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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5조 원의 종자돈, AI 문명 구축의 주춧돌을 놓다 [전명산의 AI블록체인도시 이야기⑭]

기사입력 : 2026-07-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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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문명을 향한 거대한 전환, 가속해도 괜찮아!

4,755조 원의 종자돈, AI 문명 구축의 주춧돌을 놓다 [전명산의 AI블록체인도시 이야기⑭]이미지 확대보기

우리도 천조국!

'천조국'은 국방비를 1,000조 원 단위로 쓰는 나라, 즉 미국을 지칭하는 단어다. 실제로 미국의 2024년 국방예산은 9,680억 달러, 한화로 약 1,429조 원에 달한다. '천조국'이란 단어에는 감탄과 자조가 함께 배어 있다. 부럽고 대단하지만, 어차피 감히 넘볼 수 있는 규모는 아니라는 체념 담긴 표현이다.

그런데 지난 한 주, 한국 사회는 스스로 '수'천조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한 주였다.

지난 6월 29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삼성과 SK는 향후 10년간 총 4,755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이 2,655조 원, SK가 2,100조 원을 국내에 투자하고, 정부는 국가의 모든 정책 자원을 동원해 이를 뒷받침하기로 했다.

국토 전역을 다섯 개의 초광역권(수도권·충청권·동남권·대경권·호남권)과 세 개의 특별자치도(강원·전북·제주)로 재편하는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 균형발전 체제가 이번 발표를 통해 본격적인 첫 실행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사실 2026년 초부터 일련의 메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지난 2월 27일 현대차그룹의 정의선닫기정의선기사 모아보기 회장은 5극 3특 중 '3특'의 하나인 전북 새만금에 9조 원 규모 투자를 전격 발표했다.

자동차와 로봇을 필두로 하는 Physical AI 경쟁에서 글로벌 선두가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자신들을 "인간 중심 피지컬 AI 선도 기업"으로 규정했다.

6월 29일의 4,755조 원 발표는, 2월 27일 새만금에서 포문을 연 AI 문명 대전환 계획이 대한민국 경제지도 대개조 수준의 프로젝트로 공식화된 결과다.

4,755조 원이라는 숫자의 무게는 어마어마하다. 미국의 5대 빅테크(아마존·구글·메타·MS·오라클)가 2026년 한 해에 AI 인프라 구축에 쏟아붓겠다고 발표한 금액이 약 6,500억~7,000억 달러, 한화로 대략 1,000조 원이다.

한국은 10년에 걸친 계획이지만, 미국 국토의 100분의 1 크기 좁은 땅덩어리에서 4,755조 원을 쏟아붓는다는 것은-어쩌면 1년에 천조 원을 쏟아붓는 미국 빅테크보다도 인구·국토 대비 더 과감한 베팅일 수 있다. 진정 단군 이래 최대 수준의 사업이다.

한국, AI 대전환을 가속화하다

이 투자는 대부분 공장·팹·데이터센터 같은 생산시설 구축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그 방향은 단순한 생산시설 확충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발표는 한국 사회가 'AI 대전환(AX)'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명백한 선언이다.

AI 대전환은 생산시설을 짓는다고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세 개의 층이 함께 세워져야 한다.

첫 번째 층은 물리적 AI 인프라다.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 냉각 시설 등, 이번 4,755조 원은 대부분 AI 전환을 위한 물리적 인프라 구축에 배정되어 있다. 미국이 지난 3~4년간 수천조 원 규모로 쌓아 올려 글로벌 최선두 AI 국가로 만든 층이고, 한국이 이제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한 층이다.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소개 내용. (출처 : 2026년 6월 29일 청와대 트위터)이미지 확대보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소개 내용. (출처 : 2026년 6월 29일 청와대 트위터)

두 번째 층은 피지컬 AI(Physical AI)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CES 2025에서 "챗GPT 이후 AI의 다음 물결"이라고 선언한 그 개념으로, 아주 단순화하자면 AI가 로봇 안에 내장되어 지능을 가진 로봇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 자율 물류, 스마트 팩토리가 3차원 공간의 물리 법칙을 이해하고 사람처럼 지능적이고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삼성이 영남권 60조 원 투자의 핵심을 '피지컬 AI'로 규정한 것, 현대차그룹이 스스로를 '인간 중심 피지컬 AI 선도 기업'이라 부른 것,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 중 하나를 '피지컬 AI 클러스터'로 이름 붙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계에서 로봇 밀도가 가장 높은 한국이 자기의 강점을 정확히 포착해 그 위에 다음 단계를 쌓아 올리겠다는 전략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회 현상이 등장한다. AI가 화이트칼라 노동을 대체하고, 피지컬 AI는 블루칼라 노동을 대체한다. 이 두 개의 변화가 '노동 소멸'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초래한다. 그리고 이것이 AI 대전환의 세 번째 층을 만들어낸다.

아쉽게도 세 번째 층은 아직 정답이 없다. 이 숙제는 앞의 두 층과 성격이 다르다. 물리적 인프라와 피지컬 AI는 자본과 기술과 시간으로 풀 수 있다. 그러나 사회 구조는 그렇지 않다. AI 시대에는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극도로 집중될 위험이 크다. 아무리 강력한 AI 인프라를 갖춰도 그 성과가 소수에게만 흘러가는 구조라면 사회는 유지되지 않는다. 즉 우리는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샌더스·배넌·올트먼·트럼프·밴스가 좌우를 넘어 같은 목소리를 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사회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사회가 AI 기술에 짓눌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움직임은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7월 2일자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샘 올트먼은 오픈AI 지분의 5%(회사 가치 8,520억 달러 기준 약 426억 달러, 한화 약 70조 원)를 미국 정부에 넘기는 안을 백악관과 협의 중이다. 오픈AI 혼자가 아니다. 올트먼은 구글·메타·앤스로픽 등 미국의 주요 AI 기업이 각각 5%씩 정부의 국부펀드에 지분을 출연하고, 이를 알래스카 영구기금(Alaska Permanent Fund) 모델로 운영해 시민에게 배당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국은 AI 기업들의 지분 중 일부를 공공이 공유하는 방식으로 AI 시대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긍정적인 것은, 우리 정부도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숙제'로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민석 전 국무총리는 지난 6월 24일 중국 다롄에서 열린 '2026 하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특별연설에서 "AI 대전환으로 생겨날 막대한 부와 기본소득을 결합하는 모델을 고민하고 있다"고 공식 언급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성남시장 시절부터 '기본소득'에 관심을 두어 왔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AI 시대에 기본소득을 구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국회 글로벌 AI 허브 유치위원회 간사이자 이재명 정부 'AI 기본사회' 구상을 설계한 차지호 의원은 최근 한 유튜브 방송에서 “한국이 AI 인프라에 대해 견고한 투자를 했지만, AI 전환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어떤 경제 시스템을 가질 수 있을까? 아직 아무도 그것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면 한국이 AI 시대의 새로운 표준이 되어 글로벌 AI 문명을 주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 시대의 사회-경제 문제까지 풀 수 있다면, 한국은 진정 AI 시대의 새 문명을 만들어내는 국가가 된다. 주위를 둘러봐도 이 숙제를 풀 만한 국가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전 국민의 디지털 이해도가 높아야 하고, 피지컬 AI를 구현할 대규모 생산 시설이 있어야 하며, AI 문명의 기초 재료인 반도체 문제도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AI와 로봇을 다룰 기술적 능력도 상위권이어야 하고, 그 계획을 밀고 나갈 막대한 자본도 필요하다. 천우신조인지 반도체 산업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잉여가 우리에게 그 자본을 만들어주었다. 또한 최근 중동 분쟁에서도 확인한 바, 국지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시설이 공격 목표가 되는 양상에 대응할 수 있는 튼튼한 국방력도 필요 요건 중 하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마지막 조건이 있다. 그것은 전 세계인들의 신뢰와 문화적 공감, 그 국가와 시민들에 대한 비적대감과 호감이다. K-POP과 K-Culture가 대표하는 K-브랜드는 이미 지구 공통의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현재 시점 이 조건을 가진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어 보인다.

21세기 한국은 다음 시대의 문명을 설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보유하고 있다. K-문명은 가능하다. (이미지: 생성형AI활용)이미지 확대보기
21세기 한국은 다음 시대의 문명을 설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보유하고 있다. K-문명은 가능하다. (이미지: 생성형AI활용)

문명 설계국이 얻는 프리미엄

역사적으로 새 문명의 모델을 만든 나라들은 수세기에 걸친 압도적인 경제 프리미엄을 확보해왔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라는 근대 자본주의 모델을 구축하였고, 100년 넘게 유럽의 맹주로 군림했다. 18~19세기 영국은 증기 동력에 기반한 산업혁명 모델을 만들었고, 대영제국은 세계 무역과 금융의 지배자로 세계를 호령했다. 미국은 현재의 보통 민주주의 체제, 대량생산 문명, 정보 산업 혁명을 주도하면서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문명 프리미엄은 여러 겹으로 구성된다. 표준을 만든 나라 기업이 로열티·특허·플랫폼 수수료를 걷는 표준 프리미엄, 자국 통화로 세계 무역의 값을 매기는 기축통화 프리미엄, 안전자산 지위로 세계 자본이 낮은 금리에 몰리는 자본 유입 프리미엄, 그리고 전 세계 인재가 자연스럽게 흘러드는 인재 프리미엄 등 다양한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다. 인류의 문명을 선도하고 미래를 개척한다는 자부심은 별도로 하고 말이다.

지금 한국이 발표한 4,755조 원은 단지 반도체 팹 몇 기, 데이터센터 몇 동을 짓는 돈이 아니다. AI 시대에 세계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우리 해법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하는 종자돈이다. 물리적 AI 인프라와 피지컬 AI만 잘 세워도 한국은 AI 시대의 반도체·로봇 강국이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단한 성공일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층, 'AI 시대의 새로운 사회경제 모델'까지 완성한다면, 우리가 얻는 것은 글로벌 AI 산업의 패권국 지위가 아니라 다음 세기 문명 모델을 만들어낸 문명 설계국의 프리미엄이다.

가속해도 괜찮아!

필자는 세 번째 숙제의 답으로 UBEE(Universal Basic Energy Equity, 보편적 에너지 기본소득)시민들이 에너지 생산 인프라를 직접 소유하고 그 수익을 배당으로 받는 구조를 제안해 왔다.

그러나 이것이 정답인지 또는 이것만이 정답인지는 실행해보기 전에 알 수 없다. 답은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여러 방법론이 병렬로 실험되고 검증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풀어야 할 문제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결국 찾게 될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미래를 알고 싶다면 그 미래를 스스로 만들라고. 어차피 올 미래라면, 먼저 빠르게 구현해 보고 먼저 대응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니 "가속해도 괜찮아!"


전명산 소셜인프라테크 대표는


블록체인 전문가로 기술과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변화를 연구하는 기획자이자 개발자이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인터넷 산업에서 25년 이상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최초 블로그 미디어 ‘미디어몹’을 기획한 바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싸이월드) R&D 연구소 팀장 등을 거쳐 블록체인 플랫폼과 분산시스템 기술을 개발해왔다. 현재 (주)소셜인프라테크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며 오랫동안 천착해 온 블록체인 거버넌스 연구를 바탕으로 AI·블록체인·에너지·도시 인프라를 결합, 기본소득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 체제로 전환하는 전기 문명 프로토타입 ABCity(AI Blockchain City)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책 『가속해도 괜찮아! ABCity-AI 시대를 위한 전기 문명 프로토타입』(2026)을 냈다.

전명산 칼럼니스트/소셜인프라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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