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금융당국은 마케팅 비용 축소로 수수료 인하 여력을 만들라는 입장인 반면, 카드업계는 ‘더 이상의 인하는 불가능하다’고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또 최고금리 인하, 카드 대출 DSR 도입, ‘수수료 0%’ 제로페이의 등장과 가맹점의 카드 의무수납제 폐지론까지 거론되면서 카드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카드업계는 내년도 수수료 인하 규모를 1조7000억여원으로 예측한다. 초기 수수료 인하 규모는 1조원으로 알려졌지만, 이 금액에는 금융위원회가 지난 7월 발표했던 결제대행업체를 이용한 온라인 판매업자와 개인사업자에 대한 우대수수료율 적용, 소규모 신규 가맹점 수수료 환급제도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7월 발표한 정책들의 수수료율 규모까지 추산하면 인하 규모는 1조7000억원대라는 설명이다. 1조7000억원은 지난해 8개 카드사 수수료 수익 11조 6784억원 중 14.5%에 해당하는 수치다.
당국은 카드사들이 수익보다 외형 확대를 중심으로 경쟁하고 있어 무이자 할부, 할인, 캐시백 지급 등 일회성 마케팅 비용만 축소해도 수수료 인하 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지난해 일회성 마케팅비는 1조616억원으로 8개 전업계 카드사의 전체 마케팅 비용 6조724억원 중 약 17.5%에 달한다.
금융당국은 현재 카드사가 카드 회원에게 포인트, 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하면서 이와 관련된 마케팅 비용을 카드 회원이 아니라 가맹점 수수료에서 가져다 쓰는 게 문제라고 판단한다. 카드사들의 연회비 수익은 8000억여원인 것에 비해 마케팅 비용은 6조724억원이다. 최종구닫기최종구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은 “초과하는 마케팅 비용을 가맹점별로 합리적으로 배분할 필요가 있다”며 “소비자들도 이를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대형 가맹점과 소비자들이 수수료, 연회비 등 비용 부담보다 상대적으로 큰 편익을 얻고 있으며 편익에 대한 비용은 비교적 협상력이 약한 일반 가맹점에 전가되고 있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가맹점, 회원, 카드사 등이 각자 받고 있는 편익만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돼, 이번 재산정 결과 발표에서 카드 수수료 체계 전반을 손볼 것으로 예측된다.
차별화된 마케팅은 카드사의 경쟁력이다. 마케팅 비용이 줄어들면 그만큼 소비자 혜택도 줄게 된다. 카드업 관계자 C씨는 “카드사들이 마케팅 비용을 줄이게 되면 소비자들이 다른 간편결제 서비스와의 차이를 못 느껴 제로페이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무이자 할부, 문화 서비스 제공 등 다양한 회원 혜택을 이용하던 고객들은 더 이상 결제 수단으로 선호하던 카드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새로운 결제 시장에서 카드사의 입지는 좁아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제로페이는 서울시가 추진 중인 ‘소상공인 간편결제’ 시스템이다. 스마트폰으로 가맹점 QR코드를 찍으면 구매자 계좌에서 가맹점 계좌로 이체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IT산업의 발달로 과거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현금, 카드 결제를 넘어선 신 결제 기술의 등장으로 결제 시장 판 자체가 바뀌고 있다.
제로페이의 서비스 시작은 12월 중순으로 예정됐다. 연매출 8억원 이하의 가맹점 수수료가 0%여서 ‘제로페이’라 불린다. 8억~12억원 사이 가맹점은 0.3%, 12억원 초과 가맹점은 0.5% 수수료율을 적용받는다.
당초 참여 사업자에는 비씨카드와 카카오페이도 있었지만 이들이 불참을 결정하면서 제로페이 서비스 흥행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사용액의 40%를 소득공제 해주는데다 정부 주도로 수수료율 0%를 실현해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없앤다는 취지에 동참하는 소비자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카드사의 이중고로 작용할 전망이다.
◇ 최고금리 인하, DSR도입에 의무수납제 폐지 거론까지
쟁점은 이뿐만 아니다. 법정 최고금리가 올해 2월에 연 27.9%에서 연 24%로 인하됐고 내년에는 연 20%까지 내려갈 예정이다. 정부는 지난달 말부터 카드사 대출 상품인 카드론과 현금서비스에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까지 시범 도입했다. 차주 DSR 자료가 충분히 축적된 내년 상반기에는 관리지표로 본격 도입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가맹점 수수료 외의 수익도 수축하는 셈이다.
의무수납제 폐지도 거론되고 있다. 신용카드 활성화와 세원 확보를 위해 과거 정부가 도입한 의무수납제를 폐지하면 카드사 간 수수료율 경쟁이 일어 자연스럽게 수수료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의무수납제는 가맹점이 모든 카드사와 가맹계약을 맺어야 하는 시스템이다. 국내 거의 전 업체가 신용카드 가맹점으로 되어있어 소비자의 결제 선택권을 카드로 한정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카드사는 여러 악재가 겹치는 와중에 카드 결제 시장 기반을 공고히 했던 의무수납제마저 폐지되면 카드 산업 존립 자체가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투명한 세수 확보 수단이라는 카드 결제 성격과 수수료율 인하 방침과 맞물려 일단은 현행 제도 유지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유선희 기자 ysh@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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