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을 이유로 기존 완성차 기업이 전기차 사업 확대를 주저한 것과 달리 전기차만 만드는 테슬라는 공격적인 판매 정책을 통해 시장을 미리 선점했기 때문이다.
세계 배터리시장 2위 LG에너지솔루션, 글로벌 전기차업체 수주하며 승승장구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조사한 2020년 세계 전기차 판매량에서 테슬라는 전년대비 45.1% 증가한 44만여대를 판매했다.
이는 배터리 업계 판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집계한 2020년 세계 전기차 배터리 탑재량 순위를 보면, LG에너지솔루션이 전년 3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 점유율은 10.5%에서 23.5%로 2배 이상 뛰었다. 반면 일본 파나소닉은 2019년 2위(24.4%)에서 2020년 3위(18.5%)로 한 단계 내려앉았다.
LG에너지솔루션이 선전한 이유는 테슬라 수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파나소닉은 테슬라에 배터리를 독점 공급해왔다. 그런데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과 중국 CATL이 이 관계를 최초로 깼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GM, 유럽 폭스바겐, 한국 현대차그룹 등 다양한 완성차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올해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과 유럽에 이어 전기차 3위 시장인 미국을 주목하고 있다. 사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미국은 친환경차 정책에 소극적이었다.
전기차 육성 정책도 캘리포니아 등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에너지전환을 공약으로 내건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며 시장 상황도 급변하고 있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3월 12일 “미국 친환경 산업 선도를 위해 2025년까지 5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이어 “기존 선수주 후투자 전략에서 선제적 생산능력 확장 투자로 전환해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선수주 후투자란 완성차 기업과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은 이후 계약물량에 맞춰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방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선언은 미리 공장을 지어놓은 이후 추후에 수주를 진행하겠다는 의미다.
시장 급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실행할 수 없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까지 2곳의 신규공장 건설을 추진한다. 예상되는 추가 생산능력 확보량은 70GWh라고 밝혔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이 운영중인 미국 미시간 1공장 생산능력은 5GWh로 12배 수준의 생산량 증설을 꾀하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공략할 시장은 주로 원통형 배터리와 에너지저장장치(ESS)다. 원통형 배터리는 테슬라, 루시드모터스 같은 신생 전기차 기업이 주로 채택한다.
ESS는 생산된 전기를 보존하는 시스템이다. 전력 생산 시기가 불안정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는 장치로, 미국판 그린뉴딜 정책 확대에 따라 고성장이 예상된다.
투자보다는 내실에 중점 둔 삼성SDI, ‘꿈의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초점
국내 배터리 2위 기업 삼성SDI는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공격적인 투자보다는 기술력 강화를 통한 내실 다지기에 집중한다. 삼성SDI의 투자는 대부분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향해 있다.
올해 삼성SDI는 ‘젠5’라고 부르는 전기차 배터리를 선보인다. 젠5는 1회 충전 시 주행가능거리가 600km 이상인 차세대 배터리다.
젠5는 기존 배터리 대비 에너지 밀도가 20% 이상 높아지고 배터리 원가도 20%가량 낮췄다. 에너지밀도를 결정 짓는 소재인 니켈 비율을 80%까지 높이고 안정성 보완을 위해 알루미늄 소재를 더했다. 젠5는 독일 럭셔리카 브랜드 BMW 신차에 공급된다.
삼성SDI는 유럽 시장 이외에도 배터리 공장 확장 계획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0월 이재용닫기이재용기사 모아보기 삼성전자 부회장이 베트남 현지 출장을 갔을 때, 현지 매체는 “삼성SDI가 베트남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SDI는 삼성전자와 함께 기술력 강화를 통한 장기적인 전기차 배터리 시장 경쟁력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정의선닫기정의선기사 모아보기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5월 삼성SDI 천안공장을 방문해 삼성전자와 삼성SDI 경영진으로부터 전고체 배터리에 관한 기술 동향을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대다수가 리튬이온 배터리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약점은 소재 특성상 화재에 취약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전고체 배터리는 양극·음극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해 성능은 물론 화재 위험성까지 크게 낮출 수 있어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단 높은 양산비용과 기술적 난제 등으로 인해 현재 상용화하지 않았다.
삼성SDI는 2027년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배터리 3사 가운데 양산 제시 시점이 가장 빠르다.
이후 현대차도 “2030년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출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단 현대차가 전고체 배터리를 삼성SDI로부터 공급받겠다는 건지, 직접 생산한다는 건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현대차가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밝히기 전까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집중하면서 가격협상에 활용하는 식의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 글로벌 핵심시장에 적극 투자하며 빠른 성장세
뒤늦게 배터리 사업에 뛰어든 SK이노베이션은 적극적인 투자 전략을 펼치는 기업이다. SK이노베이션은 2025년까지 ‘배터리 업계 3위’를 목표로 유럽, 중국, 미국 등 모든 핵심시장에서 증설 투자를 결정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18년 한국 서산공장 증설투자를 통해 4.7GWh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지난해 8GWh 수준의 생산능력을 갖춘 헝가리공장은 2023년 23GWh까지 확장한다.
또 같은 기간 중국에서는 36GWh급, 미국에서는 21GWh급 신규 공장 증설이 예정됐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은 미국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패소하며 현지 투자 계획은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한편, 중국 기업의 성장세는 한국 배터리 3사에 위협이다. 중국 CATL은 생산량 기준 세계 1위 배터리 기업. CATL은 배터리 기술력은 뒤쳐졌다고 평가되지만, 세계 1위 전기차 시장을 보유한 중국 시장과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기술력 면에서도 결국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또 완성차 기업들이 배터리 내재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점도 불안요소다. 완성차 기업은 전기차 제조원가 40~5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 비용이 부담된다. 수익성을 위해 자체 생산을 시도하고 있는 이유다.
전기차 1위기업 테슬라가 중장기적인 배터리 내재화 계획을 공식화 했으며, ‘전기차 대중화’를 선언한 독일 폭스바겐그룹도 관련 투자를 집행했다. 배터리 자체 생산은 없다던 미국 포드도 최근 입장을 바꿨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곽호룡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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