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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1(화)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은행이 중심된 금융위기는 왜 치명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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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은행이 중심된 금융위기는 왜 치명적인가이미지 확대보기
2015년 12월 스위스의 민간단체인 “폴겔트 이니셔티브(Vollgeld Initiative)”는 민간은행들이 대출을 통해 통화를 창출할 수 있는 권한을 박탈하는 안을 제시하고 이 제안에 대해 국민투표(referendum)에 필요한 국민 11만명의 서명을 확보해 스위스 연방정부에 제출했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이 안을 2018년 6월에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발표했다.

이 단체는 당시 스위스 통화 중 은행 예금이 87%를 차지하고 있어 경제 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통화를 민간 은행이 충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가 이러한 과격한 주장을 제기한 것은 2007-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에 따라 스위스의 양대 은행인 UBS와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가 막대한 손실이 발생해 스위스 경제 전체가 붕괴될 위험에 빠진 것에 대한 스위스 국민들의 우려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07년말 기준으로 UBS와 크레디트 스위스의 총자산은 각각 1.6조 달러와 1.2조 달러로 당시 스위스 명목 GDP 4900억 달러의 3.3배와 2.4배에 이르렀다. 이는 이들 은행들의 무모한 투자에서 큰 손실이 발생하면 스위스 경제 전체를 완전히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우려가 민간은행의 통화 창출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에 반영된 것이다. 이 단체의 제안은 은행이 예금의 100% 전부를 지급준비금으로 예치하는 소위 ‘100% 지급준비금 제도’를 채택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스위스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 안이 다국적 영업을 하는 자국 은행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이 안이 채택되더라고 은행들의 지급불능 위험을 근본적으로 차단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이득보다는 비용이 크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설명했다. 이러한 정부의 설득 노력으로 소위 ‘국가통화 프로젝트(sovereign-mony project)’는 2018년 6월 10일 국민투표에서 75%가 반대해 채택되지는 않았다.

이 안은 실현되지 않고 한때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러한 주장이 제기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29년 대공황 직후인 1933년 예일대학의 어빙 피셔(Irving Fisher)와 프랭크 나이트(Frank Knight) 등 시카고 학파의 창시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거시경제학자들이 지지한 시카고 제안(Chicago Plan)도 은행 예금의 100%를 유동성이 높은 지급준비금으로 보유하게 함으로써 은행의 대출과 통화 창출 간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거시경제학자들이 은행들의 대출 활동을 통한 통화 창출이 금융시스템을 취약하게 만드는 주 요인으로 지목했다.

은행이 대출을 하면 차입자의 은행 계정에 동일한 금액이 예치된다. 은행 예금은 언제든지 교환의 매개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통화의 역할을 수행한다. 한 은행이 신규 대출을 하면 그 대출은 순차적으로 여러 은행의 예금이 되는 동시에 대출 재원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통화가 계속 창출하게 된다. 한 은행의 신규 대출 자금을 이용해 대출자가 상품이나 자산을 매입하면 거래 상대방인 매출자가 받은 대금을 다른 은행에 예치하면 신규 대출을 한 은행의 예금은 사라지지만 다른 은행의 예금으로 남아서 은행시스템 내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은행들은 격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은행 대출을 통한 예금 통화의 창출이 금융시스템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은 은행들이 대출이 크게 늘었다가 갑자기 축소하는 소위 ‘금융 붐-버스트 사이클(boom-bust cycle)’을 만들 가능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은행들이 통화 창출을 통해서 차입금을 계속 제공함으로써 경제 전체의 부채 수준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0% 지급준비금 제도는 은행들이 통화 창출을 통해 대출 재원을 조달하는 능력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이 제안은 너무 급진적이라고 생각되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업무를 분리하는 보다 온건한 ‘글래스-스티걸법’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은행의 대출을 통한 통화 창출 과정은 ‘금융 붐 사이클’에서는 은행들의 위험회피 성향이 약해지면서 대출을 무분별하게 늘리고 이 과정에서 차입자의 신용을 지나치게 관대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심화된다. 대출의 증가는 은행이 창출하는 통화 증가를 통해서 자산 버블이나 경기 과열을 초래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실대출을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금융 사이클이 ‘버스트 국면’으로 갑자기 반전된다. 금융 버스트 국면에 진입하게 되면 은행들의 위험회피 성향이 강해지면서 대출을 기피하거나 만기가 된 대출의 상환을 통해 대출금을 축소하게 된다. 대출이 위축되면 경제 전체에 통화가 급속히 줄게 되면서 자산 가격 버블이 급격히 붕괴되거나 경기가 급작스럽게 하강하게 된다.

은행의 대출을 통해 창출한 예금 통화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와 함께 경제 내의 지급결제 수단으로 통용되기 때문에 은행은 중앙은행과 함께 경제 전체의 지급결제 시스템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은행들이 위기에 처하게 되면 이러한 지급결제 시스템이 마비되기 때문에 경제 내에서 시장거래 위축을 통해서 경제 활동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점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지급결제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서 중앙은행이 은행에 대해 우선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구조하게 된다. 일본 고이즈미 정권에서 금융장관을 역임했던 다케나카 헤이조는 “흔히 은행에만 공적자금을 쓰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는 비판이 들리는데 정부는 은행을 위해 공적자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지급결제 시스템이라는 사회 인프라를 지키기 위해 자금을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은행 차입에 의존한 자산 가격 버블과 그렇지 않은 버블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미국의 1995년부터 2000년까지 형성된 ‘닷콤 버블’과 200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형성된 미국 주택가격 버블이라고 생각한다. 닷컴 버블의 경우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나스닥 종합지수는 400% 상승했다. 그후 버블이 꺼지면서 2001년에는 시장이 붕괴되었고 이로 인해 투자자들은 무려 5조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주택 버블은 주택가격은 중앙치(median) 기준으로 버블 붕괴 직전 정점이었던 2006년 7월에는 2001년초에 비해 92.5% 상승했다가 그후 버블 붕괴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되고 미국 가계의 순손실이 16조 달러에 이르렀다.

닷컴 버블의 붕괴는 2001년 3월에 시작해 11월에 끝난 8개월의 짧은 기간의 경기후퇴와 1.3%의 실질 GDP 감소를 초래했을 뿐 세계 경제에 주는 충격도 제한적이었다. 반면 주택 버블 붕괴는 2007년 12월에 시작해 2009년 6월에 끝나 실질 GDP가 4.3% 감소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긴 경기후퇴로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여파가 전세계로 파급되어 명실공히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했다.

오스카 호르다(Oscar Jorda) 등이 과거 140년 동안 발생한 주식과 주택 버블을 연구한 결과 경제에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미치는 버블은 신용팽창을 수반한 주택 버블이고 가장 충격이 적은 버블은 차입에 의존하지 않은 주식 버블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 증가를 수반하지 않는 주식 버블의 경우 버블 붕괴 후 5년 동안 1인당 실질 GDP는 정상적인 경기후퇴에 비해 1% 감소하는데 반해 부채 의존도가 높은 주택버블은 5년 동안 8%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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