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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질식 처방 서민금융대책

기사입력 : 2017-01-19 18:03

(최종수정 2017-01-19 19:43)

김의석 금융부장 겸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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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 옛날 어느 임금이 신하들을 불러 모아 세상의 모든 진리를 책 한 권에 담도록 했다. 그러나 막상 책 한 권으로 줄여놓고 보니 이것도 임금에겐 너무 길었다. 열 페이지, 다섯 페이지, 한 페이지로 요약할 것을 지시하던 임금은 마침내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단 한마디로 축약하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이 가져온 정답은 다음과 같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여기서 교훈을 얻는다면 이 혼란의 탄핵정국에 좀 더 현명하게 살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모든 일엔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공짜 점심이란 있을 수 없다는 교훈 말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의 모든 문제들, 이를테면 재테크나 자녀교육,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연봉, 심지어는 궁극적인 행복, 나아가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공짜 점심은 없다는 한 가지만을 기억한다면 그다지 마음 졸일 일도, 골치 아플 일도 없다. 세상 살기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서민금융지원 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일전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에게 소위 '서민금융'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서민금융, 취지는 좋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좀 문제 있는 것 아닙니까?"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답은 이랬다. "일단 금융이란 말이 들어가면 시장기능이 살아있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위기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서민들의 삶을 정부가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말끝을 흐리는 임종룡 위원장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설을 앞두고 최근 발표된 금융당국의 서민금융지원정책은 경기 부진과 시장금리 인상으로 서민층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에 대비한 채무탕감책이라 하지만 서민들이 처한 현실을 외면한 보여주기식 처방이란 지적이 많다. 지난 16일 발표된 서민·취약계층 지원 강화 방안에는 4대 서민금융상품인 미소금융·햇살론·새희망홀씨·바꿔드림론의 문턱을 일제히 낮췄으며, 정책서민자금 공급규모도 늘렸다. 아울러 상환능력이 취약한 채무자에겐 빚 탕감 확대 방안까지 내놓았다.

이번 박근혜 정부의 채무부담 경감책은 2013년 3월, 2015년 6월, 2016년 9월에 이어 다섯 번째다. 그렇지만 지난해 금융당국이 서민금융지원 실적이 당초 목표치에 비해 초과 달성했다며 자화자찬 한지가 불과 6개월 만에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정책 실패를 자인한 것인지 묻고 싶다.

지금은 어떤 서민금융 대책이 나온다 해도 1300조원대의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6개월 마다 새로운 서민금융지원정책이 나온다면 지금 허리띠를 졸라매고 빚을 갚겠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대내외 충격에 가장 취약한 서민가계의 대출 부실화를 막는 선제적인 대책 마련도 부실하다. 그래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땜질식' 처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에서의 시장 기능이란 신용도가 좋으면 낮은 금리에, 신용도가 좋지 않으면 높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서민'이라는 정책적 판단이 개입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다. 서민금융 정책이 필요 없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몇 가지 부작용을 침소봉대해 서민금융 정책 전체를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서민 금융에도 원칙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원칙은 시장 기능이다.

일견 정부가 보증해주는 서민금융은 모두가 행복한 정책처럼 보인다. 신용이 낮은 이는 돈을 낮은 금리로 빌려서 좋고, 정부는 서민한테 인심 쓰고 표 얻어서 좋고, 금융권은 정부가 보증해주니 돈 떼일 일 없어서 좋고. 하지만 이것은 변형된 폭탄 돌리기다. 사회 전체적인 모럴 해저드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보증을 하고 나서는 순간, 돈을 빌리는 이들은 ‘당연히 안 갚아도 되는 돈’으로 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들은 ‘안 받아도 그만인 돈’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서민층 금융 지원을 늘리는 건 필요하지만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서민금융상품 중 보증부 방식인 햇살론과 바꿔드림론은 대위변제율(금융회사가 떼인 돈을 보증기관이 대신 갚아준 비율)이 각각 12%와 28%에 달한다고 한다. 한번 사회적으로 학습된 모럴 해저드는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다.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물론 서민금융지원정책은 대상이 되는 이익집단이 무수히 많고,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책의 도입과 집행, 개선은 언제나 "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만큼 서민들이 빚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정부는 이처럼 변화된 상황을 발 빠르게 서민정책에 반영하고 수립된 대책을 신속하게 집행해야만 한다. 사회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정책은 세심하면서도 선제적이며 신속해야 하기 때문이다.무엇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인식이 전체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장기적 안목으로 서민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계부채를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키우지 않으려면 정권에 따라 출렁거리지 않는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

좋은 취지의 서민금융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보다 정교한 설계는 물론 제대로 된 창구 지도가 선행돼야 한다. 모두가 행복한 정책이 아니라 모두가 불행한 정책이 되선 곤란하다. 그 부담은 다음 정권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지게 된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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