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이복현닫기이복현기사 모아보기 금융감독원장이 증권사 최고경영자 간담회 자리에서 ‘증권사 본연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밝힌 메시지다. 부동산 투자에 편중된 그동안의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사업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실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달라는 요구다.
“실물‧전자 증권에 이은 ‘새로운 형태’의 증권”
토큰 증권은 증권성이 있는 권리를 전자화된 토큰(Token·특정 플랫폼에서 사용되는 가상 자산) 형태로 발행한 것을 말한다. 윤석열닫기윤석열기사 모아보기 정부 국정과제인 ‘디지털 자산 인프라(Infrastructure·사회적 생산 기반) 및 규율체계 구축’ 일환으로 도입됐다.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주현닫기김주현기사 모아보기)가 지난달 발표한 ‘토큰 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에 따르면, 토큰 증권은 분산원장 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을 활용해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디지털화한 것으로, 실물 증권·전자 증권에 이은 새로운 발행 형태의 증권이다.
분산원장에는 복수의 노드(Node·관리 주체)가 참여하기 때문에 장래 여러 금융기관이 비슷한 책임을 나눠 갖는 관리 주체가 될 수 있다. 전자 증권법 개정이 이뤄지면 분산원장도 공적 장부가 된다.
쉽게 말하면 형태는 ‘탈 중앙화’(Decentralization) 기반의 가상 자산 모습이지만, 속성은 주식이나 채권과 같다고 보면 된다. 블록체인(Blockchain‧분산원장)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 활용 권리 대신 주식과 마찬가지로 기업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토큰 증권을 보유할 경우, 기업이나 블록체인 플랫폼이 낸 수익 또는 자산 일부를 배당받는 것도 가능하다. 당연히 ‘자본시장법’ 틀 안에서 이 모든 게 이뤄진다.
기존의 자본시장 및 전자증권 제도는 블록체인 기술 활용이나 정형화되지 않은 증권 유통을 상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관리 감독의 어려움이 존재했다.
가령 지난해 5월 터진 루나(LUNA)·테라USD(UST) 사태가 그랬다. 하루아침에 시가총액 60조원이 증발하는 사이 손실을 본 국내 투자자만 28만명에 달했지만, 이를 설계한 권도형 테라폼 랩스(Terraform Labs) 대표를 처벌할 방도가 딱히 없었다. 가상 자산 역시 증권 성격이 분명히 있음에도 자본시장법을 적용해 처벌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가 루나를 증권이라 보고 권 대표를 상대로 민사소송에 들어갔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현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단성한)도 루나를 ‘투자계약증권’ 분류하면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투자계약증권은 ‘특정 투자자가 그 투자자와 타인(다른 투자자를 포함) 간 공동사업에 금전 등을 투자하고 주로 타인이 수행한 공동사업 결과에 따라 손익을 귀속 받는 계약상 권리가 표시된 것’을 의미한다. 사업에 함께 투자해 수익을 분배 받기로 약정했다면 그 모든 것이 증권에 해당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동안 자본시장법상 이론적으로만 존재했던 개념이다.
금융당국은 작년 4월 조각 투자 가이드라인(Guide-line·안내 지침서)을 발표하면서 국내 최초로 투자계약증권 사례를 발표했다. 뮤직카우(대표 정현경·김지수)의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을 투자계약증권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후 당국은 ‘금융 안정’을 바탕으로 한 시장·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지원하고자 토큰 증권 제도 정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수영 금융위 자본시장국 자본시장과 과장은 “자본시장법상 증권 개념과 증권의 발행 형태 관계는 증권을 ‘음식’으로, 발행 형태를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비유할 수 있다”며 “어떤 그릇에 담겨 있더라도 음식은 바뀌지 않듯이 발행 형태가 달라진다고 해 증권이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무것이나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쓸 순 없다”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일정한 법적 효력과 요건을 갖춘 발행 형태가 요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형태의 증권으로 토큰 증권이 떠오르면서 법적 쟁점에 대한 논의도 깊어지고 있다.
한서희(사법연수원 39기) 변호사는 지난 2일 열린 ‘토큰 증권 가이드라인 및 뉴 비즈니스(New Business·신사업) 법적 쟁점’ 웨비나(Webinar·웹+세미나)에서 “타인이 수행하는 공동사업 결과에 따라 손익을 귀속 받는지가 중점 판단 요소”라며 “계약에는 묵시적 계약도 포함되므로 계약 전반적 요소를 면밀하게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최영노(사법연수원 16기) 변호사는 이 웨비나에서 “조각 투자 대상에 대한 소유권 등의 권리를 실제로 분할해 투자자에게 직접 부여하는 경우나 투자자가 조각 투자 대상을 개별적으로 직접 사용·수익·처분할 수 있는 경우엔 증권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적다”면서도 “다만, 그런 형식은 조각 투자 상품으로서 장점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 변호사는 “조각 투자 상품은 실물 자산을 신탁한 뒤 수익증권을 토큰화해 거래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현행법에선 토큰 증권이 중앙화된 계좌부 기반이 아니라서 전자 증권에 해당 안 되는데 전자 증권 법을 정비하기 전까진 분산원장과 별도로 계좌부 전자 증권을 발행(법상 권리 장부) 하는 ‘미러링’(Mirroring) 방식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수익증권 발행 제약 문제는 혁신 금융 서비스 지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도 짚었다.
증권가 “새 먹거리”… 일각에선 ‘거품’ 우려
토큰 증권은 자금조달이 비교적 쉽고, 부동산·예술품·골동품·한우 등 다양한 자산이 투자자산으로 대중화된다는 점에서 증권가의 ‘새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 보유한 큰 가치의 비금전 자산을 조각으로 쪼개 소액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은 투자자에게도 매력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국내 증권가에선 토큰 증권 관련 업체와의 ‘맞손 잡기’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신한투자증권(대표 김상태닫기김상태기사 모아보기)은 토큰 증권 시장 선점을 위해 블록체인 전담 부서를 신설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 중이다. 에이판다파트너스(대표 최현욱), 피어테크(대표 한승환), 델리오(대표 정상호), 슈퍼블록(대표 김재윤) 등 블록체인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기업과 손을 잡았다. 올해 중 토큰 증권 플랫폼 서비스를 출시하는 게 목표로, 현재 활발히 네트워크(Network·연결망) 설계와 기능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NH투자증권(대표 정영채닫기정영채기사 모아보기)은 20일 토큰 증권 생태계 구축을 위해 관련 기업 간 협의체인 ‘STO 비전 그룹’을 출범시켰다. STO 비전 그룹은 NH투자증권을 비롯해 ▲조각 투자 사업자 ‘투게더아트’(대표 김항주) ‘트레져러’(대표 김경태) ‘그리너리’(대표 이재열) ▲비상장 주식 중개업자 ‘서울거래비상장’(운영사 PSX 대표 김세영) ▲블록체인 기술기업 ‘블록오디세이’(대표 김기영) ‘파라메타’(옛 아이콘루프·대표 김종협) ▲기초자산 실물 평가사 ‘한국기업평가’(대표 김기범) 등 영역별 대표기업 8곳이 참여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달 HJ중공업(대표 홍문기·유상철), 한국토지신탁(대표 최윤닫기최윤기사 모아보기성·김정선)과 토큰 증권 발행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을 체결했다. 소규모 투자가 어려웠던 선박금융 분야에 국내 최초로 토큰 증권을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이 밖에 하나증권(대표 강성묵)과 한국투자증권(대표 정일문닫기정일문기사 모아보기)은 부동산 조각 투자 플랫폼 ‘루센트블록’(대표 허세영)과 협업하기로 했으며, KB증권(대표 김성현닫기김성현기사 모아보기‧박정림)과 키움증권(대표 황현순), 대신증권(대표 오익근닫기오익근기사 모아보기) 등도 STO 플랫폼 구축에 나서거나 관련 회사와 제휴하는 등 시장 경쟁에 과감히 뛰어든 상태다.
토큰 증권 시장 전망은 밝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원장 신진영) 선임연구위원이 지난해 9월 ‘증권형 토큰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 방향’ 의견수렴 세미나(Seminar·연수회)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22년 7월 기준 전 세계에 발행된 토큰 증권 시가총액은 약 179억달러(23조원)에 달한다.
김갑래 선임연구위원은 “아직은 토큰 증권 시장 규모가 가상 자산 등에 비하면 작지만, 연평균 성장률(CAGR‧Compound Annual Growth Rate)은 59%”라며 “오는 2030년까지 시장 규모가 크게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선 탄소배출권과 주식, 채권, 수익증권 등에 대한 토큰 증권이 발행·유통되고 있으며 유럽, 싱가포르 등도 토큰 증권에 공모 규제 등 기존 증권 규제를 적용 중이다.
이처럼 장밋빛 전망이 퍼지고 있지만, 반대편엔 아직 갈 길은 멀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우선 한국예탁결제원(사장 이순호닫기이순호기사 모아보기)과 한국거래소(이사장 손병두닫기손병두기사 모아보기) 등을 통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자본시장법에 따라 토큰 증권 발행·유통을 관리·감독하겠다는 청사진 외에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투자자 보호를 위해 당국이 토큰 증권 발행을 불특정 다수가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퍼블릭(Public·개방형) 블록체인’이 아니라 참여자가 제한된 ‘프라이빗(Private·폐쇄적) 블록체인’으로 설정했다는 점은 국내 토큰 증권 시장이 해외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아울러 토큰 증권 발행과 유통이 분리되면 각 사업을 담당하는 업체가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최화인 초인스뮤온오프 대표는 한 언론사 인터뷰(Interview·면담)를 통해 “프라이빗 네트워크 형태로 토큰 증권을 운영한다면 블록체인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며 “토큰화를 한다고 유동성이 생기진 않는다”고 짚었다. 이어 “자본시장법을 적용받아 국내에서만 토큰 증권을 유통하게 된다면 가상 자산의 큰 장점인 글로벌 유동성을 잃을 것”이라 덧붙였다.
일각에선 ‘거품’ 우려도 제기된다. 여전히 대부분 투자자가 디지털 자산에 대한 인식이 낮고, 불신 또한 존재하는 상황에 토큰 증권 시장이 생각만큼 성장할 수 있겠냐는 물음이다. 기존 디지털 자산과 유사한 시장이 형성될 거라 전망되는데, 자본시장법 안에서 그만큼의 빠르고 간편한 거래 및 큰 변동성에서 오는 높은 투자 수익 등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장 널리 알려진 국내 조각 투자 플랫폼 ‘뮤직카우’의 경우, 작년 4월 기준 누적 거래 규모가 3715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유가증권시장(KOSPI) 시가총액 100위권에 불과한 수준이다. 뮤직카우는 창작자로부터 음악 저작권 일부를 양도받아 지분을 쪼갠 뒤 경매에 부치는 사업 방식을 영위하고 있다.
음원이 있는 한 사업 유지는 가능하겠지만, 음악 저작권 자체가 투자 상품 성격을 가질 수 있는지는 논의 거리로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해당 음원을 찾는 사람이 줄어 투자 상품으로서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사업자의 도산 위험성 등도 해결과제로 지목된다.
부동산 조각 투자를 사업으로 둔 카사코리아(대표 예창완)와 루센트블록 등을 향해선 최근의 부동산 실물경기 침체 상황이 위험 요소로 거론되고 있으며, 미술품에 관한 조각 투자 사업을 영위하는 서울옥션블루(대표 이정봉)는 투자 작품에 대한 새로운 정보나 매각 일정 등을 알 수 없는 ‘깜깜이 투자’ 등이 문제로 꼽히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각 투자 특성상 대부분이 증권성이 있어 토큰 증권으로 분류될 텐데 발행자가 거래소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고, 소액 거래 단위 및 거래량으로 가격 변동성이 높아 시세조작 등 불공정거래 문제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투자자 보호 관점과 저비용·신속 유통을 위한 효율적 유통 방식 사이에 조화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과거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대중으로부터 자금조달)이나 마이데이터(Mydata‧본인 신용 정보 관리업) 등도 금융당국에서 혁신 방향을 가지고 과감하게 지원에 나섰고 각 금융사가 ‘새로운 먹거리’라 뛰어들었지만, 현재 그러한 분위기는 식은 데다가 이렇다 할 성과를 낸 곳도 딱히 없다”며 “토큰 증권도 엄청난 혁신의 바람이 불어올 것처럼 얘기되지만, 아이폰 또는 챗GPT와 같이 기술 발전으로 인한 산업 성장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미는 사업은 시장에서 다시 평가받으면서 ‘거품’이 제거되는 시간을 맞을 것”이라 분석했다.
투자자들도 아직은 물음표를 달고 있다.
키움증권과 카카오페이증권(대표 이승효)을 이용하면서 주식 등에 투자하는 31세 이명호(가명‧남) 씨는 “토큰 증권, 조각 투자 등의 용어가 생소한데 펀더멘털(Fundamental‧기초자산) 등 어떤 가치를 보고 투자할 수 있을지 아직은 막연하게만 느껴진다”며 “비트코인(BTC‧Bitcoin) 광풍 당시 금융 사기 사례나 작년에 있었던 루나‧테라 사태 등을 보면서 디지털 자산 투자는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토큰 증권이 뭐가 다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투자는 아직 하지 않고 있지만, 재테크에 관심이 있는 28세 박대근(가명‧남) 씨는 “금융당국의 디지털 혁신 의지와 증권업계의 신사업 확장 필요성이 유연하게 조화를 이루면 토큰 증권이 금융 혁신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거라 본다”면서도 “다만, 조각 투자 등 투자자산으로 활용되는 범위가 더 넓어지는 만큼 당국의 관리‧감독과 증권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이제 막 닻을 올리려는 ‘토큰 증권’ 사업을 두고 금융당국도 고심이 깊다. 시장과 충분히 소통하면서 올 상반기 중 전자 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려는 계획이다. 증권가와 디지털 자산 업계를 뒤흔든 ‘토큰 증권’이 앞으로 어떤 항해를 해나갈지 당국의 핸들링(Handling‧조종)에 관심이 쏠린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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