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쉴 새 없이 기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며 급한 불을 꺼왔다는 점에서 두 국책은행장에게는 ‘합격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남은 임기 2년 간 풀어내야 할 과제물들이 산적한 가운데 이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향후 평가는 갈릴 것으로 보인다.
진보 경제학자로 꼽히는 이동걸 회장은 취임 이후 쉴틈없이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휘해오며 수많은 난관을 넘어왔다. 특히 이 회장은 ‘독자생존’이라는 구조조정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대규모 손실을 보고 있던 금호타이어는 이 회장의 원칙주의가 실질적으로 적용된 첫 사례다.
당시 이 회장은 금호타이어 중국법인이 독자생존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채권단의 지원이 없이는 금호타이어가 향후 홀로 설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에 근거해 이 회장은 금호타이어의 생존을 확실하게 뒷받침할 새 투자자를 찾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해외매각을 반대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굽히지 않았다. 금호타이어 노동조합 관계자들과 만나 더블스타 매각에 동의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설득을 이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조는 금호타이어의 해외 매각을 수용했다.
STX조선해양은 정부와 채권단이 주관하고 삼정KPMG회계법인이 실시한 산업경쟁력 컨설팅에서 생산직 노동자 500여명을 감원해야 한다는 결과를 받아들였다. 노조의 반발은 거셌다.
산은이 정한 노사확약서 제출 데드라인(2018년 4월 9일) 하루 전까지 희망퇴직 또는 아웃소싱을 신청한 인원은 144명에 불과했다. 정부가 제시한 자구책에는 한참 못 미쳤다. 그래도 이동걸 회장은 끝까지 원칙을 내세웠다.
기업의 근본적인 원가 구조 개선노력이 미흡하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은은 STX조선해양이 데드라인까지 노사확약서를 제출하지 못하자 구체적인 법정관리 신청 절차에 돌입했다. 이런 산은의 방침에 위기감을 느낀 STX조선해양 노사는 데드라인을 하루 넘기고 가까스로 타결에 성공했다. 산은은 이를 수용했고 STX조선의 구조조정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이 같은 이동걸 회장의 소신과 원칙에 따른 지난 1년의 결과물에는 전반적으로 ‘합격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 회장 앞에는 아직도 풀어내야 할 과제물들이 산적해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상선의 정상화 작업은 아직 갈길이 멀고 KDB생명 등의 자회사 매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회장은 지난 11일 취임 1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고 앞으로 해결해야할 구조조정 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내보였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회장은 산업은행이 본연의 역할을 하되 기업 구조조정은 산은 혼자만의 업무가 아닌 협력적인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한국GM, 대우조선, 현대상선 등 기업 정상화 문제와 관련해선 기업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산은에서 다른 곳으로 매각되는 것에 대해 구조조정 대상 기업 내에서 상당한 모럴 해저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산은은 대기업 지원을 줄이고 신사업 위주로 지원을 늘려가겠다고 밝혔다.
최근 한국GM의 연구개발 법인 신설 건과 관련해서 산은은 한국GM이 일방적으로 신설법인을 설립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산은은 한국GM에 신설법인의 구체적인 내용, 기대되는 효과와 목적을 이사회에 올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앞서 GM은 지난 7월 한국GM 부평공장에 약 5000만 달러를 신규 투자하고 연말까지 글로벌 제품 개발 업무를 전담할 법인 설립을 예고했다. 이에 한국GM 노조는 GM의 법인 신설 계획이 ‘법인분리를 통한 구조조정’이라며 반대 했다.
GM이 기존 단일 법인을 생산공장과 연구개발 시설의 2개 법인으로 분리할 경우, 국내 공장은 폐쇄나 매각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었다. 노조는 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주주총회에서 비토권을 행사해 글로벌 GM의 법인신설 계획을 무산시킬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매각이 무산된 대우건설과 관련해서 이 회장은 내부를 재정비해 대우건설의 몸값을 올려 매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잠재적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조급히 매각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남북 경제협력이 가시화되면 대우건설의 매력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상선 지원 문제에 대해 정부와 채권단은 5조원 규모의 자금을 향후 5년간 추가 투입하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과 일정에 관해선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회장은 산은도 수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정적으로 벌어야 안정적인 정책금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해외 금융기관과의 업무협조가 매우 중요하다”며 “금융이 네트워크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일본, 중국 등 출장을 가서 외국 금융기관들 만나서 협의하고 협력관계도 구축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은성수 한국수출입은행 행장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은 ‘국제금융전문가’다. 세계은행 시니어 이코노미스트, 기재부 국제금융정책관, 한국투자공사 사장 등을 거쳐오며 잔뼈가 굵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은 행장은 수출입은행이 수출금융, 정책금융기관으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수출입은행이 발표한 ‘비전 2030’를 보면 은 행장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비전 2030’은 2030년 여신잔액 200조원, 연간 이익 1조원, 누적이익잉여금 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수출입은행의 중장기 계획이다.
국책기관 측면에선 수출금융·대외경제협력기금·남북협력기금 등 주력분야에서 맞춤형 정책금융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기본적으로 수출신용기관으로 국내 기업의 해외수출을 돕고 국가가 조성한 기금을 관리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남북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면서 수출입은행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은 행장은 “현재 남북협력기금은 1조원 수준인데 북한의 비핵화가 전제되고 국제사회 제재가 풀리면 규모가 훨씬 커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출입은행은 오래 전부터 통일금융의 중추적 역할을 맡아왔다. 1991년 3월에는 남북한이 단일팀으로 참가하는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 체육협력사업자금 2억5700만 원을 지원했다.
수출입은행은 북한과 물자를 교류하거나 남북한 합작사업을 할 때 관련 사업자에게 자금을 대출해주는 한편 국내 사업자가 북한으로 물품을 반출한 뒤 대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대신 손실을 메꿔주는 역할도 맡았다.
2000년에는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체결한 ‘남북 간 청산결제에 관한 합의서’에서 남북 청산결제은행으로 북한의 조선무역은행과 함께 남한에서는 수출입은행이 선정되기도 했다.
2005년에는 북한대학원대학교와 ‘남북 경협에 관한 정보교류와 공동연구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남북 경협의 ‘허리’ 역할을 공고히 했다.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은 4.27 판문점 선언 후에는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타면서 지난 5월 17일 ‘제8차 남북협력 자문위원회’를 열고 남북 경협에서 수출입은행의 역할을 재점검했다. 당시 회의에서 은 행장은 “수출입은행은 남북 경협에 오랜 경험을 지닌 선도기관으로서 새로운 경협 시대에 맞는 정책과 금융을 적극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은 행장은 남북경협을 위해 조직 정비에도 힘썼다. 수출입은행은 ‘북한·동북아연구센터’를 통해 남북 경제협력과 북한·동북아 개발 국제협력 등과 관련한 전망을 내놓고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는데 최근 북한 동북아 전문가 인력을 충원하면서 정책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도 수출입은행의 북한·동북아연구센터는 특구 개발과 국제화 전략, 인프라 개발, 인도적 지원, 통일 재원, 금융 통합 등 남북 경협 활성화방안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2017 경영실적평가 ‘합격점’
한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모두 2017년 금융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에서 A등급을 맞았다. 업계는 이를 지난해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흑자 전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는 매년 금융공공기관을 상대로 경영실적평가를 실시한다. 지난 2016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B등급을 받았다.
산업은행은 지난 2014년 대규모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으로 A등급에서 C등급으로 강등됐다가 3년 만에 A등급을 회복했다. 2016년 평가에서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으나 손실이 커 B등급에 그쳤다.
산업은행은 지난 2016년 3조6411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434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로 돌아섰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도 2016년 말 14.86%에서 2017년 말에는 15.26%로 상승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금호타이어 매각과 한국GM 사태 등 굵직한 기업 구조조정 이슈를 유연하게 해결하는 데 기반을 다진 점도 등급 상승에 기여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수출입은행도 산업은행과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흑자 전환하고 BIS비율을 높인 점이 등급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2016년 조선업 부실의 영향으로 창립 후 첫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 1574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BIS비율도 2016년 10.8%에서 지난해 12.9%로 개선됐다.
금융위 경영실적평가는 정량평가 55%, 정성평가 45%로 이뤄진다. 실적과 재무 등 계량화된 수치를 바탕으로 하는 정량평가와 국가 기여도, 조직 안정화, 경영 능력 등 비계량 지표로 평가하는 정성평가를 합산해 산출한다. 정성평가 점수가 낮으면 정량평가 점수가 아무리 좋아도 등급이 낮을 수밖에 없다.
수출입은행의 경우 평가 기준이 다른 금융공공기관과 다르다. 수출입은행의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금융위가 각각 60%, 40%의 비율로 공동 평가하게 된다.
경영실적평가 결과는 ‘S-A-B-C-D-E’ 6개 등급으로 매겨지는데 직원은 S등급을 받을 경우 월봉의 200%가 성과급으로 지급되고, A등급부터 C등급까지는 각각 180%, 150%, 110%의 성과급을 받는다. 기관장의 경우 S등급은 연봉의 120%, A는 100%, B는 70%, C는 30%를 성과급으로 받는다. D등급 이하는 한 푼도 받지 못한다.
박경배 기자 pkb@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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