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상화폐 업계, 새해 루나·FTX 사태 막기 총력
(2) ‘IT 강국’ 한국, 디지털 자산 법 마련엔 뒤처져
2022년 국내 가상 자산 업계를 뒤흔든 사건은 크게 세 가지다. 지난해 5월, ‘루나(LUNA)·테라USD(UST)’를 지탱하는 페깅(Pegging·가치 고정) 알고리즘이 붕괴해 하루아침에 시가총액 60조원 가까이가 증발했다.
이어서 하반기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였던 가상 자산 거래소 ‘FTX’(임시 대표 존 J. 레이 3세)가 파산 신청해 업계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거기에 위메이드(WEMADE·대표 장현국)가 발행하는 가상 자산 ‘위믹스’(WEMIX) 상장폐지 사건까지 더해지며 가상 자산 투자심리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과연 2023년엔 위 세 가지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새해가 밝은 가운데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에 관심이 쏠린다. 여야 갈등 속 1년째 논의에서 진전하지 못해 투자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한숨 소리는 더 커진 상황이다.
법안 시행까지 1년… 여야는 대치만
윤석열닫기윤석열기사 모아보기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며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을 대표 공약 중 하나로 내밀었다. 오는 2024년 시행을 목표로 정했었다. 이 밖에도 ‘투자자 보호’와 ‘산업 진흥’, 이 큰 두 줄기 속 ▲가상 자산 소득 5000만원까지 비과세 추진 ▲가상 자산 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 허용 ▲디지털 산업 진흥청 신설 등 굵직하고도 구체적인 공약 여러 개를 내세웠다.지난해 10월 가상 자산 업계 대표 격인 업비트(Upbit) 운영사 ‘두나무’의 이석우닫기이석우기사 모아보기 대표 역시 법 제정이 늦어지는 것에 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당시 그는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자리에 불려가 루나‧테라 사태와 관련해 “가상 자산 시장은 지금 5년 넘도록 아무런 규칙이나 제도가 없는 상황”이라며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객관적 기준을 요구했다. 명확한 제도가 마련된다면 응당 투자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친 것이다.
현재 국회엔 17개에 달하는 디지털 자산업에 관한 법률이 계류돼 있다. 특히 국민의힘 디지털 자산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창현닫기윤창현기사 모아보기 의원이 대표 발의한 ‘디지털 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안심 거래 환경 조성을 위한 법률 제정안’, 국회 정무위원장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가상 자산 불공정거래 규제 등에 관한 법률안’은 불공정 거래 행위 금지 등 투자자 보호 조치가 다수 들어있지만 여야 대치로 논의조차 무산됐다.
지난달 26일 정무위 법안심사 제1 소위원회가 11월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다.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안 10건을 상정했지만, 법안 내용이 방대하다는 이유로 심사 후 순위로 밀렸다. 결국 법안 제정 논의는 올해로 넘어오게 됐다. 오는 16일 오전 10시에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 개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올해는 변화의 움직임이 있을까?
오유리 빗썸(Bithumb·대표 이재원닫기이재원기사 모아보기) 경제연구소 정책 연구팀장은 ‘2023년 가상 자산 정책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3년은 가상 자산 규제 초석을 다지는 원년이 될 것”이라 밝혔다.
그는 “2022년은 가상 자산 업계 내 글로벌(Global·세계적인) 기업들의 잇따른 파산으로 업계와 투자자 모두 규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한 해”라며 “주요국 정부가 블록체인(Blockchain·공공 거래 장부)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합리적 규제의 틀을 마련해 나간다면, 2023년은 관련 업계가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고 장기적 성장의 초석을 다지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공백 속 업계·투자자 한숨 커져
디지털 자산 기본법 규제 공백 속 업계와 투자자 한숨은 커지고 있다. 올해도 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돼 가상 자산 업계에 봄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런 가운데 세계 최대 가상 자산 거래소 ‘바이낸스’(Binance·대표 창펑 자오) 투명성 논란까지 불거졌다. 지난해보다 더 큰 위기가 도사리는 것이다. 법안 공백이 더 길어질 경우, 투자자 피해 및 업계 충격이 더 클 수 있다현재 당국은 직접적 개입보다 거래소 공동 협의체의 ‘자율 규제’에 무게 중심을 둔 상태다. 루나·테라 사태 당시 거래소별로 다른 기준과 대처에 논란이 일자 자율 공동 대응을 목적으로 공동 협의체 ‘DAXA’(Digital Asset eXchange Alliance)가 만들어졌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대부분 법안도 감독 권한 등을 협회에 주는 등 자율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위믹스 사태에서 봤듯이 자율 규제는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자율을 강조할수록 규제 효과가 줄어들고 규제에 무게를 둘수록 자율 의미가 퇴색되는 역설이다.
실제로 DAXA는 루나 사태에서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이 있었기에 위믹스 사태에선 상장폐지 결정을 빠르게 내렸으나, 오히려 투자자 피해를 양산했다는 지적을 또다시 받았다. 위메이드 측이 DAXA를 상대로 낸 상장폐지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 핵심 내용 중 하나엔 유통량 개념과 거래 지원 종료 가이드라인(Guide-line·안내 지침서)이 정립되지 않았단 지적도 있었다. FTX 파산 사태 역시 본질은 법적 준수 기준이 없다는 점이었다.
법안 공백을 둘러싼 잡음이 이어지자 국내 코인 마켓 거래소를 대변하는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KDA·회장 강성후)는 지난달 29일 성명문을 발표했다. 올해엔 국회에서 디지털 자산 기본법이 처리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윤창현 의원 발의안과 백혜련 의원 발의안에 대해 여야 합의가 어느 정도 된 만큼 정쟁을 그만하고 법안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KDA는 “정기국회 후에 열린 임시 국회에서도 디지털 자산 법안을 심사조차 하지 않은 것은 국회 존재 이유인 입법 기능을 부정하는 행위”라며 “국회의 입법 부작위에 의해 지금도 수많은 투자자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비회기 중 법안심사를 해서라도 올해 첫 국회에선 반드시 디지털 자산 1단계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해당 법안이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모두 지난 대선에 공약한 사항이라는 점을 짚었다. 아울러 거래소뿐 아니라 가상 자산 발행자에 대한 규제 도입 필요성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국내 거래소 상장 가상 자산에 관해선 ▲사업 계획 백서의 한글 제공 ▲주요 내용에 대한 정기·수시 공시 ▲과도한 락업(Lock-up·매각 제한) 제한 ▲약관 법에 의해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한기정)로부터 심의 받은 약관제 채택 등 기초 사항을 현재 심사 중인 법안에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법안 보안 과정에선 생태계 확장, 기술 개발 및 인력 양성, 외국 진출 등 산업 육성 방안도 부칙에 반영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강성후 KDA 회장은 “디지털 자산 1단계 법안 처리는 투자자 보호와 산업 육성을 통해 한국의 가상 자산 산업에 역사적 첫발을 내딛는 일”이라며 “KDA가 제시한 사항들이 보완 반영된 가운데 내년도 첫 임시 국회에서 법안이 꼭 처리될 수 있도록 업계·학계 등과 협력하면서 여야 정치권 및 국회와 적극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디지털 자산 기본법, ‘규제 강화’에 힘 실릴 듯
금융당국 역시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기본적 입장에 동의하고 있다. 특히 투자자 보호 등에 힘을 실으려 한다.김소영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주현닫기김주현기사 모아보기) 부위원장은 지난달 14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 자산 특별위원회 제4차 민·당·정 간담회’에서 “FTX 사태로 드러났듯 가상 자산 업자에 대한 이용자 자산 보호 의무와 자기 발행 코인 등에 대한 불공정거래 규제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규제 탄력성, 소비자 보호를 위한 동일 기능·동일 위험·동일 규제 원칙, 글로벌 정합성 확보 등 세 원칙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자가 안심하고 가상 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국회와 입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이명순 금융감독원(원장 이복현닫기이복현기사 모아보기) 수석부원장도 가상 자산 시장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수석부원장은 “디지털 자산 실패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신뢰가 크게 무너졌다”며 “일련의 사태를 통해 규제 없는 시장은 사상누각(沙上樓閣·모래 위에 쌓은 누각)과 같고, 디지털 자산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한 규제 마련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금융당국이 디지털 자산 기본법 필요성에 동의하고 속도를 내려 하는 만큼 여야 간 협치를 신속히 하면 관련 법안 제정은 올해 안에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법안이 올해 통과되더라도 시행일은 정부에서 공포한 뒤 1년이 지나야 한다. 내년은 돼야 법안이 효력을 가질 수 있단 의미다.
현재 전 세계 몸집이 큰 국가들은 디지털 자산 관련 법안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6월 27개국이 회원국인 유럽연합(EU·European Union)이 세계 최초 가상 자산 법 ‘미카’(MiCA·Markets in Crypto Assets)에 합의한 데다 9월엔 미국 백악관 역시 범정부 차원의 디지털 자산 팩트 시트(Fact Sheet·요약서)를 발표했다. ‘정보기술(IT·Information Technology) 강국’이란 타이틀(Title·명칭)에 걸맞게 디지털 자산 기본법을 하루빨리 제정해 산업을 주도할 필요가 있단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자산 산업 진흥도 시급한 상황에 투자자 보호로 기조가 바뀌더니 이젠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가고 있는 건 맞는지조차 잘 모르겠다”며 “디지털 자산 관련 보완 입법 마련 기간까지 고려하면 법안 처리가 더 늦어지는 것은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윤 대통령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자 자산 보호, 불공정거래 금지, 자율 감시와 금융위 관리 감독·총괄 등의 내용을 담아 디지털 자산 기본법을 대표 발의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일련의 문제가 주는 메시지는 거래 활성화 전 거래 규제나 규율, 질서를 확보해야만 시장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문제가 잘 정리된 뒤 산업 진흥이나 여러 지원 등 2단계로 갈 수 있으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라 밝혔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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