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닫기
이찬진기사 모아보기 금융감독원장의 뒤늦은 소회는 역설적이다. 시장을 바로잡겠다는 개혁 의지가 치밀한 제도적 견제를 만나지 못하면, 정책은 오히려 보호해야 할 시장을 흔드는 부메랑이 된다. 그 자신이 이를 인정한 셈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사태의 본질은 특정 인물의 자질 논란이 아니다. 대통령의 신임을 업은 '강한 원장'의 질주 속에서 권한은 비대해졌고, 부처 간 조정 기능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제 그 구조적 취약점을 냉정하게 짚어야 할 때다.금융시장은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에도 흔들릴 만큼 민감하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그 판단을 견제하고 걸러낼 장치가 멈춰 설 때 시작된다. 견제 장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수록 원장 개인의 철학과 리더십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비정상적으로 커진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특정 인물의 성향이 아니다. 권한을 제어해야 할 금융감독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다.
이찬진 원장은 민변과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 보호와 재벌 감시에 앞장서 온 시민사회 출신 법조인이다. 자본시장의 모순을 혁파하겠다는 문제의식은 분명 개혁 의지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의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개인의 철학이 뚜렷하고 추진력이 강할수록 이를 검증하고 보완할 부처 간 조율 제도는 더욱 치밀하게 작동했어야 마땅하다.
시장에서 '금융위 패싱'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나온 것은 감독당국이 앞서 달릴 때 속도를 조절해야 할 금융위원회와의 사전 조율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의 거시 안정성 점검이 충분했는지도 의문이다. 다른 시각이 충돌하고 조정되는 절차는 정책 추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시장의 충격을 줄이고 신뢰를 지키는 핵심 안전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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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국내 투자자금을 붙잡겠다는 명분으로 "급하게 준비됐다"던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결국 거시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미시적 파생상품으로 해결하려 한 무리수였다. 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는다.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배율과 상장 요건을 엄격히 제한한 결과, 거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에만 쏠리는 병목현상으로 이어졌다. 특정 종목의 변동성이 자본시장 전체로 전이되는 부작용이 뒤따랐고, 위험을 분산하려던 제도가 오히려 위험의 집중을 키운 셈이 됐다.
여기에 초단위 알고리즘 매매와 DMA(직접시장접근) 기반의 고속 주문 환경이 결합하면서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더욱 커졌다. 모바일 화면을 통해 거래하는 개인투자자는 속도와 정보의 격차 앞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인프라의 격차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상품 도입은 결과적으로 개인을 보호하기보다 알고리즘 거래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유동성공급자(LP) 제도 역시 본래의 완충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괴리율이 관리 범위를 벗어났는데도 시장 충격을 흡수하기는커녕 오히려 위험을 시장에 노출시켰다.
이번 상품은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코리아 밸류업' 정책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기업가치를 장기적으로 높이겠다는 밸류업의 취지와 달리,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초단기 투기 매매를 자극했다. 결국 주가는 기업의 펀더멘털이나 실적보다 수급과 호가 경쟁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정부의 큰 정책 방향과 감독당국의 미시적 상품 정책이 한 시장 안에서 엇박자를 내며 시장 신뢰를 갉아먹은 셈이다.
이찬진 원장의 소회는 결국 제도적 실패의 자백이다. 금감원이 속도를 낼 때 금융위원회는 제동을 걸지 못했고, 기획재정부의 거시적 점검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권한은 위기일수록 한곳으로 쏠리기 쉽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신뢰는 강한 권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권한을 끝까지 검증하고 균형을 잡는 절차에서 비롯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책임 회피식 해명이 아니라 무너진 제도의 복원이다.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는 사실상 멈춘 정책 조율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 외국인과 기관의 DMA 기반 고속매매 감시 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손질하고, LP 제도와 상장 심사, 사전 영향평가 체계도 실효성 있게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금융은 사람의 선의를 믿지 않는다. 권한을 견제하는 제도를 믿는다. 견제와 조율의 시스템이 멈춰 서는 순간, 실패는 언제든 또 다른 상품의 이름으로 반복될 뿐이다.
김의석 한국금융신문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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