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 재무개선 사활
석유화학 사업 재편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롯데케미칼이다. 이 회사는 범용 제품 비중이 높은 탓에 2022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누적 적자 규모만 무려 3조 원에 이른다.롯데케미칼에서 물적분할한 대산공장을 롯데케미칼·HD현대오일뱅크 합작사인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해 오는 6월 신설법인 ‘롯데케미칼대산석화’(가칭)를 설립하기로 했다. 신설법인 지분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각각 50%씩 보유한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연간 생산능력은 에틸렌 기준 110만t이며, HD현대케미칼은 약 85만t 수준이다. 신설법인 출범으로 기존 대산공장 설비를 최소 3년간 중단해 정부가 추진하는 석유화학 사업구조 재편을 선제적으로 실천한다는 방침이다.
롯데케미칼이 발빠르게 움직인 이유는 재무구조 개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6조9,654억 원이다. 이 가운데 1조9,363억 원이 신설법인으로 이전된다. 단순히 장부상 숫자만 줄어드는 것만이 아니라 정부 차원 금융 지원도 이뤄진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신설법인에 2조 원 규모 자금 지원을 확정했다. 기존 사채에 대한 3년간 상환 유예 조치도 포함됐다.
롯데케미칼은 대산 구조조정으로 연간 수천억 원대 적자 축소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안타증권은 “연간 2,000억 원 수준 손익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여수① 롯데·한화·DL도 최종안
여수 석유화학 산업단지는 이번 사업재편 핵심 지역이다. 이곳은 연간 에틸렌 생산량이 600만t을 넘는 국내 최대 석유화학 단지다.여천NCC(한화솔루션·DL케미칼 합작사) 229만t, LG화학 208만t, 롯데케미칼 123만t, GS칼텍스 90만t 등 NCC 업체들이 얽혀 있어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관건으로 꼽힌다.
우선 여천NCC와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20일 정부가 제시한 마감 시한(3월 31일)을 열흘여 앞두고 최종 통합안을 제출했다. NCC의 경우 롯데케미칼 여수공장을 분할해 여천NCC와 통합하고 신설법인을 설립한다는 내용이다.
NCC에서 생산하는 에틸렌 등 기초 유분을 바탕으로 만드는 다운스트림도 신설법인에 통합한다.
한화솔루션의 여수 폴리에틸렌(PE)과 석유수지, DL케미칼 PE,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여수사업 등이 포함된다. 나아가 기업들은 의료용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자동차 전선용 기능성 폴리올레핀 엘라스토머(POE) 등 고부가가치 제품 구조로 전환해 중장기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감축량과 지원 규모 등은 정부 심사 이후 확정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여천NCC 2공장 폐쇄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여천NCC는 이미 3공장 가동을 멈춘 상태다. 여천NCC 2공장과 3공장의 에틸렌 생산량은 각각 91만5,000t과 47만t으로, 총 138만5,000t 수준이다.
여수② ‘중동발 나프타 대란’ LG·GS
여수 산업단지 내 LG화학과 GS칼텍스도 합의점을 모색 중이다.최종안 제출 마감 시한은 지났지만 양사 모두 참여 의지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LG화학과 GS칼텍스는 지난해 12월 여수 NCC 통합 운영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 등 구조조정안을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지난달 31일 김동춘 LG화학 사장도 “속도 있게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LG화학과 GS칼텍스는 NCC 통폐합 및 운영에 대해 공감대는 있으나, 합작법인 설립 시 지분 구조 등 막바지 단계에서 이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GS칼텍스 지분 50%를 보유한 미국 에너지 기업 셰브론 동의 여부도 중대한 변수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란 간 군사 충돌이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석유화학 기초재료인 나프타 재고가 급감하면서 사업재편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실제 LG화학은 지난달 23일 여수 NCC 2공장을 일시 가동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또 LG화학은 러시아산 나프타 2만7,000t을 긴급 도입했다. 미국이 해상에서 대기 중인 러시아산 나프타에 대한 제재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면서 가능했다. 다만 추가 도입은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다.
◇ 독자 노선 에쓰오일은 ‘샤힌’ 변수
울산 석유화학 산업단지는 최종 사업재편안 도출이 가장 어려운 곳으로 꼽힌다.에틸렌 생산량은 대한유화 90만t, SK지오센트릭 66만t, 에쓰오일 18만t으로 현재 주요 석화 단지 중 가장 적다. 그러나 에쓰오일이 에틸렌 180만t 규모 ‘샤힌 프로젝트’를 올해 말 본격 가동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에쓰오일은 NCC 생산량 감축 동기가 약하다. 현재 석유화학 위기는 값싼 중국산 대량 공급과 국내 노후 설비에서 생산된 제품의 수익성 저하에서 비롯됐다.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 가동 이후 수익성 측면에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에쓰오일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신기술 ‘TC2C’가 도입된다. 원유를 직접 석유화학 원료로 전환하는 기술로, 기존 설비보다 원료 수율이 3배 이상 높다는 설명이다.
운도 따르는 편이다. 에쓰오일은 지난 3월부터 정기 보수 기간을 맞아 주요 설비 가동을 잠시 멈췄다. 이는 중동 사태가 터지기 이전에 계획된 것으로, 원자재 공급 위기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샤힌 프로젝트에 9조3,000억 원이 투입됨에 따라 재무 부담은 커졌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에쓰오일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약 198.6%로, 2년 새 60%포인트가량 상승했다.
당장 재무 리스크는 크지 않다. 아람코가 재무 지원을 통해 급한 불을 껐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25일 에쓰오일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A(긍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상향했다. 신용등급 하향 요인이 해소된 부분도 반영됐다.
그럼에도 샤힌 성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으면 재무 리스크는 다시 부각될 수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2026년 하반기 준공 예정인 샤힌 프로젝트 상업 가동 이후 투자 성과가 영업 실적의 중요한 변수”라며 “실제 가동 시점의 수급 상황에 따라 투자 성과가 기존 예상보다 지연되거나 실적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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