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1992

대한민국 최고 금융경제지

닫기
한국금융신문 facebook 한국금융신문 naverblog 한국금융신문 instagram 한국금융신문 youtube 한국금융신문 newsletter 한국금융신문 threads

[김의석의 단상] '빅스피커' 이찬진과 관치(官治)의 그늘

기사입력 : 2026-09-23 17:00

  • kakao share
  • facebook share
  • telegram share
  • twitter share
  • clipboard copy

금융지주 회장 불러 계파·친소 배제한 CEO 인사 주문
역대 금감원장들의 반복되는 지배구조 메시지 논란
금융당국 개입과 금융회사 자율경영 사이 경계선 주목

[김의석의 단상] '빅스피커' 이찬진과 관치(官治)의 그늘이미지 확대보기
[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3일, 이찬진닫기이찬진기사 모아보기 금융감독원장이 8개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연말 은행장을 비롯한 대규모 자회사 CEO 선임을 앞두고 계파와 친소관계를 배제하라는 주문이었다. 불과 일주일 전 임원회의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내비쳤던 이 원장이 회장단을 직접 불러 메시지를 한층 분명히 한 것이다.

자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실질적 역할을 보장하라는 주문도 나왔다. 후보군 선정부터 검증·평가·기록까지 승계 절차를 구체화하라는 요구다. 이 원장은 사적 관계를 배제하고 적임자를 추천했다는 '대공무사(大公無私)' 고사성어까지 인용했다.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금감원이 2023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 8개 금융지주의 CEO 선임 사례에서 승계 절차 개시부터 최종 후보 결정까지 평균 45일이 걸렸고, 숏리스트 확정부터 최종 후보 결정까지는 평균 11일에 그쳤다. 대면 평가도 대부분 1회에 그쳤다. 글로벌 기업들이 후보군을 장기간 검증하는 것과 비교하면 국내 금융지주의 승계 절차가 촘촘하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회장과 이사회가 자회사 CEO를 사실상 결정하고 임추위는 형식적으로 뒤따르는 구조라면 분명히 손볼 대목이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배구조 원칙을 제시하는 것과 개별 회사의 인사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당국은 선진화를 위한 원칙이라고 설명하지만, 금융회사 입장에서 당국 수장이 CEO 선임 기준과 절차를 직접 언급하는 순간 단순한 원칙으로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CEO 인사는 자리 하나를 나누는 문제가 아니다. 실적과 건전성, 내부통제, 조직관리, 디지털 전환까지 회사의 명운을 가르는 경영 판단이다. 당국이 인사 기준과 절차에 반복해 신호를 보내면 이사회와 경영진이 시장과 주주보다 당국의 의중을 먼저 살피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낯선 장면도 아니다. 2018년 하나금융, 2019년 신한금융, 2022년 우리금융의 연임 국면마다 금융당국은 직간접적인 메시지로 제동을 걸거나 법적 리스크 우려를 전달해 왔다. 2023년 12월에는 CEO 승계 절차를 최소 3개월 전 시작하도록 한 모범관행까지 내놓았다.

이복현닫기이복현기사 모아보기 전 원장의 이러한 행보가 이번 이찬진 원장 때에도 그대로 재현됐다. 빅스피커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융지주 CEO 인사 국면에 감독당국의 메시지가 얹히는 장면이 되풀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찬진 금감원장의 지배구조 개선 촉구 속에 당국의 구두 개입이 금융사 자율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이미지 확대보기
▲이찬진 금감원장의 지배구조 개선 촉구 속에 당국의 구두 개입이 금융사 자율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이 주목하는 것은 명분이 아니라 방식이다. 계파와 친소관계 인사를 막고 회장에게 집중된 인사권을 손봐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실제로 주요 지주들은 자회사 임추위에 CEO 후보 추천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검토 중이다. 다만 해법이 감독당국의 메시지에 금융회사가 맞춰 제도를 서둘러 손질하는 방식으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 또 다른 관치 논란을 키울 수 있어서다.

권한을 재분배하기 전에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회장의 인사권을 견제해 임추위와 이사회에 권한을 더 실어준다면 그 결과는 누가 책임지는가. 추천한 CEO가 기대에 못 미쳤을 때 임추위와 이사회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고 누가 책임질지도 분명해야 한다. 그룹 전체 성과와 리스크는 회장에게 책임을 묻고 핵심 자회사 CEO 인사권만 나눈다면 권한과 책임의 경계선부터 다시 그어야 한다.

올해 말 5대 금융 계열사 CEO 54명의 임기가 끝나며 5대 은행장도 모두 만료 대상이다. 여기서 당국의 인사 기준을 읽는 일이 경영 성과 입증보다 앞선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은행장이 당국의 눈치를 먼저 살피면 경영의 자율성은 위축된다. 금융회사의 경쟁력은 당국의 의중을 읽는 기술이 아니라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데서 나온다.

지배구조 개선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금융회사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구조가 본래 취지라면 당국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금감원 역시 원장 개인의 메시지만으로 움직이기보다 방향 제시와 부원장단의 실행, 조직의 권한 위임이 맞물려야 감독의 일관성이 생긴다. 권한 위임과 책임의 원리는 금감원 내부 조직이나 민간 금융그룹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원칙과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고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독하면 된다. 금융회사 이사회와 임추위는 그 원칙 안에서 후보를 검증·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지면 된다. 이 선이 분명해야 관치 논란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관건은 누가 추천했느냐가 아니라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지느냐다. 당국이 인사·지배구조에 메시지를 던지고 금융회사가 그에 맞춰 제도를 손질하는 장면이 되풀이되면 관치 논란도 반복된다. 금융시장이 원하는 것은 당국의 목소리가 큰 시장이 아니라 원칙이 분명하고 예측 가능한 시장이다.

지배구조는 당국의 목소리를 키우는 데서 서지 않는다.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구조에서 선다. 권한과 책임이 맞물리고 감독과 경영의 경계가 분명할 때 금융시장도 그 질서를 신뢰할 수 있다. 이찬진 금감원장의 이번 촉구가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어질지, 또 하나의 관치 사례로 남을지는 이 경계선에 달렸다.

김의석 한국금융신문 기자 eskim@fntimes.com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

가장 핫한 경제 소식! 한국금융신문의 ‘추천뉴스’를 받아보세요~

issue
issue

오피니언 BEST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