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승두 SK증권 투자분석가(Analyst)는 ‘신성장산업분석’ 보고서를 통해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이후 지금까지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며 “어느덧 ‘코로나’와 ‘전쟁’ 키워드가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적국 암호를 빠르게 해석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갈망이 컴퓨터를, 전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미리 예방하기 위한 고민이 인터넷을 낳았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전쟁은 오늘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통조림 등 가공식품과 전자레인지, 마가린, 카디건 등이 만들어지는 시발점이 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최고 군사 강국으로 평가받는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 기조 아래 201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국방예산을 꾸준히 증액해왔다. 미국과 중국 갈등이 여전히 이어지면서 남중국해 및 필리핀해 주권 다툼은 더욱 거세졌고, 이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국방예산 증액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유럽 지역 내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가입국 중심의 국방예산 증액 압력도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은 1958년 미합중국 항공 우주국(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우주 시장 개척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고 11년 뒤 1969년 약 4억달러 수준이었던 NASA 예산을 1966년 59.3억달러까지 끌어올리며 치열하게 몰입한 결과 세계 최초로 인류를 달에 보내는 데 성공한다.
현재는 중국이 G2(Group of 2‧미국과 중국)로 부상하면서 200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2003년부터 달 탐사를 위한 창어(嫦娥) 프로젝트를 시작해 2007년 창어 1호가 달 궤도 진입에 성공한다. 지난 2018년엔 무인 달 탐사선 창어 4호를 쏘아 올려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고, 2020년엔 창어 5호를 발사해 달 토양 샘플을 채취한 뒤 성공적으로 지구에 귀환하기도 했다.
최근엔 우주 프로젝트가 막대한 비용이 수반돼 민간 기업으로부터 여러 시도가 발생하는 중이다. 테슬라(Tesla) 대표이자 세계 최대 부자인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스페이스 X(Space X), 아마존(Amazon) 의장인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의 블루 오리진(Blue Origin), 버진그룹(Virgin Group)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의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 등이 그 주인공이다. 벌써 우주여행 상품도 속속 나오고 있고, 위성 발사 비용도 과거 대비 10분의 1 미만까지 줄어들면서 위성 사업까지 경제성을 갖기 시작했다.
민간 중심의 우주 위성 산업이 개화하면서 위성 통신 및 데이터 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위성 통신과 위성 데이터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단적인 예로 위성 영상 데이터 제공 및 분석 전문 업체 ‘막서 테크놀로지’(Maxar Technologies)의 ‘러시아 전차 행렬 사진’ 등은 전쟁의 폐해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사실 우주로부터 얻는 데이터 가치는 조용히 커지고 있었다. 과거 미국 유통기업 월마트(Walmart) 기업가치 분석을 위해 월마트 주차장을 드나드는 차량 숫자를 위성으로 관찰한 사례가 있고, 인도의 한 은행에서는 농작물 담보 대출 검토를 위해 실제로 농작물이 잘 자라는지 파악하기 위한 용도로 위성 데이터를 활용한 바 있다. 심지어 유류 및 기타 저장창고에 자원이 얼마나 저장돼 있는지, 어떤 성분으로 구성돼 있는지도 이제 위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군비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국가별 군비 경쟁은 최근 5~10년간 암묵적으로 꾸준히 진행돼왔다. 가장 큰 이유는 ‘자국 우선주의 확산’이다. 지난 2016년 대선 후보로 등장한 트럼프는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이 주장하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을 다시 들고 나와 미국 우선주의를 천명했고, 결국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됐다. 비슷한 시기 영국도 유럽연합(EU‧European Union) 탈퇴(Brexit) 논의를 시작했다.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과감히 펼치려면 막강한 경제력과 국방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미국과 영국은 충분히 그런 힘이 있었고 결국 과감한 결정에 이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G2로 떠오른 중국에 대한 집중 견제를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관세를 높이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미중 무역전쟁은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다. 특히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소 중 하나인 ‘대만’을 별도 국가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과 행동을 계속하면서 중국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인 지금도 대중(對中) 정책 기조 변화는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욱 압박하는 듯한 모습이다. 지난 2020년 미국‧인도‧일본‧호주 안보협의체 ‘쿼드’(Quad)를 공식 출범했고, 지난해 미국‧영국‧호주의 외교 안보 3자 협의체 ‘오커스’(Aukus)를 선보였다. 국방 및 외교 협력을 위한 고위급 협의체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남중국해를 비롯한 인도 태평양 지역의 해양 안보 전선 구축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 방한과 함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가 나온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 가능하다.
최근 천조국, 미국은 국방비를 크게 늘리고 있다. 오는 2023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국방부 예산은 7730억달러이며, 원자력 에너지 방위비와 기타 국방 관련 활동비까지 모두 포함한 총 국가 방위예산은 8133억달러에 달한다. 지난 25일 기준 환율로 환산하면 기본 예산은 979조원, 총 국가 방위예산은 1030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중요한 점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사용하는 미국이 국방예산을 다시금 확대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2023년 사상 처음으로 국방비가 8000억달러를 웃돌 가능성도 점쳐진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도 국방비를 증액하는 중이다. 상징적으로 오랜 시간 중립국 위치를 유지했던 핀란드와 스웨덴이 NATO 가입을 신청했고, NATO 가입국은 국내 총생산(GDP‧Gross Domestic Product) 대비 국방예산 2% 추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유럽의 NATO 가입 27개국 중 총 GDP 2% 이상 국방예산을 사용한 국가는 7곳에 불과했다. 또한 세계대전 전범국으로 국방비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던 독일이 가장 먼저 GDP 대비 2% 이상 수준으로 국방예산을 증액하겠다고 선언했다. 독일의 지난해 연간 국방예산은 약 560억달러로, GDP 대비 1.32% 정도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국가 각각의 국방예산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상태지만, 증가 속도는 가파르다. 지난 2020년 대비 2021년 국방예산 증가율을 살펴보면 ▲미국 2.9% ▲일본 4.1% ▲한국 10.3% ▲영국 12.7%를 기록한 반면 ▲말레이시아 13.5% ▲싱가포르 11.4% ▲필리핀 9.6% ▲대만 8.7% 등 인도 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국방예산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필리핀해·남중국해 등 인도 태평양 지역 중심으로 대두되는 중국과의 갈등, 방위산업 현대화 추진 등이 동남아 주요 국가들의 주된 국방예산 증액 요인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국내 방산기업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연초부터 해외 수출 소식이 연이어 전해진다. 지난해 국내 빙산 수출 실적은 역대 최고 수준인 약 70억달러를 넘어섰다. 무기 수출액은 처음으로 무기 수입액을 상회했고, 지난 2012년부터 2016년 대비 2017년부터 2021년까지의 글로벌 무기 수출 실적 증가율은 177%로 독보적이다.
나승두 투자분석가는 “올해도 시작이 좋다”고 했다. 지난해 12월부터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 등 1조원대 호주 수출 계약 소식을 전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약 4조원대 천궁 2 지대공미사일, 2월에는 2조원대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이뤄냈다.
나 투자분석가는 “국산 전차·장갑차·미사일 등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어 국방예산 증액을 추진 중인 북미·유럽·동남아·중동 지역 국가로부터 추가적인 수출 계약 소식은 얼마든지 전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며 “최근 미국 바이든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한미 국방 상호 조달 협정(RDP·Reciprocal Defense Procurement) 체결 논의가 시작된다는 점도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우리나라 방산 수출 실적이 100억달러를 상회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며 “2013~2016년 국내 방산 업체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당시와 비슷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배경은 충분히 조성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닫기윤석열기사 모아보기 정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 국방 정책 기준이 됐던 ‘국방개혁 2.0(2018년 7월 발표)’를 대체할 ‘국방혁신 4.0’을 곧 발표하려 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 속에서 힌트를 찾자면 국방혁신 4.0은 제2 창군 수준으로 국방 태세 전반을 재설계한다.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과학기술 강군 육성’이 목표다. 전투 현장에서의 드론과 로봇을 활용해 전투 인원의 인명 손실을 최소화하고자 2023년까지 원격제어, 2027년까지 반자율, 2027년 이후 완전 자율 형태의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 구축을 추진할 예정이다.
나 투자분석가는 “해외에서도 우리나라 국방 기술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이는 해외 수출이 증가하면서 국내 방산 업체들의 실적과 주가가 강세를 보인 2013~2016년을 떠올리게 한다”며 “올해 국내 방산 기업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쟁은 인류에 큰 상처와 피해를 남기는, 있어서는 안 될 일임은 분명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전쟁은 과학 기술 발전을 야기하고 새로운 성장 산업 등장을 촉발하는 것도 사실”이라며 “지금껏 인류가 치른 전쟁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고, 앞으로 있을 전쟁도 역설적인 산물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나승두 투자분석가는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우주 통신‧우주 데이터 가치가 새롭게 부각됐다”며 “앞으로는 우주를 향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방산·우주·항공 관련 종목 4개에 관해 ‘매수’를 추천했다.
항공기·전투기 심장인 엔진 및 부품 생산·정비 전문 업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목표주가는 7만5000원을, 에어버스(Airbus)와 보잉(Boeing) 주요 기종의 날개 뼈대 및 구조물 등을 생산 납품하는 ‘한국항공우주’ 목표가는 7만원을 제시했다.
이어서 각종 유도무기 및 감시체계·레이더 등을 개발 제작하는 종합 방위산업 전문 업체 ‘LIG넥스원’과 친환경 저탄소화 중심의 기관차 및 기타 철도차량 제조에 힘쓰고 있는 ‘현대로템’ 목표가는 각각 11만원과 2만5000원을 유지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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