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순환 과정에 문제가 발생했다
시카고 학파의 대부 밀턴 프리드만은 1962년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마이너스 소득세 형식을 빌린 기본소득의 원형을 제안한 바 있다. 자본주의의 생산성이 점차 발전하면서 노동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소비력을 제공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작동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그런데 이 순환 과정에 단절이 발생하게 생겼다. 기업과 생산은 그대로이지만, 소득의 다리가 끊어지고, 소득에 이어진 소비의 다리도 끊어지고 있어서다.
이미지 확대보기너무나 강력해서 세상에 공개하기 두려운 AI
최근 AI 세상에는 또 한번 폭풍우가 몰아쳤다. 앤트로픽의 클로드 미토스(Claude Mythos) 프리뷰 버전이 AWS,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JP모건,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등 극소수 파트너에게만 선공개 된 것이다. 극소수에게만 공개된 이유는 이 AI의 성능이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백만 번의 자동화 테스트에서도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던 리눅스 커널의 보안 취약점, 모든 주요 운영체제와 브라우저의 보안 허점을 수천 개나 찾아냈고 직접 공격 코드까지 완성했다. 이 기능을 반대로 활용하면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의 취약점을 찾아내 즉시 공격할 수 있다는 말이다.앤트로픽이 이 모델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소수에게만 먼저 제공한 것은, 이들에게 먼저 방어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앤트로픽은 이 프로젝트를 '프로젝트 글라스윙(Project Glasswing)'이라고 명명했다.
이 발표 직후 글로벌 보안 업체들의 주가가 출렁였다. 그동안 그 어떤 보안 업체도 찾아낼 수 없었던 취약점을 AI가 찾아내고 수정까지 제안했으니, 인터넷 보안 산업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역사적 장면이다. AI가 또 하나의 산업을 재편하는 순간이었다.
법률·회계·소프트웨어·마케팅 산업이 본격적으로 위축되고 있고, 이제 보안 산업마저 그 대열에 합류했다. 제한적으로 공개된 미토스가 일반에 풀리면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또 다른 영역들을 잠식할까.
육체 노동도 피할 수 없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요리하는 로봇, 청소하는 로봇이 이미 출시됐다. 전문가들은 로봇 손이 인간 손의 정교함과 섬세함을 넘기까지 5년 정도 남았다고 진단한다. 그 이후면, 인간의 손만이 가능했던 섬세한 작업들도 모두 로봇으로 대체 가능해진다. 중국산 휴머노이드들은 이미 아시아의 어느 거리를 활보하는 중이다. 'AI + 로봇 + 에너지 = 노동', 인간 노동의 소멸이 하나씩 현실화되고 있다.
‘노동 소멸’ 가속이 시작됐다
이 공식이 만들어낼 '노동 소멸'이라는 결과 자체도 놀랍고 두렵지만, 진정 무서운 것은 바로 그 속도다. 레이 커즈와일은 '수확 가속의 법칙'을 이야기했다. AI 시대에 기술은 선형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AI가 AI 코드를 수정하는 '재귀적 자기 발전' 단계에 이르렀고, 발전 속도가 수직으로 상승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미 AI가 AI를 설계하고, 로봇이 로봇을 조립하는 세상에 진입했다.창조, 협력, 조정, 돌봄처럼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영역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노동이 AI와 로봇을 거쳐가는 에너지의 흐름 안으로 흡수될 것이다. 노동 소멸의 시대가 오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이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끊어진 소득의 다리를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까.
기본소득, 이제는 필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본소득은 소수 진보 진영의 이상론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다르다. AI를 만드는 사람들, 세상을 가장 빠르게 바꾸는 사람들이 먼저 이야기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2024년 파리 비바 테크놀로지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우리 중 누구도 일자리를 갖지 않게 될 것이다. UBI(보편적 기본소득)가 아니라 UHI(보편적 고소득, Universal High Income)가 될 것이다. 재화와 서비스의 부족은 없을 것이다."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를 나누자는 개념이다.2026년 1월, 머스크와 피터 다이아만디스의 대담에서 UHI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다이아만디스가 "어떻게 구현하느냐"고 묻자 머스크는 솔직하게 답했다. "직관적으로는 알겠는데 방법을 모르겠다." 그로부터 23일 뒤, 다이아만디스는 MOSAIC 모델이라는 구체적인 UHI 설계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AI 기업들의 수익에 누진 과세해 공공 부(富)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시민에게 재분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안도 결국 세금 기반의 재분배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샘 올트먼은 비영리 기관 'OpenResearch'를 통해 텍사스와 일리노이에서 1,000명에게 매월 1,000달러를 3년간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한 바 있다. 수혜자들은 식비·주거·의료에 더 많이 지출하고,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여유를 가졌다. 노동 소멸이 임박했다는 판단에서 먼저 실험한 것이다. 그리고 2026년 4월, 샘 올트먼이 이끄는 OpenAI는 「지능의 시대를 위한 산업 정책 — 사람을 먼저(Industrial Policy for the Intelligence Age: Ideas to Keep People First)」라는 13페이지짜리 경제 정책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한 로봇세 도입, 공공 부 펀드 조성, 자본이득세 인상, 주 4일 근무제 전환 등을 제안했다. AI로 인한 노동 소멸과 부의 집중을 정부가 적극 개입해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류는 거부할 수 없는 지점에 다다랐다. 방향은 뚜렷하고 징후는 명백하다. 기본소득은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문제는 재원…어떻게 조달할까?
기본소득 논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답은 세금이다. 다이아만디스의 MOSAIC 모델이나 OpenAI의 제안 모두 로봇세를 매기거나 법인세를 올려 AI로 이득을 본 기업에서 걷어 나눠주자는 발상이다. AI와 로봇이 만든 파이를 국가가 기업으로부터 걷어서 재분배하는 구조다. 논리는 그럴듯하지만, 이 방법론에는 네 가지 구조적 한계가 있다.
첫째, 국제 경쟁이다. 한 나라만 로봇세나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은 세율이 낮은 나라로 이동한다. 글로벌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시대에 단독 행동은 기업 이탈만 부른다. 더구나 미국과 중국이 사활을 건 AI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세금을 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 미국의 빅테크들은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AI 인프라에 쏟아붓고 있다. 한번 경쟁에서 밀리면 2등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경기 변동이다. 호황에는 세수가 풍부하지만 불황에는 과세 기반 자체가 줄어든다. 기본소득이 가장 절실한 위기의 순간에 정작 재원이 가장 부족해지는 역설이 생긴다.
셋째, 기업의 흥망성쇠다. 기본소득 모델 중에는 AI나 로봇 기업의 지분을 국민들에게 배분하는 모델도 있다. 그런데 기업 활동은 영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 기업이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망하면 그 지분도 의미 없게 된다.
넷째, 정치적 변동이다. 정권이 바뀌면 제도가 흔들린다. 세금으로 만든 기본소득은 다음 정부가 삭감하거나 폐지할 수 있다. 알래스카 석유 배당도, 이란 현금 보조금도 모두 정치 변수 앞에서 흔들렸다. 이렇듯 세금 기반 기본소득은 구조적 취약성을 피할 수 없다.
UBEE - 에너지 생산수단에 기반한 기본소득
이제는 재분배가 아니라 현대 에너지 생산수단이 열어주는 새로운 가능성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이 부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AI 경제는 에너지를 먹는다. 데이터센터, 로봇, 전기차-AI 시대가 가속할수록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4년 425TWh에서 2030년 945TWh로 두 배 이상 증가한다. 앞선 칼럼에서 살펴봤듯이, 태양광은 이제 '탈지정학적 에너지'다. 특정 지역 지하에 묻혀 있는 석유와 달리, 태양은 어디서나 뜬다. 한 번 설치하면 수십 년간 수익을 낸다.
이 에너지를 시민들이 소유한 인프라가 생산한다면 어떻게 될까. 경기 변동이나 기업의 흥망성쇠와 상관없이 에너지는 필요하다. AI 시대가 가속할수록 에너지 수요는 더욱 늘어나고, 에너지 수요가 늘어날수록 시민들의 배당도 함께 커지는 구조가 된다. 기술 가속이 시민 소득 증가로 직결된다. 시민 소득이 증가하면 기업이 생산한 상품을 구매할 소비력도 증가한다. 경제의 순환고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에너지 기본권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논의된 모든 기본소득 방법론은 생산 이후 재분배하는 방식이다. 에너지 인프라 소유권은 생산 이전의 단계, 생산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원천으로부터 기본소득을 창출하는 방법론이다.
이것을 UBEE(Universal Basic Energy Equity - 보편적 에너지 기본소득)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에너지 생산 수단에 대한 시민의 소유권을 제도화하고, 그 수익을 기본소득으로 배분하는 모델이다. 신안군이 군 단위에서 이미 보여줬다. 태양광 수익의 30%를 주민에게 의무 배분하자, 반대가 환영으로 바뀌고 인구가 돌아왔다. UBEE는 그 원리를 도시 단위, 국가 단위로 설계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이미지 확대보기UBEE의 네 가지 강점
UBEE가 가진 장점 가운데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지속성이다. 태양이 뜨는 한 수익은 계속 난다. 정권이 바뀌어도, 경기가 나빠져도, 기업이 이전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기업이 찾아오는 현상이 일어난다. AI 시대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기에, 기업들은 에너지가 풍부한 곳으로 찾아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두번째는 자기강화 구조다. AI가 발전하면 에너지 수요가 늘고, 에너지 수요가 늘면 시민 배당이 커진다. 세금 기반 기본소득은 AI 가속과 역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UBEE는 AI 가속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세번째는 수용성이 높다는 점이다. 세금 기반 기본소득은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나눠주는" 구조라는 저항에 직면한다. UBEE는 처음부터 시민이 에너지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구조다. 빼앗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는 것이다. 에너지 생산의 이익과 부담을 같은 주체가 짊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에너지 전환의 최대 장벽인 주민 수용성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즉 에너지 생산 시설이 기피 시설이 아니라, 오히려 유치 운동을 하는 '환영' 시설이 된다.
네번째는 국가적인 에너지 자립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에너지 시설이 환영 시설이 되면 국가 차원에서는 더 많은 에너지 인프라를 갖출 수 있고, 자연스럽게 에너지 자립을 위한 국가적 기반이 만들어진다.
AI시대 인류의 새로운 문명 개척자
인류는 지금 새로운 문명의 설계도를 필요로 하고 있다. AI 시대의 노동 소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AI가 만든 풍요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에너지 전환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에 하나의 구조로 답하는 것이 UBEE의 핵심이다.머스크는 미래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자신이 그 미래를 앞당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방법을 모른다고 했다. 다이아만디스와 OpenAI는 세금 기반 설계안을 내놨지만, 재분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소유의 틀로 이 문제를 풀어내는 게 가능하다.
세계 1위의 로봇 밀도, 첨단 반도체와 배터리 기술, 그리고 신안군이라는 실증 사례까지 갖춘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AI 시대의 새로운 문명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은 다른 어느 나라가 아니라 한국에서 먼저 시작할 수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이미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한국에서는 이 정책의 씨앗이 싹이 터서 성장하는 중이다.
전명산 소셜인프라테크 대표는
블록체인 전문가로 기술과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변화를 연구하는 기획자이자 개발자이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인터넷 산업에서 25년 이상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최초 블로그 미디어 ‘미디어몹’을 기획한 바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싸이월드) R&D 연구소 팀장 등을 거쳐 블록체인 플랫폼과 분산시스템 기술을 개발해왔다. 현재 (주)소셜인프라테크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며 오랫동안 천착해 온 블록체인 거버넌스 연구를 바탕으로 AI·블록체인·에너지·도시 인프라를 결합, 기본소득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 체제로 전환하는 전기 문명 프로토타입 ABCity(AI Blockchain City)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책 『가속해도 괜찮아! ABCity-AI 시대를 위한 전기 문명 프로토타입』(2026)을 냈다.
전명산 칼럼니스트/소셜인프라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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