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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여는 인맥관리 23] 나폴레옹을 무너뜨린 프로파일링

기사입력 : 2020-07-0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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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여는 인맥관리 23] 나폴레옹을 무너뜨린 프로파일링이미지 확대보기
인간관계를 맺는 가장 중요한 3요소는 상대방을 읽는 ‘프로파일링Profiling)’, 한번 맺은 관계를 유지하는 ‘릴레이션십(Relationship)’ 그리고 상대방의 ‘이익(Interest)’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 메트리니히는 이 ‘P.R.I 전략’으로 나폴레옹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다. <전쟁의 기술(로버트 그린)> 참고.

나폴레옹의 마음을 얻는 방법

1809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의 전 황실을 합병했다. 오스트리아의 군대는 해산됐고 정부조직은 와해됐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유럽 정치의 중심에 있어서 프랑스가 유럽 중앙으로 진출하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에 ‘친구’ 메트르니히를 앉혔다.

메트르니히는 유럽의 유서 깊은 가문출신으로 사교계의 거물이며 상냥하고 기품 있는 남성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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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르니히는 이미 나폴레옹의 강력한 요청으로 프랑스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메트르니히가 갖고 있는 위상이 자신이 세우려는 왕실을 더욱 빛내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예상대로 메트르니히는 나폴레옹의 추종자가 됐고, 유럽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면서 서로 점점 솔직해져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 심지어 나폴레옹은 자기의 여동생 ‘카롤린 뮈라’와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메트로니히는 카롤린을 통해서 나폴레옹이 황후 조세핀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없어 불만이며,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몇 달 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황제의 딸 마리-루이즈의 청혼을 받고 조세핀과 이혼한 후 1810년 마리-루이즈와 결혼을 했다.

오스트리아 황녀와의 결혼은 나폴레옹이 유럽 황실가문의 일원으로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가 오랫동안 바랐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메트르니히와는 더욱 속을 터놓는 사이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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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부터 얻은 힘으로 국가간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

1812년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침공했다. 그러자 메트르니히는 나폴레옹에게 3만명 규모의 오스트리아 군대를 다시 재건해줄 것을 요청해 승낙 받았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군대의 재정비는 오스트리아 황실의 일원인 자신에게도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몇 달 후 러시아 침공은 참혹한 결과를 낳았고, 나폴레옹의 군대는 1/10이 전사했다.

1813년 봄, 협상이 결렬되자 새로운 전운이 온 유럽을 뒤덮었다. 전쟁의 양상은 프랑스와 그에 대항하는 러시아, 프로이센, 영국, 스웨덴의 강력한 동맹군과의 싸움이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군대를 재건해 상당한 힘을 길러 둔 상태였기에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의 힘을 빌리고자 했지만 뜻밖의 정보가 입수됐다. 메테르니히가 재건된 군대의 힘으로 동맹국측에 섰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기가 막혔다. 어떻게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사위의 나라 프랑스를 배반한단 말인가! 하지만 곧 그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프랑스가 평화협상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오스트리아는 동맹국편에 설 것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나폴레옹은 메트르니히를 만나기 위해서 6월 26일 드레스덴으로 갔지만 예전의 다정다감한 메트르니히의 모습 대신에 냉랭한 어조로 강화조건을 받아들이고, 오스트리아의 영토를 모두 반환할 것을 요구 받았다.

나폴레옹은 강화조건을 거부했고, 오스트리아는 동맹국의 선봉이 됐다. 1814년 봄, 동맹국과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후 나폴레옹은 지중해의 엘바섬으로 유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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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으면 방법이 보인다

나폴레옹은 심리전의 대가라고 불린다. 그러나 메테르니히가 한 수 위였다.

나폴레옹과의 만남에서 그가 이미지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을 알았고, 프랑스 변두리의 코르시카섬 출신인 나폴레옹이 유럽의 귀족과 같은 일원으로 봐주기를 간절히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동생 카롤린을 통해서 가정사도 알게 됐다.

메테르니히는 힘으로는 오스트리아가 도저히 나폴레옹의 군대를 이길 수 없으므로 황실의 보전을 위해서 나폴레옹의 신분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인 정략결혼을 제의했고, 이를 기반으로 해산된 군대도 복원을 시키면서 힘을 키웠다.

메테르니히는 프랑스 대사시절부터 나폴레옹과의 많은 만남을 통해 그의 장점과 단점, 욕망, 콤플렉스를 면밀히 연구했고, 그와 눈높이를 맞춰 유럽 정세에 대한 공감을 형성하면서 신뢰를 구축했다. ‘P.R.I 전략’으로 오스트리아 독립의 기회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CEO들이 최고경영자과정에 나가는 주요한 이유는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방과 후 뒤풀이, 취미활동 등을 통해서 친목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인간관계 형성이 잘 안 되는 주된 이유중의 하나는 상대에 대해서 잘 알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My Story의 전달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Hi-story가 중요하고, 조금만 노력하면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정보를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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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윤형돈 FT인맥관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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