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정의는 단순하다. 위험이 높으면 금리가 높고, 위험이 낮으면 금리가 낮다. 국가·기업·개인을 막론하고 수십 년간 적용돼 온 신용사회의 원리다.
이미지 확대보기포용금융의 출발점은 분명 따뜻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가난한 사람에게 더 비싼 금리를 요구하는 것은 금융계급제”라며 문제를 제기했고, 금융당국은 5대 금융지주와 은행연합회를 소집해 포용금융 점검회의를 열었다. KB국민은행은 새희망홀씨Ⅱ 금리를 인하했고, 신한은행은 우대금리를 최대 1.8%포인트 확대했다. 5대 금융지주가 향후 5년간 508조원의 포용금융을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정책이 실제 시장으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구조는 뒤틀렸다. 연말 총량규제 강화로 은행들은 ‘정책대출 확대, 일반 신용대출 축소’라는 기형적 선택을 강요받았다.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일반 대출을 줄이고 정책대출을 늘리자, 포용금융은 약자 지원이 아니라 규제 대응 수단으로 변질됐다. 선의가 시장 구조 자체를 왜곡하는 지점이다.
근본 원인은 대통령 발언에 담긴 ‘오해’에서 비롯된다. “가난한 사람이 비싼 금리를 부담한다”는 직관적 문장은, 신용점수는 소득이 아니라 금융행태를 반영한다는 사실과 충돌한다. 실제로 소득과 예금 등 경제적 여력은 신용평가에서 약 7%만 반영된다.
따라서 ‘저신용=저소득’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충분한 소득이 있어도 과거 연체로 점수가 낮은 사람이 있고, 소득은 적어도 성실한 상환으로 고신용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구조에서는 ‘성실한 저소득 고신용자’가 혜택에서 밀리고 ‘고소득 저신용자’가 금리 인하 수혜를 누리는 역설이 발생한다. 보호 대상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 설계의 허점이다.
이미지 확대보기제2금융권의 영향은 더 크다. 연체 삭제로 금융사 입장에서는 ‘성실 상환자’로 보이는 대출자가 늘면서, 위험 기준이 흐려지고 충당금 부담은 커졌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신용 기반 가격이 흔들리면 위험은 금융회사에서 실물경제로 전이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저신용자 지원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일까. 답은 단순하다. 시장 원리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정부 재정을 활용하는 것이다. 불법사금융 예방대출의 연체율은 35.7%에 달한다. 금리를 억지로 낮추기보다 상환 구조를 조정하고, 기초생활수급자의 금융 접근성을 넓히는 방식이 실효적이다. 이 영역은 금융이 아닌 복지정책의 몫이다.
이미지 확대보기은행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5년 누적 순이익은 90조원을 넘는다. 우량 기업에는 3~4%대를 적용하면서, 저신용 서민에는 10% 이상 금리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서민대출 금리 인하 요구는 당연하다.
하지만 신용 질서를 뒤흔드는 개입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재정 지원과 위험 기반 가격체계 교란은 동일하지 않다. 신용은 경제를 지탱하는 구조적 토대다. 안 교수의 말처럼, “현대 시장경제는 신용의 호수 위에 떠 있는 배”다. 호수가 마르면 경제 전체가 멈춘다.
포용금융의 본질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필요한 것은 ‘정확한 대상 설정’과 ‘시장 원리와의 조화’다. 신용과 소득을 혼동해 성실한 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설계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508조원 중 70조원의 선의가 또 다른 불공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포용금융은 저신용자가 아니라, 저소득 고신용자를 찾아내는 정밀함에서 시작된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말했듯, 시장을 과도하게 설계하려는 시도는 ‘치명적 자만’을 초래한다. 한국 금융시장은 이 오래된 교훈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포용금융의 확대가 아니라 정교한 설계다. 신용사회의 기반을 지키는 것, 그것이 진짜 포용이다.
김의석 한국금융신문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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