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이 한해 48조원에 달하는 서울시 예산을 관리하는 금고지기 수성에 성공했다. 기존 1금고 운영권을 지킨 데 이어 4년 전 우리은행에 내줬던 2금고 자리까지 탈환한 비결은 전산시스템 운영 능력과 디지털 역량에 있었다는 분석이다.
연간 48조 1·2기금 독식…금고지기 '4년 더'
서울시는 차기 시금고 심사 결과 신한은행을 제1금고, 제2금고에 지정한다고 21일 밝혔다. 앞서 서울시가 지난 5~11일 시금고 제안서를 접수한 결과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KB국민은행 등 세 은행 모두 제1금고, 제2금고에 동시에 응찰했다.서울시는 지난 14일 금융·전산 전문가, 교수, 공인회계사 등 총 12명으로 구성된 '서울시 금고지정 심의위원회'를 개최했다. 각 금융기관에서 제출한 제안서와 프레젠테이션(PT) 등을 종합 심의한 결과 신한은행이 제1금고, 제2금고 참가 기관 중 각각 최고점수를 받아 1순위로 선정됐다.
서울시와 신한은행은 오는 5월 중 금고 업무 취급약정을 체결할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2023년 1월1일부터 2026년 12월31일까지 4년간 세입금 수납과 세출금 지출 및 서울시의 각종 기금 등 자금의 보관·관리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1금고는 일반·특별회계(44조2190억원)를, 2금고는 기금(3조5021억원) 관리를 각각 담당한다.
서울시금고는 1915년 우리은행 전신인 조선상업은행이 금고 약정을 맺은 후 우리은행이 관리해왔지만 2018년 신한은행이 103년간의 독점 체제를 깨는 데 성공했다. 위성호닫기위성호기사 모아보기 신한은행장과 손태승닫기손태승기사 모아보기 우리은행장(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직접 PT에 나서는 등 전면전을 벌인 끝에 신한은행이 1점 차로 1금고 지위를 따냈다.
당시 신한은행은 금고 선정기준 중 서울시 출연금 부문에서 우리은행을 제쳤다. 입찰을 앞두고 서울시가 1·2금고(복수) 체제로 개편했는데, 신한은행이 우리은행(1250억원)의 2.4배인 3000억원을 출연금으로 써내면서 1금고 운영권을 따냈다.
출연금보다 금리…'전산·디지털 역량'이 승부 갈라
서울시금고 지정은 1금고와 2금고를 분리 평가해 최고 득점한 은행을 차기 시금고 우선지정대상 은행으로 각각 선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심의위원회는 서울특별시 금고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조례 규정에 따라 6개 분야, 19개 세부항목을 심사했다. 6개 분야는 ▲금융기관의 대내외적 신용도 및 재무구조의 안정성(25점) ▲시에 대한 대출 및 예금금리(20점) ▲시민의 이용 편의성(18점) ▲금고업무 관리능력(28점) ▲지역사회 기여 및 시와의 협력사업(7점) ▲녹색금융 이행실적(2점) 등이다.
제1금고 평가 결과 신한은행은 1168점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국민은행은 1124점으로 2위였고 우리은행이 1121점으로 3위에 그쳤다. 제2금고 평가에서도 신한은행(1147점)이 1위에 올랐다. 이어 우리은행(1133점), 국민은행(1133점)이 소수점 차이로 각각 2, 3위를 기록했다.
이번 심사에서는 예년과 달리 출연금이 큰 당락을 결정짓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서울시는 올해 평가항목에서 ‘협력사업계획(출연금)’ 평가 배점을 4점에서 2점으로 줄이고 대신 ‘서울시에 대한 대출·예금 금리 배점’을 18점에서 20점으로 높였다. ‘관내 무인점포·현금자동인출기(ATM) 설치 대수’와 함께 ‘녹색금융 이행실적’도 새 평가 지표로 추가했다.
실제로 정량평가 부분에서는 금리 경쟁력이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신한은행은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국내외 금리 인상 기조를 고려해 경쟁 은행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승부를 가른 핵심 관건은 ‘디지털 역량’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는 이번 심사에서 ICT 기술을 활용한 시민 편의 증진방안 등 디지털 역량에 초점을 맞췄다. 신한은행이 전산 시스템 관리능력을 앞세워 가장 배점이 큰 정성평가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분석이다.
신한은행은 2018년 서울시금고 유치 이후 대규모 전산구축비용을 투입해 시스템 고도화에 나섰다. 상암동에 ‘시금고 IDC센터’를 구축해 시금고 시스템을 은행 시스템으로부터 완벽하게 분리했고 청사 인근에는 ‘시금고 통합센터’를 만들어 접근성을 높였다. 또 서울시 ETAX 홈페이지와 STAX 앱에서 기존 우리은행 계좌만을 통해 수납하던 것을 전 은행으로 확대해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등 간편결제사를 통한 결제 수단도 추가했다.
이외에도 카카오톡을 통한 세금납부 안내를 가능하게 하고 최첨단 AI 챗봇 서비스를 활용해 장애인과 취약계층까지 배려하는 편리한 수납서비스를 구축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무 전용 AI(인공지능) 챗봇으로 재산세·자동차세 등 각종 세금 상담부터 조회·납부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개발했다.
신한은행은 심사위에 이 같은 디지털라이제이션 노력을 어필하고 앞으로 4년간 차세대 전산 시스템 추가 개발 계획 등 추후 디지털 전환 대응 전략을 설명했다. 빅데이터를 통한 이상기류 감지 시스템,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디지털 납부 시스템, 인공지능(AI) 상담원 등 디지털 기술을 통한 시민 편의성 개선안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은 편의성 부문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2094대)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서울 시내에서 2000대 이상의 ATM을 운영하고 있다. 경쟁 은행이었던 국민은행이 1772대, 우리은행이 1629대인 점을 고려하면 크게 앞서는 수치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입찰전은 전산 역량이 승부의 관건이 된 것으로 보인다”며 “신한은행이 그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전산 시스템을 고도화한 노력과 차세대 시스템 추가 개발 계획을 어필한 점이 주효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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