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1992

대한민국 최고 금융경제지

닫기
한국금융신문 facebook 한국금융신문 naverblog

2024.04.26(금)

[데스크 칼럼] 知言으로 흥하는 한국금융계, 꿈인가

기사입력 : 2013-09-01 23:37

  • kakao share
  • facebook share
  • telegram share
  • twitter share
  • clipboard copy
ad
ad
[데스크 칼럼] 知言으로 흥하는 한국금융계, 꿈인가
결국 조직이 탄생 다섯 돌을 넘기지도 못한 채 피흡수될 운명에 처한 정책금융공사 홀로 외롭게 저항의 깃발을 들고 있다. 공사 쪽을 편들 우호세력이 거의 없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과의 대척점에 서서 한창 다투고 있는 야당마저 거대 이슈에 묶여 눈길 돌릴 겨를이나 여력 또한 역부족이다.(그렇다고 언제 금융의 중요성에 주목한 적이 있었던가?)

일반 금융 이슈를 놓고서도 미시적 단견에 갇히기 일수였던 시민사회단체에게 기대하는 것도 넌센스다.

◇ 타당하고 빈틈 없어서가 아니라 무지에 따른 묵인방조

정부가 넉달에 걸쳐 내놓은 정책금융재편 방안은 원안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현실 정치공간 역관계를 놓고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일 뿐, 너무나 타당하고 합리적이며 빈틈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근본적 의문을 품고 보면 바둑 중계 때 자주 지적되는 ‘뒷맛’이 여러 군데 남아 있다. 정책 처방에 남는 뒷맛을 추궁하는 법은 비판적 재조정 요구가 제격이다.

금융계 일각에선 정부가 보여 준 시각과 사고의 틀이 금융패러다임 변화 역동성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기능중복 해소와 시장마찰 방지만 대원칙으로 제시된 탓이다. 금융산업을 주력산업화 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은 정부라면 당연히 민간금융과 정책금융 두 바퀴를 제대로 활용해야 할 텐데 총체적 비전을 아무리 짐작하려 해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의 소리도 들린다.

정책금융에 국한해 보아도 공사와 산은이, 수출입은행과 공사가 따로 하면 안 되는 생생한 이유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 복수가 하던 일을 특정 공기업에 몰아주는 식으로 독점권을 주는 게 더 낫다는 주장에는 그 누구도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이를 테면 “정책금융에 경쟁은 절대 안된다는 걸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닌데 출혈, 과열경쟁이나 국부유출성 외국계 기관과의 비딩을 금지하는 선에서 적정한 경쟁이 펼쳐진다면 수요자에겐 훨씬 좋은 것 아니냐?”는 반문에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들은 동문서답하듯 한다. ‘공사 스스로 자립 구조를 갖추기기 어렵다 보니 손대는 업무들이 이곳 저곳에서 산은과 수출입은행 등과 중복됐다’그러니 통합해 마땅하다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산은지주를 상장시켜 공사가 지닌 지분을 팔겠다던 민영화가 얼마나 현실성 있었는지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산은 지분을 판 돈으로 정책금융 밑천을 대거 마련하겠다던 구상이 왜 실현되지 않았는지도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았다. 원천적 책임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쏙 빼고 지엽말단적 증상에 대한 외과적 처방만 내놓는 걸로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둔사(遁辭)라는 말이 생각났다.

◇ 미래 창조? 금융산업과 실물경제 어느 쪽과도 분명치 않음이여

좀 더 따져 보자. 대내 정책금융은 산은에 대외는 수은에 집중시키면 시장실패영역에 대한 장기적 안목으로 때론 엄청난 리스크를 무릅쓰는 큰 용기(大勇)로 투자와 융자가 저절로 활성화될 수는 있을까? 이번 재편 검토 대상에 오른 공기업 거의 대부분 이른바 낙하산 CEO 관행에서 자유로운 적 없다. 언제나 정치입김을 타고 온 CEO가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채워 놓도록 한 MB정부 때의 졸속 ‘공기업선진화’정책의 결과까지 등에 업으면 단기업적주의에 쏠린 불연속적 금융중개의 남발가능성을 막을 길이 없다.

조직과 후배들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이 넘치는 내부 인사들이 제 아무리 좋은 의견을 내놓아도 CEO가 의욕과잉이면 전혀 발붙일 곳 없어질 수 있는 취약한 구조다. 임기 끝나면 그 길로 모든 인연을 털고 가도 무방한 외부 CEO가 친정부·친여당 인사가 포함된 사외이사들을 등에 업고 독재를 일삼더라도 책임과 오명은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 남아 있을 내부 간부들과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떨어진다.

이처럼 최악의 상황을 막기 어려운 지배구조 속에서 독점적 지위만을 누리도록 하는 것에는 위험성이 없는가?

정책금융협의체를 만들어 관련 부처 실무인력과 금융공기업들이 지혜와 힘을 모아 최대한의 역량결집을 꾀하는 방법은 정말 말이 안되는 것일까? 4년 전 산은이 수행하는 정책금융기능에 종말을 선고하면서 글로벌 CIB로 전환하는 대신 필요한 정책금융 역할을 공사에 맡기기로 하는 결정을 했던 정부와 여당이 지금 정부와 여당과 얼마나 다르기에. 정부 재정이나 공공기금이 내놓은 돈을 수요자에게 배정해 주던 정책금융은 이제 극히 일부분이다. 산은도 수은도 채권을 찍어 마련한 돈과 은행경영 과정에서 남은 유보재원으로 정책금융을 한다. 그런데 일부 업무가 시장마찰을 빚으니 축소하도록 했다. 시장여건에 따라 자금조달원을 다각화 할수 있도록 하는 발전방안은 헌법이 금하고 있기라도 한 걸까.

◇ 민간 금융기관에 넘길 것만 보고 그들의 공공적 책무를 방기한 꼴

소용돌이 밖에서 구경했던 사람들의 시각은 어떨까. 자본시장 한 전문가는 “일반 은행, 특히 시중은행에게 매우 긍정적인 정책”이라고 논평했다. “정책금융기관들의 공적 기능을 강화하고 일부 기능을 민간에 이양한다는 점에서 일반 은행 종목에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수은의 대기업 여신, 산은의 다이렉트 예적금 점진 축소 등의 정부가 걱정한 시장마찰 해소방침은 대부분 시중은행 수혜로 돌아갈 것이다. 시중은행에게는 ‘푼돈’ 취급받을 수준인데 줄여야 하는 쪽에선 속 쓰릴 노릇이란 점은 ‘시장마찰 방지’원칙에 짓눌렸다. 시장원리를 앞세워 공공성 책무를 곧잘 저버리곤 하는 민간 금융회사들의 역대 사례는 망각했나 보다. LG카드 사태 때 발 빼기에 급급했던 몇 몇 시중은행들, 지금도 진행 중인 구조조정 기업 관련 이슈가 나올 때 일부 시중은행의 태도를 그 새 잊었나? 평소 이익을 내기 어려운 일만 도맡아 시켜 놓고 그런 민간금융회사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금융공기업들은 손을 떼라고 배제시켜 놓았다가 금융시장 시스템 리스크가 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시장에서 조달하고 시장 영역 업무를 함께 하면서 번 돈으로 내부유보도 하고 공공적 가치를 보고 투융자 해줬다가 입은 손실을 처리해 가면서 살림을 꾸려가는 곳이 정책금융영역이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읽어 냈다면 달라질 수 있었다. 재정건전성이 악화된 정부로서는 금융공기업에 증자를 넉넉히 대어 줄 형편도 아니지 않은가.

이번 정부 1기 금융위 4대 민관합동 TF는 이상한 공통점을 나타냈다. 최선의 방안이라고 환영받지 못한 채 나름의 결론을 제시한 점, 그렇다 보니 방어논리 무장에 매우 많은 심력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는 점 두 가지다.

산은과 정책금융공사 통합 결과 BIS자기자본비율이 12%대로 떨어지건 그보다 많이 떨어지건 정말 중요한 건 검증되지 않았다. 저금리-저성장 여건 탓에 정책금융기관 수익기반이 극히 나빠진 상태에서 정책금융에만 집중하라고 옥죄기로 한 마당에 12%대 BIS비율이면 충분하다는 판단은 정말 괜찮은지 말이다. 정부 보증이 있으니까 국내든 해외든 채권은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으니 유동성 걱정은 기우일까?

민영화를 중단하지 않았고 유보해 놓은 일본의 DBJ(일본정책투자은행)는 “금융력의 미래를 디자인 합니다”라는 기업이념을 앞세운다. 창조적 금융활동으로 정책금융 과제를 해결해 고객과 신뢰를 쌓고 풍요로운 미래를 함께 실현해 가겠다는 그들의 구호는 설사 말 뿐이라도 부러운 수준이다.

업무는 물론 내부인력 의사결정 영향력을 꾸준히 축소해 놓고, 조변석개식 금융정책으로 옥죄여 있는 국내 정책금융기관들이 나라의 금융력과 우리 사회 지속가능한 미래 창출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맹자께서 공손찬과 대화하던 중 등장했던 말이 둔사다. 사전에선 피하려는 말을 둔사라 한다. 반면에 맹자께서는 지언(知言)을 강조하셨다. 사전에서는 합당한 말이란 뜻과 함께 옳고 그름을 아는 상태를 일컫는다지만 맹자께서 직접 풀이한 지언이란 둔사는 피사(피하려는 말) 사사(邪辭, 간사한 말) 등을 가려낼 수 있는 밝음을 갖춘 것이라 했다. 대한민국 금융계에 지언이 생동할 날이 오기는 와야 할 텐데 과분한 꿈으로 전락한다면 어쩌나, 안타까움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가장 핫한 경제 소식! 한국금융신문의 ‘추천뉴스’를 받아보세요~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

issue

정희윤 기자기사 더보기

전체 BEST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