 4~5단계에서 2단계 수준으로 의사결정이 빨라졌다.
KB금융그룹은 올초 LG그룹과 업무협약을 맺고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인프라 설계’를 시작으로 디지털 기술 기반 공동 사업에도 나섰다.
KB금융과 LG는 지난해 10월부터 협업 모델을 구체화하며 페이먼트, 보험 보상 자동화, 플랫폼 등 사업과제를 도출했으며, 올해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사업화를 추진하고 신기술 활용 서비스 개발도 이어나갈 방침이다.
조용병닫기조용병기사 모아보기 신한금융지주 회장도 ‘2020 스마트 프로젝트’에 맞춰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강조해 왔다.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된 전략·조직·역량을 구현하는 게 목표다.
조용병 회장은 지주와 그룹사 디지털 부문 임원들이 매달 의견을 나누는 ‘CDO(최고디지털총괄임원)협의회’ 이른바, ‘디톡’에 올해부터 직접 참석해 디지털 전환을 챙기고 있다.
주력사인 신한은행은 2016년부터 은행권 최초로 사내벤처 프로그램인 ‘SPARK(에스파크)’를 운영하고 있다. 사내·외 벤처 기회를 확대해 직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실제 비지니스 모델로 사업화될 수 있도록 스타트업 연계를 확대하고 있다. 또 우수제안에 대해 해외 벤치마킹 연수도 실시하고 있다. 사업성 심사를 통과하면 정기인사 발령 때 반영된다.
그룹사 차원의 ‘원(One)신한’ 디지털 아이디어 플랫폼에서 아이디어도 적극 모으고 있다. 지난해 신한금융그룹이 전 임직원 대상으로 개최한 ‘디지털 아이디어 경진대회’에는 총 237개팀이 모여들었다. 최종적으로 ‘대화형 SMS를 활용한 마케팅 효율화(신한카드)’,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 예금(신한은행/신한금투)’, ‘직장인 취미생활 플랫폼(신한카드)’, ‘My Car Banking_차량번호판 인식 결제 시스템(신한은행)’ 등 4개팀 아이디어가 수상했다.
수상한 아이디어는 신한은행 ‘SPARK’, 신한카드 ‘아임벤처스’ 등 그룹사 사내벤처 프로그램과 연계해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쳐 서비스로 개발될 예정이다. 또 신한디지털캠퍼스, 신한퓨처스랩 등 그룹 차원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20대 고객 확대를 공략하며 핀테크 유니콘으로 꼽히는 토스(Toss)와 손잡고 제3인터넷전문은행에 출사표를 내기도 했다.
김정태닫기김정태기사 모아보기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올해 5대 경영 키워드 중 ‘디지털’을 가장 먼저 꼽았다. 하나금융그룹은 앞서 지난해 10월 ‘2020 손님 중심의 데이터 기반 정보회사’라는 디지털 비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주력사인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연말 그룹·단·본부 내 디지털 전환 특임조직인 ‘디지털랩(lab)’을 신설해 영업·채널·상품·시스템·조직·기업문화에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룹 IT 관계사인 하나금융티아이 산하에 설립한 DT랩(Lab)은 ‘하나금융융합기술원’으로 확대 개편됐다. 디지털 혁신 기술 역량을 내재화하는 역할인데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연구소장 출신인 김정한 하나금융티아이 부사장을 전면에 내세워 최고데이터책임자(CDO)도 겸하게 했다.
KEB하나은행은 2017년부터 프로젝트 중심 애자일 조직으로 ‘셀(Cell)’도 가동하고 있다. 올 1월 현재 미래금융그룹 내 5개 셀이 운영 중이며, 많게는 10명, 적게는 2명으로 구성된 20여개 프로젝트 팀으로 구성된다. 각 셀 부문장은 프로젝트에 한해서는 부서장에 준하는 책임과 권한이 부여되고 자율성도 보장된다.
사내벤처도 지원하고 있다. 하나금융티아이에 사내벤처인 ‘연결&개발(C&D) 팩토리’를 공식 출범키로 했다. 공모를 거쳐 최종 선발된 2개팀(씨닷츠·씨씨기부)이 기존 부서에서 올 1월 C&D혁신팀 소속으로 정식 이동발령을 받았다. 사내벤처팀은 최장 12개월의 육성기간을 거쳐 사업화나 분사가 확정된다.
KEB하나은행은 최근 블록체인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한 46개 신규 비즈니스 모델 특허 출원도 마치기도 했다. 특허 내역을 보면 ‘해외 상품 구매대행 방법 및 시스템’, ‘전자계약 방법 및 시스템’, ‘디지털 자산 서비스 제공 방법 및 시스템’, ‘시재관리 방법 및 시스템’ 등이다. 또 그룹 차원에서 전사적으로 추진해온 글로벌로열티네트워크(GLN)도 올해 5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글로벌 디지털뱅크 사업도 본격화된다. 현지법인인 인도네시아 KEB하나은행(PT Bank KEB HANA Indonesia)은 라인(LINE)의 자회사 ‘라인 파이낸셜 아시아’와 라인 메신저 플랫폼을 활용한 디지털뱅크에 힘을 실을 예정이다. ‘라인 뱅크’가 글로벌 리테일 사업 성공모델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최근 국내 1위 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과 온라인 1위 증권사인 키움증권과 손잡고 제3인터넷전문은행에 도전장을 내기도 했다.
올해 지주사로 전환한 우리금융지주의 손태승닫기손태승기사 모아보기 회장도 4대 성장동력 중 하나로 ‘디지털’을 꼽았다. 주력사인 우리은행의 디지털금융그룹 역량을 IT 회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휴렛팩커드(HP) 출신으로 외부에서 영입돼 최고디지털책임자(CDO)를 맡은 황원철 디지털금융그룹장을 6개월만에 상무로 승진시켜 힘을 실어줬다.
또 디지털 전문가로 경력개발과 관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그동안 은행이 순환근무를 하면서 전문 인력 양성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스페셜리스트’로 꼽히는 손태승 회장이 전문가 양성을 위한 체계화된 연수를 강화하는 취지로 경력개발경로(CDP) 제도를 재정비하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디지털 뱅킹을 새로운 수익창출 채널로 탈바꿈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우리은행은 올해 7월 오픈을 목표로 우리은행 모바일뱅킹 앱인 ‘원터치개인뱅킹’을 비대면 핵심 채널을 재구축하고 있다. 구축 초기 단계부터 실제 고객들의 인터뷰와 사전 사용성 테스트를 진행함으로써 고객 필요에 부합한 설계를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위비뱅크’ 개편도 외부 참여사와 고객간 접점을 제공하는 ‘오픈 뱅킹’ 채널로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포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다양한 외부채널과 연계를 확대해서 궁극적으로 위비뱅크 내 다양한 외부 연계서비스를 넣고, 동시에 다양한 외부 채널에서 우리은행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사내벤처 조직으로 ‘드림셀(cell)’을 운영하며 사업화까지 돕고 있다. 사내 공모를 거쳐 선정된 ‘스마트 허브’는 은행 지점 입구를 차지한 기존 대기 순번기를 업그레이드한 디바이스다. 조만간 상용화되면 840여개 전 우리은행 지점의 대기 인원과 현재 처리 업무를 클라우드로 공유해서 중앙 지점에서 관리할 수 있다.
아울러 신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이노씽크’도 영업점·본부 부서 직원들 4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26개국 430곳으로 국내 은행 중 최다인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디지털 뱅킹 플랫폼을 추진하고 있다.
캄보디아 법인을 둔 우리은행은 올 2월 글로벌 차량공유업체 ‘그랩(Grab)’ 캄보디아 법인과 그랩 드라이버 대상으로 금융상품을 판매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방글라데시 지점을 통해 현지 디지털 영업도 강화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향후에도 베트남 등에서 글로벌 핀테크 업체와 제휴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김광수닫기김광수기사 모아보기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경험과 감(感)이 아닌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과 사업추진이 조직문화로 자리잡도록” 당부하고 있다. 주력사인 NH농협은행이 내부 사업부문인 카드 가맹점 정보 등을 통합해 빅데이터 플랫폼인 ‘NH 빅스퀘어’를 구축했다. 향후 보험·증권 등 금융 데이터뿐만 아니라, 유통 등 범농협 데이터 통합도 추진할 계획이다.
김광수 회장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할 인재로 2020년까지 데이터사이언티스트를 1000명 이상 양성할 계획이다. SAS, R, 파이썬 등 데이터 프로그램 전문 교육도 확대키로 했다. 디지털금융부문 내 전문화가 필요한 사업에 분사(CIC) 수준의 독립적 책임경영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NH농협은행에 ‘디지털 R&D(연구개발)센터’를 신설해 디지털 신기술 컨트롤타워를 맡기는 작업도 초읽기다. AI(인공지능),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등 최신 기술 트렌드 연구와 사업화를 추진한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에 따라 기존 ‘NH핀테크혁신센터’도 확대 이전해 스타트업 육성을 돕는다.
모바일 통합플랫폼 ‘올원뱅크 베트남(AOB)’ 버전 서비스 출시로 글로벌 사업에도 진출했다. 베트남 무계좌 해외송금을 서비스하고 있고, 베트남 QR결제도 선보였다.
오픈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기반 플랫폼 비즈니스 시장도 선도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NH농협은행은 2015년 12월 국내 금융권 최초로 ‘NH핀테크 오픈플랫폼’을 출범해 핀테크 기업의 혁신 서비스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2017년 ‘P2P(개인간대출)자금관리 API’를 선보였고, 이후 업권별 맞춤형 API서비스 출시에 집중하고 있다.
유럽연합(EU)·영국·일본 등 주요국들이 결제망과 데이터를 핀테크 기업에 개방하는 오픈 API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오픈뱅킹 시대 가속화를 내다보고 있다. 예컨대 EU는 지난해 1월 PSD2(2차 지급결제산업지침)를 통해 은행권의 데이터 개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맞춰 NH농협은행은 핀테크 업계에 최적화된 API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서 고객은 편리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핀테크 기업과는 동반성장할 수 있는 이른바 ‘디지털 생태계’를 만드는데 힘을 실을 계획이다.
◇ “단순 IT인재 NO…융합형 사고 YES”
금융그룹들은 디지털화로 비대면 채널에서 고객들을 붙잡을 수 있는 방안을 골몰하고 있다.
한 은행권 디지털 부문 임원은 “비대면 채널에서 상품에 가입하고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들의 충성도가 생각보다 높다”며 “상품과 서비스에 재미를 더하면 계속 머무르게 되고 고객 경험도 축적된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오프라인을 온라인과 모바일로 옮기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주요 글로벌 은행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특징과 시사점’ 리포트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채널이 은행 매출의 핵심 채널이 된 가운데 오프라인 채널에서 판매경험(sales experience)을 디지털화 하는 작업이 중요해졌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오프라인 채널에서 판매하던 금융상품을 디지털 상품으로 둔갑시켜 그대로 판매할 경우 디지털 판매는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며 “오프라인보다 훨씬 단순한 형태의 버전이 필요하며 어떤 고객이 디지털 채널에서 서비스를 완료하지 못하고 다른 채널로 이동했다면 명확한 원인 분석과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꼽았다.
디지털 금융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인력 재편도 필요하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해외은행의 디지털 인재 양성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디지털 금융회사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IT 전담조직만이 아니라 전체 임직원이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김지연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디지털 인재는 단순히 IT 전문성을 갖고 있는 인재가 아니라 다양한 기술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기반으로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하고 융합함으로써 자신의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실행하는 디지털 사고를 보유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정선은 기자 bravebambi@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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