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보다 엄격해진 기준의 자산 실사를 거쳐 대규모 자본이 확충되자 은행의 지급 능력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일시적으로 해소되었고 단기 자금시장의 경색도 점차 완화되었다.
해외 시장에서 일본 은행들의 발목을 잡던 '재팬 프리미엄'이 점차 소멸된 것 역시 은행 자체의 건전성이 회복되어서라기보다 당국의 공적자금 투입과 유동성 보증이 만들어낸 표면적 안정에 가까웠다.
이러한 시장 안정과 경기 회복 조짐에 힘입어 대형 금융기관의 연쇄 파산 우려도 크게 줄어들었고 금융시장과 정책당국에는 위기 국면이 사실상 끝났다는 안도감이 팽배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금융시장의 안정은 금융시스템의 체질이 개선되어 나타난 결과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 부실의 표면을 덮어버린 데 따른 착시 현상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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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정상화의 함정
정책당국의 가장 치명적인 판단 오류는 금융시장의 일시적인 안정과 경기 회복 조짐을 금융시스템이 다시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는 점이다.위기의 근본 원인이 해소되었다고 착각한 당국은 금융시스템이 이제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책당국은 부실채권을 장부에서 신속히 제거하도록 한 엄격한 지침을 유예하고 환급 가능성이 희박한 이연법인세자산을 자본으로 활용한 은행들의 '자본 부풀리기'를 사실상 방치하는 등 금융감독을 대폭 완화했다.
정책당국과 정치권은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있다는 자신들의 낙관적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빠졌고 추가적인 공적자금 투입과 구조조정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회피하려는 유인이 이러한 편향을 더욱 부추겼다. 이미 잇따른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으로 국민적 반발과 정치적 부담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정치권과 정책당국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다시 추진할 정치적 결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이러한 정치적 제약 속에서 금융시장의 안정과 경기 회복 조짐은 위기의 근본 원인이 해소되었다는 착시를 낳았고 구조조정 지연을 정당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국은 금융시장의 안정과 경기 회복 조짐을 "더 이상의 추가적인 구조조정 조치는 불필요하다"는 논리의 근거로 삼아 조기 정상화 선언을 서둘렀다.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부실을 끝까지 직시하기보다 정치적 책임을 피하는 쪽을 선택한 결과였다.
결국 부실을 조기에 인정하고 정리하기보다 "경기가 회복되면 남은 부실채권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 정책의 무게가 실렸다. 금융청 출범과 2차 공적자금 투입으로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핵심 대응이 일단락되자 당국 안팎은 “필요한 조치는 이미 다 취했다”는 착각 속에 안도감에 사로잡혔다.
그 결과 어렵게 마련된 구조개혁의 추진 기반은 약화되었고 개혁 동력은 점차 상실되었다. 위기의 진정을 구조적 회복으로 오인한 대가는 컸다. 미완의 개혁으로 남겨진 구조적 부실은 결국 일본 경제를 10년 넘는 장기 침체에 묶어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고 말았다.
시장 안정과 시스템 건전성의 혼동
1999년 봄에 나타난 금융시장의 안정은 실제로는 금융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은행 간 단기자금 거래가 재개되고 주가와 금리 등 시장 지표가 안정을 되찾은 것은 은행의 재무 건전성이 실제로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부가 대형 은행의 붕괴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묵적 보증에 금융시장이 반응한 결과였을 뿐이다. 즉 구조개혁의 성과로 나타난 금융시장의 안정이 아니라 대규모 정책 개입에 의해 유지된 일시적인 안정에 불과했다.정책당국의 가장 결정적인 오류는 금융시장의 일시적인 안정을 금융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로 오인한 데 있었다. 당시 시장 안정의 실체는 공적자금과 정책 지원으로 은행의 단기 자금조달 여건을 개선한 '유동성(Liquidity)의 회복'에 불과했으나 이를 은행 시스템 자체의 '지급 능력(Solvency) 회복'으로 착각한 것이다.
유동성은 만기가 돌아온 단기 채무를 제때 갚을 현금이 있는가의 문제인 반면 지급 능력은 보유한 자산으로 모든 채무를 갚을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대규모 공적자금과 일본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은 단기 자금시장의 결제 마비를 해소했을 뿐 은행 자산의 부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은행의 지급 능력이 회복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즉 은행의 단기 유동성 문제는 숨통이 트였으나 자산의 실질 가치가 장부가를 대폭 하회하면서 발생한 '실질적 자본잠식' 상태는 그대로 방치되었다.
개별 은행의 신용위험을 반영하는 콜금리 스프레드가 줄어든 것 역시 은행 본연의 건전성 회복을 뜻하지는 않았다. 이는 은행들이 여전히 위험한 상태에 있었지만 국가가 대형 은행의 붕괴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의 암묵적 기대가 작용한 결과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국은 유동성 위기가 진정된 것을 은행권의 지급 능력이 회복된 것으로 착각했다. 막대한 부실채권이 그대로 남아있고 자산 분류 기준 또한 여전히 불투명했음에도 단기 자금시장의 거래가 정상화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은행권의 재무 상태가 건전해졌다고 오판한 것이다. 이에 따라 고통스러운 부실 정리는 유예되었고 시장 안정은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아니라 개혁을 미루는 명분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오판은 재정 및 통화 정책 전반의 실책으로 이어졌다. 1999년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서자 당국은 이를 본격적인 경기 회복 신호로 받아들였다.
디플레이션 압력과 만성적인 수요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외면한 채 정부는 2000년 들어 경기부양을 위한 보정예산(추경) 편성을 줄이고 공공사업비를 삭감하는 등 재정건전화로 조기 선회했다. 여기에 일본은행은 정부가 디플레이션 우려를 이유로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8월 제로금리 정책을 종료하고 금리를 인상했다. 그 결과 재정과 통화 정책 양면에서 조기 긴축이라는 치명적인 정책 오류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금융시스템 개혁과 거시경제 회복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려는 전략적 접근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금융 안정이 곧 실물경제의 자생적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안일한 낙관론이 정책 전반을 지배하면서 금융 부문의 구조조정은 지연되었고 경기 회복을 뒷받침할 거시경제정책 역시 적시에 충분한 강도로 추진되지 못했다.
안정을 명분으로 한 개혁의 유예
이처럼 재정과 통화 정책 양면에서 무모하게 단행된 조기 긴축의 대가는 즉각 나타났다. 경제가 스스로 일어설 회복 기반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단행된 긴축은 미약하게나마 살아나던 경기 회복세를 다시 꺾어놓았다. 결국 일본 경제는 2001년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며 장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단기 지표의 착시를 본격적인 경기 회복으로 오판한 정책 실책은 금융 부문의 구조개혁 동력을 약화시키고 실물경제의 회복 기반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이러한 조기 긴축을 불러온 근거 없는 낙관론은 금융 당국의 경계심을 늦추는 결과로 이어졌다. 2차 자본 투입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강화되었던 자산 평가 기준마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다시 완화되었다. 당국은 엄격한 자산 실사와 충당금 적립 요구가 시장에 불필요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해당 조치의 강도를 다시 낮췄다. 그 결과 은행들은 자의적인 자산 분류와 느슨한 충당금 적립 관행으로 회귀했다. 시스템 안정을 명분으로 한 손실 인식의 지연은 감독 당국과 은행이 부실 정리를 미루며 손실 확정을 회피했던 '시간벌기 전략(forbearance)'을 다시 반복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부실 금융기관 퇴출에 대한 정책 기조 역시 시장 규율보다 단기적 금융 불안 억제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1997~1998년 연쇄 파산이 남긴 트라우마로 인해, 당국은 개별 은행의 파산 자체를 곧바로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해석하며 과잉 대응했다. 그 결과 시장 규율에 따른 퇴출보다 합병과 공적자금 지원을 통한 연명을 우선시했고 공적자금은 구조조정의 촉매가 아닌 부실을 덮는 안전망으로 변질되었다.
실제로 일본장기신용은행과 일본채권신용은행을 국유화하는 등 파산은행에 대한 적극적 정리 정책은 약 1년 남짓 지속되는 데 그쳤다. 호시 다케오와 아닐 카시얍(Anil Kashyap)이 지적했듯이 2001년 금융재활성화법 시효 종료와 함께 부실 정리 전권을 쥐었던 금융재건위원회가 금융청으로 흡수되면서 감독 기조는 다시 온정주의로 급선회했다.
2001년 야나기사와 하쿠오가 금융담당상으로 취임한 이후 금융청은 주요 은행에 대한 특별검사를 실시했고 2002년 4월 "모든 은행의 자본은 충분하다"는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은행권의 자본 부족 가능성을 다시 검토하기보다 금융 문제가 이미 해소되었다는 당국의 판단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에 가까웠다. 구조적 취약성을 덮어둔 채 외형상의 안정만을 강조함으로써 금융시스템이 이미 정상화되었다는 착시를 만들어냈고 이는 정작 시급했던 근본적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야나기사와 하쿠오에 이어 금융담당상에 임명된 다케나카 헤이조는 취임 직후 은행의 부실을 엄격하게 파악하지 않고 자본이 충분하다면서 위기를 덮어두려 했던 금융청의 태도를 '친절하지만 환자를 죽이는 의사'에 비유하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의사가 환자에게 '당신은 아무 이상 없습니다'라고 기분 좋은 소리를 해주는 것이 언뜻 인자해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병을 키워 환자를 죽게 만드는 것과 같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엄격한 진단과 수술이다"라며 관료주의의 안일함을 꼬집었다.
당시 약 10조 엔의 공적자금이 이미 투입된 상황에서 금융청 내부에는 "은행 실적은 곧 개선될 수밖에 없다"는 과도한 낙관론이 팽배해 있었다. 만약 은행의 실적 악화를 공식화할 경우 과거 정책 대응의 실패를 스스로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행정의 오판을 인정하는 순간 조직의 권위와 정책 정통성이 무너진다고 보는 관료 조직 특유의 무오류에 대한 집착이 냉정한 현실 평가를 가로막은 셈이었다.
당국이 낙관론에 빠져 손실 인식을 미루는 동안 금융 감독의 자본 규제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은행들은 자본비율 요건을 맞추기 위해 대출을 회수하며 자산을 강제로 축소해 신용 경색을 심화시켰다. 동시에 실제 손실 흡수 능력이 없는 이연법인세자산을 자기자본으로 대거 인정받는 회계적 연금술에 의존했다. 당국의 방조 속에 "향후 수년간 이익을 내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는 낙관적 전제를 바탕으로 '신기루에 가까운 자본'을 장부에 적립하여 착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기자본비율이라는 양적 지표는 규제 기준을 충족했지만 자본의 질과 실질적인 손실 흡수 능력에 대한 검증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은행들은 증자를 통한 실질적인 자본 확충보다 대출 축소를 통해 위험가중자산을 줄이고 회계·규제상 허점을 활용해 장부상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하는 방식을 택했다. 부실 정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비율 규제의 부담은 신용 공급 위축이라는 형태로 실물경제에 전가되었다.
구조조정 정책 또한 근본적인 개혁보다는 당장의 파국을 모면하는 미봉책에 초점이 맞춰졌다. 1998~1999년 사이 이루어진 대형 은행 간 합병과 재편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제적 개혁이라기보다 진정한 구조조정을 회피한 채 덩치를 키워 당장의 생존을 모색한 소극적 재편에 불과했다.
일본흥업, 다이이치캉교, 후지은행 등 3개 대형 은행이 합쳐진 미즈호 금융그룹의 출범에서 보듯 인력 감축이나 지점망 축소와 같은 실질적인 비용 절감보다 출신 은행별 기득권 나누기와 외형적 규모 확대에 치중했다. 노조와 지역 사회 그리고 정치권의 반발을 의식한 나머지 과잉 지점망 축소, 인력 감축, 중복 전산망 통합 같은 근본적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정책당국 역시 금융 불안을 재점화하지 않겠다는 명분 아래 은행들에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하지 못했다.
안정의 착각이 부른 지연된 대가
결국 위기 진정 국면에서 정책당국의 선택은 단기적 안정을 이유로 개혁을 회피한 것에 불과했다. 공적자금 투입으로 찾아온 일시적 시장 안정은 근본적인 구조조정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보다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다며 안일하게 대처할 명분을 제공했다. 눈앞의 급한 불은 껐을지 모르나 부실채권과 취약한 자본 기반 그리고 느슨한 경영 규율이라는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착시 속에서 정책당국은 위기가 끝났다고 확신하는 결정적인 오판을 내렸다.종합하면 위기 진정 이후 일본의 정책 대응은 금융위기의 확산과 시스템 붕괴를 막는 데에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데에는 실패한 선택이었다.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은행권의 연쇄 파산은 저지했으나 금융 불안이 진정된 것을 금융시스템의 정상화로 오인한 나머지 부실자산의 신속한 정리와 은행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라는 핵심 과제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
일본의 경험은 금융위기 대응에서 가장 치명적인 함정이 일시적인 안정 신호를 위기의 종결로 오인하는 순간임을 보여준다. 정책당국이 안일한 태도와 개혁 피로감에 빠져 부실 정리를 계속 미루자 부실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지 못했고 은행의 신용중개 기능도 마비되면서 금융시스템의 부실은 계속 누적되었다.
이처럼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해소할 기회를 놓친 결과 '안정의 착각'이 남긴 정책적 공백은 결국 일본의 장기 침체를 더욱 깊고 길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금융위기 극복의 성패는 위기를 수습한 뒤 진정한 구조개혁을 완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음을 1990년대 일본의 사례는 일깨워준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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