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서도 지난 5년간 롯데홈쇼핑을 이끌었던 이완신 대표 변화가 눈에 띄었다. 그룹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는 호텔군 총괄 대표 겸 호텔롯데 대표로 선임됐다. 백화점 출신이 호텔롯데 수장에 오르는 첫 사례였다. 36년간 롯데에 몸을 담으며 그룹 내 ‘마케팅 대가’로 정평이 난 그가 이제 호텔롯데 ‘구원투수’가 될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정통 롯데맨의 파격
이 대표는 ‘정통 롯데맨’이다. 1987년 롯데백화점에 입사해 2001년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본부 여성의류팀장과 안양점장(2003년), 강남점장(2005년)을 거쳐 노원점장(이사, 2007년)과 부산본점장(상무, 2010년) 본점장(2012년)을 지냈다. 2014년 마케팅부문장(전무)으로 승진했고 2017년 롯데홈쇼핑 대표로 선임됐다.이 대표는 그룹 내에서도 과감한 추진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의 성격은 마케팅부문장으로 지낼 당시 잘 드러난다. 이 대표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미국 대형 할인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처럼 롯데판 ‘블랙프라이데이’ 개최를 추진했다.
장소는 롯데백화점이 아닌 점포와 떨어진 대형 전시장으로 백화점 행사라고 하기엔 파격적이었다. 직원들 반대가 심했지만 이 대표는 한 치 망설임 없이 밀어붙였다. 결과는 대성공. 2015년 4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세텍(SETEC)에서 열린 ‘롯데 블랙쇼핑위크’는 당초 목표치의 2배인 60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그는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3개월 뒤인 7월 행사의 규모를 더 키웠다. 행사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세텍보다 4배 더 큰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 전시장을 빌렸다. 200억원 어치 명품가방·시계, 가전, 의류 등을 정가보다 최대 80% 싸게 팔았다. 결과는 또 성공. 4일간 진행된 행사는 목표치 2배가 넘는 130억원 매출을 달성했다.
‘백화점=고급’이라는 공식을 뒤엎은 이 대표는 백화점에서 벗어나 전시장에서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파격’을 택했다. 소비자 니즈를 파악하고, 시의적절한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를 공략하고자 한 것이다.
이듬해인 2016년엔 파격 경품을 제공해 눈길을 끌었다. 정부와 민간기업들이 참여해 진행하는 대규모 가격할인 행사 ‘코리아 세일페스타’에서 분양가 7억원 롯데캐슬 아파트와 연급 4억원 등 총 11억원 경품을 1명에게 몰아주는 경품 행사를 진행했다. 국내에서 10억원 이상 경품 선물을 제공하는 건 처음이었다.
지난 2014년과 2016년 석촌호수에 ‘러버덕’과 ‘슈퍼문’ 등 대형 캐릭터를 설치해 서울 잠실 석촌호수 일대를 인증샷 명소로 만든 것도 이 대표 역작이다. 이 대표는 마케팅부문장으로 지내면서 ‘업계 최초’ ‘역대최대’ 등 공격적 마케팅 전략을 잇달아 펼쳤고, 그룹 내 성과를 인정받아 2017년 롯데홈쇼핑 대표 자리에 앉게 됐다.
탈(脫) 홈쇼핑
한때 홈쇼핑 사업은 그룹 내에서 ‘캐시카우’ 역할을 했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19로 유통업계 지형이 이커머스 중심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송출수수료 상승 ▲TV시청자 감소 등도 영향을 끼쳤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탈(脫)홈쇼핑’을 꾀했다. TV를 기반으로 한 사업이지만, 다양한 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콘텐츠 제작사 초록뱀미디어에 250억원을 투자하고 2대 주주 지위를 확보해 콘텐츠 플랫폼 확장, 콘텐츠 지적재산권(IP)사업 등 신규 사업 발굴에 힘을 쏟았다. 뿐만 아니라 롯데홈쇼핑 모바일 앱에서 드라마·예능 콘텐츠 스트리밍 채널 ‘엘플레이(L.Play)’를 론칭하고, 유명 셀럽을 활용한 ‘셀럽 커뮤니티’ 플랫폼 및 해당 콘텐츠를 활용한 상품 기획, 초록뱀미디어 계열사 소속 아티스트와 연계한 인플루언서 콘텐츠도 확대했다.
그 중에서도 롯데홈쇼핑이 유통업계에서 선제적으로 선보인 가상인간 ‘루시’가 주목을 받았다. 루시는 롯데홈쇼핑이 자체 전문 인력을 통해 1년간 개발기간을 거쳐 만든 가상인간이다. 2021년 2월 SNS 인플루언서로 시작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현재 팔로워 수는 13만 명에 달한다. 루
시는 국내외 유명 F&B 브랜드, 패션 플랫폼, 쥬얼리 브랜드, 명품 전시전 등 광고모델로 활동했으며 지난해에는 쌍용자동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토레스’ 신차발표회의 프리젠터로 나섰다. 최근에는 쇼호스트로서 나서 연일 ‘완판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대표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2021년부터 메타버스 서비스를 추진하며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냈다. 이의 일환으로 유통업계 최초로 NFT 마켓플레이스인 ‘NFT SHOP’을 자체 모바일 쇼핑앱에 오픈하며 NFT사업에도 힘을 실었다. 지난해에는 라이브커머스를 3차원 가상 세계로 구현, 아바타를 통해 상품과 브랜드 체험, 게임이 가능한 ‘메타라이브 스튜디오’도 선보였다.
‘벨리곰’ 아버지의 탄생
이 대표는 롯데홈쇼핑에서 미디어커머스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사업을 펼쳤지만, 마케팅 부문장 당시 주특기였던 ‘캐릭터 마케팅’에도 집중했다. MZ세대 직원들과 2018년 손잡고 분홍색 곰 캐릭터 ‘벨리곰’을 탄생시켰다. 당시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한 ‘벨리곰’은 SNS 등에서 차츰 입소문을 탔고, 그 인기가 점차 확산됐다.현재 SNS 파로워 수는 160만 명을 넘어섰다. 브랜드 가치는 무려 1000억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대표는 롯데홈쇼핑이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 캐릭터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홍보’라는 거부감을 줄이고,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서다.
덕분에 국내외 팬층이 두터워졌다. 2021년 잠실 초대형 공공전시에는 350만명이나 방문했고, 이후 독일, 미국 등에서 글로벌 인지도를 쌓았다. 유튜브 구독자 59만7000여명 중 해외 비중이 40%에 달하는 등 남다른 글로벌 파워를 자랑한다.
이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벨리곰은 지난해 ‘2022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국내 대표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이 대표가 MZ세대 직원과 손잡고 추진한 캐릭터IP사업은 롯데홈쇼핑의 새로운 돌파구가 됐다. 홈쇼핑업계 전반이 힘들어졌지만 롯데홈쇼핑에는 벨리곰이라는 강력한 캐릭터IP가 있었다.
과감한 추진력으로 롯데홈쇼핑 성장을 이끈 이 대표는 올초 호텔군 총괄대표 겸 호텔롯데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디지털, 마케팅 등에서 탁월한 역량을 갖춘 인사인 만큼 호텔롯데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적임자였다.
이 대표 앞에는 호텔롯데 실적개선, IPO(기업공개) 등 무거운 과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호텔롯데 상장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오랜 숙원이다.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회사로 상장을 통해 일본 지분율을 희석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실적 악화 등으로 인해 7년째 답보 상태다. 앞서 코로나19 발생시점인 2019년 말부터 전임자 3명 모두 줄줄이 교체된 것도 이러한 이유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호텔롯데 대표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마케팅 조직을 강화하고, 캐릭터 지적재산권(IP) 사업에 나섰다.
미디어 커머스 기업 블랭크코퍼레이션(블랭크)과 함께 제2의 ‘벨리곰’을 만들어 호텔롯데 브랜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앞서 러버덕, 슈퍼문, 벨리곰 등을 통해 롯데그룹을 대표하는 캐릭터를 탄생시킨 경험을 토대로 IP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호텔롯데 월드사업부는 영차컴퍼니와 협업해 팝업스토어와 카페를 오픈했고, 자체 제작한 캐릭터 IP를 매장 인테리어와 카페 굿즈 및 메뉴에 접목시켜 자체 개발하기도 했다.
롯데월드 신규 캐릭터 모리스와 그의 조카 보리스가 카페창업을 하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층 더 확장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 실적을 개선하고, 호텔롯데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덕분에 그가 취임한 뒤 올해 1분기 성적은 긍정적이다.
호텔롯데는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357억원으로 전년 동기(영업손실 1244억원) 대비 흑자 전환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조1034억원으로 전년 대비 25% 감소했다.
박슬기 기자 seulgi@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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