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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보고서, '착한 이야기' 넘어 '회계장부'된다

기사입력 : 2026-07-0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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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10조 상장사, 2028년 지속가능성 의무 공시
삼정KPMG "재무보고 수준으로 체질 개선 필요"

[한국금융신문 장종회 기자] 기업이 해마다 펴내던 ESG 보고서는 그동안 홍보물에 가까웠다. 좋은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모아 예쁘게 편집한 책자나 다름없었다. 공시 항목, 수치 정확도, 발간 시점 등이 모두회사 재량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관행이 뿌리째 바뀌게 됐다.

금융위원회와 여당이 지난 8일 발표한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 실행이 본격화할 전망이어서다. 당국의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방안에 따르면 2028년 사업보고서에는 자산이 10조 원 이상인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을 관련 정보를 정확하게 기재해야 한다. ESG 정보가 재무제표와 똑같은 무게로 다뤄지는 것이다. 공식 문서에 담기니 숫자 하나라도 틀리면 안되고, 외부 감사도 받아야 한다.

삼정KPMG는 이 같은 변화를 짚은 '지속가능성 의무공시 시대, 기업의 공시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보고서를 9일 발간했다. 보고서는 한국형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이른바 KSSB 도입을 계기로 기업들이 공시 조직과 데이터 관리, 내부통제 체계를 통째로 손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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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10조원부터, 2028년 사업보고서에 담아야

당국은 한국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기준에 따라 지속가능성 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핵심은 이렇다. 연결재무제표 기준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는 2028년 사업연도(2027 회계년 실적)부터 공시 의무를 진다. 2029년에는 자산 5조 원 이상 기업으로 의무 공시 대상이 확대된다. 당국에서는 시장이 적응하는 과정을 점검하면서 2030년부터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지난 2월 나온 초안에 비해 기준이 훨씬 강해졌다는 점이다. 초안에서는 자산 30조 원 이상 기업부터 시작하도록 했는데 최종안에서는 10조 원으로 낮아졌다. 처음부터 더 많은 기업이 공시 대상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공시하는 곳도 달라진다. 초안에서는 한동안 거래소 공시로 운영하다 법정 공시로 넘어가는 방식이었지만, 최종안은 처음부터 자본시장법에 따른 사업보고서 안에 넣게 했다. 공시 시점도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인 3월 말로 통일된다. 그동안 여름에 나오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관행으로는 이 일정을 맞추기 어려워진다.

기업들의 부담을 고려한 유예 장치는 들어갔다.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협력업체 등 가치사슬 전반에서 나오는 이른바 '스코프3' 배출량은 처음 공시 의무가 생긴 뒤 3년간 유예된다. 자산이나 매출이 연결기준 10% 미만인 국내외 종속기업은 첫 해에 한해 공시에서 뺄 수 있다. 회계법인 등 제3자의 인증은 공시 의무화 2년 뒤인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의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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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는 필수, 나머지는 선택

KSSB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만든 국제기준을 뼈대로 하되 국내 사정에 맞게 다듬은 기준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공시 대상의 우선순위다. ISSB는 모든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과 기회를 원칙적으로 다 공시하도록 하면서, 처음에는 기후 정보만 공시해도 되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KSSB는 기후를 의무 공시 항목으로 하고, 그 밖의 것들은 기업이 선택해서 공시토록 했다. 기후 변화가 회사 실적에 미치는 영향을 숫자로 계산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고, 국제 자본시장에서도 가장 관심이 큰 부문이라는 게 삼정KPMG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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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지표를 쓸 때 KSSB는 좀 더 여유를 뒀다. ISSB는 특정 산업의 위험과 기회를 따질 때 관련 지표를 반드시 참고하도록 했지만, KSSB는 참고사항으로 완화했다. 국내 산업 구조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새로 도입하는 제도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점을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 그런 만큼 최종안에는 도입 초기 3년간 손해배상, 행정제재, 형사처벌 등을 면제해 주는 안전장치가 담겼다. 그래도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손해배상과 행정책임을 물릴 수 있다는 단서가 달렸다.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겪을 때 부담을 덜어주면서도 악의적 부실 공시는 봐주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다만 이런 유예 장치는 준비 기간을 벌어주는 것일 뿐이고 공시체계 구축을 늦추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들의 네 가지 숙제

삼정KPMG는 지속가능성 의무공시 시행에 앞서 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과제를 네 가지로 짚었다. 첫째는 공시 프로세스를 새로 짜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성적인 사항을 위주로 보고서를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숫자 중심의 정량 공시가 핵심이다. 어떤 지표를 어떻게 계산할지 회사 안에서 통일된 기준을 정하고, 자회사별로 흩어진 데이터를 모으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입력, 검토, 승인으로 이어지는 검증 절차와 증빙 관리도 문서로 남겨야 한다.

둘째는 거버넌스를 확실히 해 책임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국내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지속가능성 공시의 최종 책임자를 최고경영자(CEO)로 두는 곳이 47%로 가장 많고, 최고재무책임자(CFO)가 25%로 뒤를 이었다. 최근에는 CEO가 맡던 게 CFO로 넘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속가능성 정보가 사업보고서를 통해 재무공시와 한 틀에 묶이는 데 따른 대응으로 보인다. 실무 조직도 재무, 회계, 내부회계 담당자 중심으로 인사, 법무, 홍보, 투자자관계(IR) 부서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가 널리 쓰이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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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보고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원칙은 간단하다. 재무제표를 연결로 작성하는 회사라면, 지속가능성 공시도 똑같이 연결실체 전체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자회사를 임의로 빼는 방식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실제로 무엇을 얼마나 자세히 공시할지는 투자자 판단에 영향을 줄 만한 정보인지 '중요성'에 따라 달라진다.

넷째는 인증이라는 외부 검증에 대비하는 것이다. 현재의 국제 인증기준은 지속가능성 정보만을 겨냥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느슨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 도입될 새 국제인증기준인 ISSA 5000은 재무제표 감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깐깐해진다. 정보가 만들어지는 시스템과 내부통제를 들여다보고, 협력업체 등 외부에서 들어오는 데이터의 신뢰성까지 따진다. 따라서 공시 체계를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검증을 통과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드는 게 안전하다는 지적이다.

이사회에 전담 위원회 구축 급증

보고서에는 국내외 기업의 실제 대응 현황도 담겼다. KPMG인터내셔널이 해외기업 50여 곳(2024년), 삼정KPMG가 국내 대기업 30여 곳(2026년)을 조사한 결과다. 조사에 따르면 대상 기업의 절반 가량이 이사회 안에 지속가능성이나 ESG를 전담하는 위원회를 따로 두고 있다. 운영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국내 기업은 조사 대상 전부가 별도 위원회를 두고 'ESG위원회' 같은 이름으로 지속가능성 이슈를 폭넓게 다룬다. 해외 기업은 지속가능성만 따로 떼지 않고 경영, 보상, 안전, 조직문화 등을 다루는 기존 위원회에 관련 안건을 처리토록 한 사례가 많다.

공시 담당 조직과 관련해서는 조사 대상 기업의 90% 이상이 전담 조직을 갖췄고. 상당수가 'ESG'나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름을 내건 별도 조직이었다. 20% 가량은 여러 부서가 협의체나 태스크포스 형태로 참여했다.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에는 절반 이상이 담당 인력을 3명 이하로 운영했지만 최근 2년 새 2배 넘게 담당자를 늘렸다. 사람과 조직부터 먼저 갖춰가는 모양새다.

황재남 삼정KPMG 부대표는 "KSSB 도입은 기업이 지속가능성 정보를 만드는 체계를 재무보고에 준하는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는 뜻"이라며 “공시 대상 기업은 단순히 보고 범위를 넓히는 데만 매달릴 게 아니라 중요 정보를 가려내는 일부터 데이터 관리, 내부통제, 인증 대응까지 전사적인 실행 체계를 미리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규모에 따라 공시 의무 시행 시점이 순차적으로 다가오겠지만, 프로세스와 시스템, 거버넌스를 갖추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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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 ‘발등에 불’

자산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는 국내에서 100곳을 웃돈다. 이 회사들은 2027 회계년 실적부터 당장 지속가능성 공시를 사업보고서에 넣어야 한다. 준비 기간이 1년 남짓 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해외 자회사를 거느린 기업이라면 자회사별로 흩어진 데이터를 모으고 표준화하는 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엑셀 파일을 이메일로 주고받으며 취합하는 방식으로는 연결기준 데이터의 정확성을 맞추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는 이런 기업일수록 태스크포스(TF)에 재무 전문가를 참여시켜 재무 부서와의 협업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국가나 지역별로 우선순위를 정해 단계적으로 공시 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제안이다. 계열사가 많은 그룹은 주요 계열사부터 먼저 체계를 세우고, 나머지 계열사로 넓혀가는 방법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재무제표 공시도 처음부터 지금처럼 엄격하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회계기준이 정비되고 감사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체계를 갖췄다. 지속가능성 공시도 같은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 속도는 과가에 비해 훨씬 빨라지는 추세여서 기업들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시행 시점과 대상이 결정된 만큼 차질 없는 실행이 중요하다. 데이터를 모으고, 책임자를 정하고, 검증을 대비하는 것을 얼마나 빠르게 잘 갖추느냐에 따라서 기업들의 공시 성적표가 갈릴 전망이다.

중견 상장사도 손놓고 있어선 곤란

자산이 10조 원 아래인 기업이라도 손놓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로드맵대로면 2029년에는 자산 5조 원 이상, 2030년 이후엔 2조 원 이상 기업까지 확대되니 중견 상장사도 몇 년 안에 같은 숙제를 떠안게 된다. 대기업의 협력업체라면 사정이 더 복잡하다. 대기업이 연결기준으로 스코프3 배출량을 공시해야 하기 때문에 원청 회사가 온실가스 배출 데이터를 요구하는데 협력업체가 대응할 수밖에 없어서다. 공시 의무가 없는 중소·중견기업이라도 거래처의 요청으로 데이터를 미리 갖춰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최종안은 몇몇 대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에 걸쳐 데이터 관리 방식을 통째로 바꾸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공시 의무가 목전에 닥친 기업이든 아니든 이제는 자기 회사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를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할 때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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