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손해보험사들이 판매하고 있던 운전자보험에도 장애인을 위한 특약은 마련되어 있었으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보험료가 비싸거나 정작 사고가 나도 주어지는 보험금이 미비해 장애인 운전자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효과는 적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지체장애 2급을 가지고 있는 운전자 A씨는 “내 돈 주고 떳떳하게 가입한 보험인데 언제 보험사가 구상권을 청구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많다”며, “보험은 사회안전망으로 존재해야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차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 메리츠화재-인바이유 ‘장애인운전자 안심서비스’, 상품+서비스 결합한 P2P 상품
인바이유는 같은 위험보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아 해당 소비자들의 의견을 취합, 보험 원수사 측과의 협상을 통해 실제 상품 개발에 나서는 식의 크라우드 보험 서비스 형태를 띤다.
앞서 인바이유는 MG손해보험과 함께 소비자 의견을 반영해 불필요한 특약이나 보장을 줄이고, 꼭 필요한 보장만을 탑재해 보험료를 획기적으로 줄인 월 1500원 운전자보험으로 시장의 큰 관심을 받았던 바 있다.
이번 상품은 무엇보다 지금까지 보험사들이 인수를 꺼리던 장애인 운전자들에게도 문호를 완전히 개방해 차별 없이 동일한 보장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인바이유 김영웅 대표는 “누구보다 보험에 의한 보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주어질 수 있도록 설계한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보험료도 연 일시납 11만 원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편이다. 기존 운전자보험의 장애인 특약을 고려하면 상해 정도나 장애 등급에 따라 월 보험료가 3만 원이 넘어가는 상품들도 많았기에 장애인 운전자들의 부담이 큰 편이었다.
주계약으로 운전 중 사고로 인한 상해 및 사망금으로 각각 5000만 원, 변호사 선임비용 500만 원, 벌금 1000만 원, 골절수술비 50만 원 등이 지급되는 것은 메리츠화재의 일반 운전자보험과 동일하다.
그러나 이 상품은 여기에 인바이유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결합했다. 먼저 교통사고 안전 발생시 신고자가 자세히 위치를 설명하지 않아도 경찰이 위치를 추적해 즉시 출동하는 ‘위치확인 안심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헬스 카운슬링, 무료 건강검진 서비스를 비롯한 ‘종합 헬스케어 서비스’ 또한 함께 제공된다.
◇ ‘지체장애 2급’ 안규환 한국복지방송 이사 “장애인들, 학습된 무기력증 깨고 나오길”
이번 장애인을 위한 운전자보험 서비스 론칭에는 인바이유 김영웅 대표(사진 왼쪽)의 설계와 더불어 한국복지방송 이사직을 역임하고 있는 안규환 이사(사진 오른쪽)의 노력이 있었다. P2P보험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일정 이상의 소비자 니즈가 필요한 데, 안규환 이사가 인맥을 동원해 이 상품을 필요로 하는 소비자 확보에 앞장선 것이다.
안규환 이사 또한 현재 지체장애 2급의 불편한 몸을 안고 있는 장애인이다. 기자와 만나는 자리에서도 안 이사는 2개의 목발을 비롯한 보조 장치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안 이사는 운전을 포함한 일상생활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안 이사는 한국복지방송을 비롯해 헬스케어 기업 ‘바이오인프라’의 이사직도 겸임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와 노동부, 여성부 등을 거치며 두루 활약했던 경력도 보유하고 있다.
안 이사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장애인을 위한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오히려 장애인들을 옭아매고 있다’고 역설했다. 안 이사는 “국내에 등록된 250만 명의 장애인들 가운데 100만 명가량은 자생능력도 있고, 충분한 구매력을 지닌 사람들”이라며, “이런 사람들이 보험에 가입하고 싶어도 대다수의 보험사가 위험률을 이유로 가입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안규환 이사는 불편한 몸임에도 그것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한편,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해왔다. 안 이사는 “장애인들이 ‘학습된 무기력증’을 타파하고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각오를 전했다.
안 이사는 이번 서비스 개발의 취지에 대해 “장애인 250만 명 중 14만6000명은 운전면허가 있지만, 이들 대다수는 운전자보험이 없어서 사고가 나도 제대로 된 보장조차 받지 못한다”며, “합의금이 없어 그냥 ‘몸으로 떼우는’, 즉 징역살이를 자청하는 장애인들이 태반”이라고 전했다. 이런 억울한 피해 사례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관련 보험 개발이 절실했다는 설명이다.
안 이사는 “장애인들이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금융’으로 ‘복지’를 풀어난 사례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안규환 이사와 함께 이번 보험 서비스를 준비한 김영웅 대표는 “안규환 이사를 만난 뒤 장애인들의 삶이나 고충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던 것이 부끄러웠다”며, “보험 원수사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 형태를 지니는 인바이유였기에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상품 개발 취지를 밝혔다.
아울러 김 대표는 이번 서비스에 대해 “시작은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향후 이 상품에 살을 붙여가는 ‘디벨로핑’ 방식으로 진화시켜 나갈 것”이라는 계획을 덧붙였다.
인바이유는 향후에도 안규환 이사와 함께 ‘장애인을 위한 생활체육인 보험’이나 ‘장애인 자영업자를 위한 상해보험’ 등 다양한 상품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다.
◇ 내년 장애등급제 폐지…금융당국·보험업계 대대적 혼란 대비 TF 구성
지난 3월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2년)을 심의·확정했다.
장애인의 권익 보호를 위해 1988년 도입됐던 장애등급제는 좋은 취지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개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급수에 따른 획일적이고 일괄적인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를 두고 행정적인 편의만을 위해 만들어진 졸속 정책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국회는 지난해 본회의를 거쳐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장애인연금법 등의 개정해 ‘장애등급’을 ‘장애정도’로 변경하고 내년 7월부터 등급제를 폐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이로 인해 보험업계는 때 아닌 비상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보험 상품 중에서는 이러한 ‘장애등급’에 근거한 보험금 지급 여부를 판단하는 상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보험사에서는 ‘사고 후 후유장해보장’과 관련된 약관에서 장애등급을 활용하고 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6년에 걸쳐 판매된 장애등급 관련 보험 상품만 280만 건에 달한다.
만약 내년 7월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 기존 보험 상품들은 대대적인 개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과정에서 보험사들이 장애등급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꺼리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해 보험연구원 조용운 연구위원은 “보험사가 직접 장애진단서에 기초해 기존 장애등급판정기준에 따른 자체적인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와 보험사간 이견이 발생할 경우 제 3의 의료기관 및 정부가 중재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이 이어졌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지난 6월부터 TF를 구성하고, 장애인등급제 폐지에 따른 대안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다만 아직까지 TF를 통해 유의미한 결론이 도출되기까지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업계 역시 장애등급제 폐지의 좋은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다”고 전하는 한편, “장애등급제 폐지로 인해 보험업계 전체가 일괄적으로 약관을 고치는 일은 사실상 힘들 것이므로, 점진적인 적용으로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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