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최근 가계부채 급증세와 서울·수도권에서 전국으로 확산된 집값 상승을 감안할 때 한은 금통위가 금융안정과 관련해 경고장을 날리지 않았으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웠을 것이란 평가도 받고 있다.
전세3법은 불안정하던 집값·전세값 오름세에 더욱 불을 지폈다. 홍남기 장관이 기존 세입자의 경우 '2년+2년'를 행사하기 때문에 더 안정적인 주거 환경이 마련됐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신규로 전세를 구하는 사람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려야 했다.
최근 전세를 구한 증권사의 한 직원은 "여의도만 하더라도 8월부터 전세값이 껑충 뛰었다. 지역에 따라 말 그대로 전세값만 수억이 뛰는데, 기존 세입자의 주거 안정 운운하는 장관들은 제정신인지 모르겠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 관련 법이 갱신된 이후 전세값 상승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법 시행 전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던 대로 임대 공급 물량이 줄어들어 전세값은 급등했다.
전세값 상승세는 서울의 상대적으로 싼 지역 아파트 매매가도 끌어올렸다. 이후 김포, 파주 등의 아파트값까지 크게 부풀렸다.
공급 대책 없이 규제의 강도만 높이는 정책의 경우 '매물 잠김 효과'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공급에는 이상하리 만큼 인색한 정부의 정책,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임대차 관련법 등이 전세값을 띄우고 전제값 상승은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 전국의 집값이 들썩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 전국으로 확산된 집값 급등세
이날 KB국민은행이 발표한 '주간주택시장동향'을 보면 서울이나 수도권 뿐만 아니라 지방 아파트값 급등도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KB가 23일을 기준으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아파트 가격은 부산진구(2.42%)를 비롯해 부산 일대에서 1~2%대의 급등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 남구도 2.32% 뛰는 등 지방 광역시 집값이 크게 뛰었다. 5개 광역시 전체로는 0.73% 올랐다. 울산(1.25%), 부산(1.06%), 대전(0.54%), 대구(0.51%), 광주(0.31%)가 모두 상승했다.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은 김포(1.34%), 파주(1.25%) 등도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서울의 매매가격도 0.31% 상승률을 보이며 지난주(0.29%)보다 상승률을 확대했다. 서울이나 광역시 외의 지방 지역 집값도 일제히 상승한 것이다.
광역시 이외 기타 지방의 매매가격은 0.28% 올랐다. 연중 가파르게 오른 세종은 0.87% 뛰었다. 올해 세종시 집값 급등세 여전히 꺾이지 않고 있다. 세종시에 자기 집을 가진 '공무원'은 한국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들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서울시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 A씨는 세종 집값 급등이 마냥 반가웠다.
A씨는 "(나는) 서울 회사에 다니지만, 공무원인 와이프가 세종으로 발령이 나 2~3년전 세종시 아파트를 샀다"면서 "그런데 뜻하지 않게 세종 아파트값이 폭등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정책 덕분에 우리 가족은 엄청난 횡재를 했지만, 이 정부가 정책적으로 이렇게 집값을 띄워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속적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은 지난주(0.29%)보다 높은 0.31% 상승했다. 은평구(0.73%)에 이어 강남구(0.50%)의 상승폭이 컸다.
올해는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쌌던 지역 아파트값이 급등했으며, 상대적으로 싼 곳들의 가격이 많이 올라오자 다시 강남구 등도 상승했다.
직장인 B씨는 "아파트 광풍의 시대"라며 "이젠 서울의 여윳돈 있는 사람들이 지방의 아파트까지 지르면서 전국이 아파트 투기장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서울 전세대란이 서울의 집값을 밀어 올리고 인근 김포, 파주까지 자극하더니 이젠 지방 아파트까지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면서 "두뇌가 없는 감성적인 사람들이 하는 정책은 이렇게 위험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문재인 정권이 끝나지 않았지만, 이미 집값 상승폭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더 두드러진다.
■ 아파트값 폭등 때문에 한은 비난도 많아져...발언 강도 높일 수 밖에 없었던 한은
일각에선 한국은행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다.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으로 돈을 여기저기 풀어놓으니 전국이 부동산 투기장처럼 됐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전날 금통위에서 이주열닫기이주열기사 모아보기 총재가 '금융안정'에 대한 발언 강도를 높인 것은 사실 최근의 부동산 시장 분위기나 가계부채 증가세를 감안할 때 당연한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발표된 3분기 가계부채 증가폭은 역대 2번재로 컸으며, 증가율도 7%로 급증했다. 올해 마이너스 성장률이나 낮은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할 때 부채 증가세가 과도하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각에선 이주열 총재가 정부 규제 후 여러차례 '정부 거시건전성 정책으로 집값 상승세가 둔화될 것'이란 말을 했단 사실을 끄집어 내면서 한은을 비난하기도 했다.
직장인 C 씨는 "한은은 참 이상한 조직이다. 집값이 폭등해 무주택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는데 그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오로지 거시경제 안 좋다는 타령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한은은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전날 금통위에서 "코로나의 경제적 충격이 완화됐음에도 가계부채가 오히려 더 확대되는 것은 우려스럽다"면서 "가계부채가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를 웃돌아서 빨리 늘어나는 것은 채무상환 능력을 줄이고 가계소비를 제약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총재는 다만 한은 통화정책이 부동산값, 가계부채만 보고 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금리인상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 총재는 "거시경제가 완만하게 회복된다고 하지만 회복세는 불확실하다. 섣불리 완화 기조를 거둘 상황은 아니다"라며 "현재로선 통화정책 기조를 변경할 단계도 아니고, 검토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다만 일부에선 정부가 계속해서 집값 올리는 정책(정부는 아니라고 주장하지만)을 쓰는 이상 한은 역시 뒤늦게 다른 핑계를 대면서 금리인상을 예상보다 빨리 단행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경기가 올해 2분기 저점을 찍고 회복되는 단계이긴 하지만, 내년엔 기준금리 동결 전망이 많다. 하지만 참여정부 후반기를 기억하는 사람들 중엔 비슷한 그림이 만들어질 가능성을 엿보기도 한다.
은행의 한 베테랑 채권딜러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이헌재라는 유명한 저금리론자가 있었다. (경제수장은 저금리를 원했고) 한은은 당시 뒤늦게 집값 급등 때문에 금리를 올렸다"면서 "(금리인상의 근거로) 다른 이유들을 댔지만, 결국 집값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금리를 올렸던 것"이라고 기억했다.
그는 "이번에도 비슷한 그림이 만들어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년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하지만, 내년은 아파트 공급물량이 더 축소되는 위험한 해"라며 금리인상 시점이 시장의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진단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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