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불과 두 달 전인 1월 대담에서 그는 "방향은 알겠는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했다. 두 달 만에 실행 방식까지 언급하기 시작했다. AI와 로봇을 가장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는 인물이, 고용 붕괴를 전제로 정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가볍지 않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AI와 로봇이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키울 테니, 돈을 찍어 뿌려도 인플레이션이 오지 않는다. 공급이 수요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원화를 찍어 뿌리는 순간 환율이 무너진다.
머스크가 UBI의 필요성을 처음 언급한 것은 2016년이었다. 그는 "로봇이 많은 일자리를 빼앗으면 어떤 형태의 보편적 기본소득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10년에 걸쳐 확신이 깊어졌고, 이제는 연방정부에 직접 행동을 촉구하는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고용 쇼크는 혼자 오지 않는다
지금 금융시장은 AI 투자 열풍 위에 서 있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까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고 있다. 그런데 이 구조에 역설이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AI 투자가 회수되려면 AI가 실제로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AI가 일을 잘하는 순간, 기업은 사람을 줄이기 시작한다. 동시에 생산성이 충분히 올라가면 추가적인 인프라 투자 속도는 둔화된다. AI의 성과가 입증되는 시점은 고용이 줄어드는 시점이며, 동시에 투자 사이클의 정점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징후는 보인다. 아마존은 최근 석 달 사이에 3만 명을 해고했다. IBM은 1년 사이 세 차례에 걸쳐 누적 최대 2만 명 이상을 감원했고, CEO는 AI 챗봇이 200개 HR 직무를 대체했다고 공식 인정했다. 세일즈포스 CEO는 AI로 고객지원 직원 4,000명을 감원했다고 직접 밝혔다. 하버드대 교수는 이를 "조용한 해고"라고 불렀다 — 기업들이 AI 감원이라는 이유를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진행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아직 초입이다. 2026년 4월, 앤트로픽의 클로드 미토스(Claude Mythos)는 사이버보안이라는 특정 영역에서 최고 수준 인간 전문가와 경쟁하거나 능가하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수백만 번의 자동화 테스트에서도 발견되지 못했던 취약점을 수천 개 찾아내고 익스플로잇까지 완성했다. AI의 '특정 분야 초월'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됐다. AI가 한 단계 발전할 때마다 산업이 하나씩 재편된다.
다음번 불황은 다를 것이다 — 고용은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경기 침체는 반복 가능한 사이클이었다. 고용이 줄었다가도 경기가 회복되면 다시 늘어났다. 일종의 법칙과 같았다. 그런데 이번은 그 법칙이 깨지는 시점에 다다랐다.한국에서 고용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은 해고가 대단히 어려운 구조다. 기업은 쉽게 사람을 자를 수 없다. 그러나 경제 위기는 이 구조를 강제로 깬다. 대규모 기업 청산과 구조조정이 법적 강제력을 등에 업고 한꺼번에 쏟아진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파고가 지나간 뒤 기업들은 사람을 재고용할 이유가 없다. AI와 로봇이 이미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한 번 도입되면 되돌리지 않는 자본재다.
이 구조에서는 경기 회복이 와도 고용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고용 없는 성장(Jobless Recovery)'은 낯선 개념이 아니다. 2010년대부터 등장한 이 표현이, 다음 불황 이후에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영구적 구조가 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30년까지 전 세계 고용주의 41%가 AI 자동화로 인력을 줄일 계획이라고 전망했다. 이 계획들은 경기와 무관하게 실행된다. 불황이 오면 실행 속도가 빨라질 뿐이다.
소득이 줄어든 사회에서 소비는 회복되지 않는다. 이는 기업 실적과 금융시장에도 장기적 영향을 준다. 문제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다. 자본주의 순환 구조 자체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해진다.
세금은 흔들리는 다리
가장 직관적인 해법은 세금이다. AI로 이익을 얻는 기업에서 더 걷어 재분배하는 방식이다. 머스크의 제안도, OpenAI의 경제 보고서도, 다이아만디스의 MOSAIC 모델도 결국 로봇세·법인세·자본이득세를 재원으로 한다.그런데 이 모델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 불황이 오면 세수는 마른다 — 기본소득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재원이 가장 부족해지는 역설이 생긴다. 한 나라만 세율을 올리면 기업은 낮은 세율을 찾아 이동한다. 정권이 바뀌면 제도가 흔들린다. 세금 기반 기본소득은 경기와 정치에 종속된다. 일론 머스크가 헬리콥터 머니를 제안한 이유가 있다. 세금으로는 해결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기와 정치에 흔들리지 않는 재원이 있을까.
에너지는 영원하다
AI 경제에서 에너지는 화폐다.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먹고, 로봇은 전기로 움직이며, AI칩은 전기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4년 425TWh에서 2030년 945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한다. AI가 가속화될수록 전력 수요는 늘어난다. 불황이 와도, 정권이 바뀌어도, 이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산업 자본주의 시대에 석유가 권력이었듯, AI 시대에는 전력이 그 역할을 한다. 에너지 생산수단은 단순한 인프라가 아니다. AI 경제의 기반을 이루는 자산이며,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장치다.
태양광은 한 번 설치하면 25년간 수익을 낸다. 연료비가 없다. 유가 변동이 없다. 이 에너지 생산수단을 시민이 소유하면 구조가 바뀐다. 세금이 아닌 배당이 된다. AI가 발전할수록 전력 수요가 늘어나고, 전력 수요가 늘어날수록 시민의 배당도 커진다. 기술 가속이 실업이 아니라 시민 소득 증가로 직결되는 구조다.
이것이 UBEE(Universal Basic Energy Equity — 보편적 에너지 기본소득)의 핵심이다. 지난 칼럼에서 이 개념을 소개했다. 이 모델은 이미 한국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에너지 기본소득 모델에 가장 근접한 나라, 한국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UBEE, 보편적 에너지 기본소득 모델에 가장 근접해 있다. 한국에서 진행 중인 모델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유형 1 — 군 단위 이익공유제: 신안군 햇빛·바람연금
전남 신안군은 2018년,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군내에서 사업을 하려면 개발이익의 30%를 주민과 의무 공유해야 한다는 조례를 제정했다.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권리로 제도화했다.
햇빛연금은 2021년 21억 원으로 시작해 2025년 바람연금을 포함해 연간 101억 원을 지급했다. 2025년 10월 기준 누적 총액은 317억 원을 돌파했다. 현재 군민의 49%인 약 1만9천 명이 수혜를 받고 있으며, 2028년 해상풍력 완공 시 군민 100%가 대상이 된다. 안좌도·자라도 주민은 연간 최대 272만 원, 3인 가구 기준 816만 원을 받는다.
숫자보다 더 중요한 성과가 있다. 매년 줄어들던 신안군 인구가 햇빛연금 이후 증가세로 돌아섰다. 2025년 9월 기준 1년 만에 710명이 늘었다. 지방소멸 위기 지역에서 인구가 돌아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 모델을 "아주 모범적 형태"라고 평가하며 전국 확산을 지시했다.
신안군은 2035년까지 8.2GW 규모의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완공 시 주민 1인당 연 최대 600만 원의 바람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규모다. 에너지가 곧 연금이 되는 구조다.
유형 2 — 마을 단위 협동조합: 구양리 햇빛소득마을
경기도 여주시 구양리는 70가구, 130명이 사는 평범한 농촌 마을이다. 2024년 11월, 주민들이 '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을 결성해 마을 유휴부지 6곳에 1MW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했다. 월 순수익 약 1,000만 원, 연 1억2천만 원.
이 돈은 주민 개인 통장이 아닌 마을 공동 계좌로 들어간다. 쓰임새는 주민 합의로 정했다. 무료 점심식당(주 6일 운영), 어르신 이동을 위한 행복버스, 문화 행사. 반대했던 사람도, 찬성했던 사람도 동일한 혜택을 누린다. "마을이 주인"이라는 원칙 하나가 갈등을 없앴다.
주민이 소유자가 되는 순간 태양광 시설은 기피 시설에서 환영 시설이 됐다. 에너지 전환의 가장 큰 장벽인 주민 수용성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 것이다.
정부는 이 모델을 2026년 500개, 2030년까지 2,500개 마을로 확산할 계획이다. 국비 5,500억 원을 투입한다. 전국 지자체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구양리를 방문하고 있다.
유형 3 — 군 단위 제도화: 영광군 에너지 기본소득 도시
전남 영광군은 2026년 3월, '에너지 기본소득 도시' 비전 선포식을 열었다. 전국 최초로 '기본소득 기본 조례'를 제정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수익을 군민과 공유하는 구조를 법으로 못 박았다.
영광군 내 태양광 발전소는 930여 개소, 풍력 발전소 8기가 운영 중이다. 해상풍력 허가 용량은 4,118MW에 달한다. 목표는 전 군민 1인당 연 50만 원의 기본소득 지급이다.
"발전은 끝났다, 이제는 분배다." 선포식에서 내건 문구다. 에너지 생산에서 수익 배분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세 유형의 공통점은 하나다. 에너지 생산수단의 수익이 외부 자본이 아닌 지역 공동체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2018년 신안군 조례 하나로 시작된 씨앗이, 2024년 구양리에서 싹을 틔우고, 2026년 영광군에서 선언이 됐으며, 이제 정부가 2,500개 마을로 확산을 추진하는 숲이 되고 있다.
세계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한국의 시도가 돌발적이거나 일시적인 실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해외 사례들이 있다.알래스카는 1982년부터 석유 수익의 25%를 영구기금에 적립하고 운용 수익을 매년 전 주민에게 동일 배당해왔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40년 이상 지속된 보편 기본소득이다. 연평균 약 1,600달러.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가장 낮은 주다. 단, 재원이 고갈 자원인 석유라는 한계가 있다. UBEE는 고갈되지 않는 태양광으로 이 한계를 극복한다.
덴마크는 2008년 법으로 모든 신규 풍력 프로젝트에 지역 주민에게 최소 20% 소유권을 의무 제공하도록 했다. 코펜하겐 앞바다 해상풍력 미델그룬덴에는 8,500명의 시민이 출자해 연 7% 수익을 올리고 있다. 주민 소유가 의무화된 이후 풍력 반대 운동이 현저히 줄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 주민이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신안군의 30% 의무 이익공유는 덴마크 20%보다 더 진보적인 구조다.
스코틀랜드 기하 섬 주민들은 2002년 집단으로 섬을 직접 매입했다. 이후 풍력 터빈을 세워 연 수익으로 주택 보수, 관광 시설, 부두를 건설했다. 인구는 90명에서 170명으로 두 배 늘었다. 2019년에는 주민에게 직접 현금 배당을 시작했다. "터빈 수익이 없었다면 섬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형태는 달라도 원리는 같다. 에너지 생산수단의 소유가 공동체로 이동하는 순간, 공동체가 살아난다.
이미지 확대보기한국 모델이 나아가야 할 두 걸음
경고음은 계속되고 있다. 머스크, 아모데이, OpenAI — 이들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고용 쇼크는 수년 사이 언젠가 맞이하게 될 이벤트다. 피할 수 없다면 준비해야 한다.다행히도 한국은 방향은 잘 잡았다. 다만 현재 상태에서 두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첫 번째 걸음 — 규모의 도약이다. 구양리 모델은 아름답다. 시민이 100% 소유하고, 수익이 공동체로 돌아오며, 갈등 없이 작동한다. 그러나 130명 마을의 월 1,000만 원 수익은 기본소득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정부가 추진하는 2,500개 마을 확산은 좋은 시작이지만, 개별 마을 단위를 넘어 군·시 단위의 통합 모델로 빠르게 스케일업해야 한다. 신안군처럼 수만 명이 실질적인 배당을 받는 수준, 영광군처럼 전 군민 기본소득을 목표로 설정하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 방향이 맞다면 속도가 중요하다.
두 번째 걸음 — 권리의 제도화다. 지금의 햇빛연금과 햇빛소득마을은 좋은 정책이다. 그러나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 흔들린다. 이것이 4회 칼럼에서 지적한 세금 기반 기본소득의 네 번째 한계였다. UBEE가 진정한 안전망이 되려면 '에너지 시민권' 또는 '에너지 기본권'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 노동권이 헌법적 권리로 보장되듯, 시민이 에너지 생산수단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배당받을 권리를 기본권 수준으로 명문화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헌법적 논의, 사회적 합의, 입법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공론화해야 한다. AI 시대의 새로운 사회적 계약으로 이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고용 쇼크가 닥쳤을 때 우리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몇 개의 시범 마을뿐이다.
다행히 한국은 대응 전략의 방향성을 잡은 듯하다. 문제는 얼마나 빠르게 다음번 쇼크를 준비해 놓느냐 하는 점이다.
머스크는 방법을 고민하고는 실행 가능성이 의심스럽고 극단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한국은 신안군이 싹을 틔운 정책이 영광군과 구양리를 거쳐 햇빛소득마을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것의 규모를 키우고, 시민들의 영속적인 권리로 만드는 일이다.
다음번 고용 쇼크가 오기 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있다. 다만 그 시간이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전명산 소셜인프라테크 대표는
블록체인 전문가로 기술과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변화를 연구하는 기획자이자 개발자이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인터넷 산업에서 25년 이상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최초 블로그 미디어 ‘미디어몹’을 기획한 바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싸이월드) R&D 연구소 팀장 등을 거쳐 블록체인 플랫폼과 분산시스템 기술을 개발해왔다. 현재 (주)소셜인프라테크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며 오랫동안 천착해 온 블록체인 거버넌스 연구를 바탕으로 AI·블록체인·에너지·도시 인프라를 결합, 기본소득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 체제로 전환하는 전기 문명 프로토타입 ABCity(AI Blockchain City)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책 『가속해도 괜찮아! ABCity-AI 시대를 위한 전기 문명 프로토타입』(2026)을 냈다.
전명산 칼럼니스트/소셜인프라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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