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최근 글로벌 도시 연구단체인 ULI 자문 서비스 패널이 발표한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DTLA) 마스터플랜 리포트는 이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도심 위기를 타개할 가장 현실적이고도 혁신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LA 다운타운이 마주한 진단과 처방은 단순히 미국 서부의 한 도시가 겪는 국지적 사례가 아니라, 압축 성장을 거치며 오피스 중심의 단조로운 공간 구조를 고착화해 온 대한민국 대도시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거대한 거울이다.
LA 다운타운(DTLA)의 위기와 ULI 패널의 진단: 파편화와 공실의 늪
미국 제2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심장부인 DTLA는 오랫동안 캘리포니아 경제·문화의 중추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팬데믹의 충격과 원격 근무의 보편화는 이 지역에 직격탄을 날렸다.대형 오피스 빌딩들은 속속 공실이 발생했고, 야간이나 주말이면 사람이 자취를 감추는 전형적인 '도심 공동화(Urban Hollowout)' 현상이 심화되었다. 여기에 예술 지구, 패션 지구, 리틀 도쿄, 역사 지구 등 개성이 강한 수많은 상권 지구들이 각자도생식으로 쪼개져 있어, 광역 차원의 통합된 대응이나 일관된 도시 브랜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파편화된 거버넌스와 오피스 중심의 단조로운 용도 분리가 맞물린 결과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ULI 자문 패널이 내린 처방의 핵심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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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오피스 위주의 건물을 주거, 문화, 상업이 결합된 복합 용도 공간으로 과감하게 개조하는 '적응형 재사용(Adaptive Reuse)'의 전면화다. 유휴 오피스를 주거용으로 전환해 상주 인구를 대거 유입시킴으로써, 낮에만 반짝하는 곳이 아니라 24시간 자생적으로 숨 쉬는 도심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진단이다.
셋째, 치안 불안과 정비되지 않은 보행 환경을 개선하여 도심 유입을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고, 공공 공간을 문화적 자산으로 재투자하는 전략이다.
대한민국 대도시 도심의 현주소: 테헤란로와 여의도의 아킬레스건
그렇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대도시, 특히 서울의 테헤란로, 여의도, 그리고 종로·중구 도심권은 안전한가. 겉보기에는 한국의 오피스 공실률이 상대적으로 낮고 금융·IT 기업의 수요가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겉보기와는 다르다.첫째, 한국의 도심은 극단적인 '용도 분리(Zoning)'의 산물이다. 오피스 타운은 철저히 업무 기능에만 매몰되어 있어, 업무 시간이 끝나거나 주말이 되면 상권 전체가 유령도시처럼 침묵한다. 자생적인 야간 경제나 주말 보행 인구를 창출할 주거 기능이 도심 내부에 턱없이 부족하다.
둘째, 파편화된 규제와 개발 논리로 인해 도심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거버넌스가 부재하다. 지구 단위로 쪼개진 개발과 개별 건축물 단위의 인허가에 매몰되어 있어, 기후 변화, 모빌리티 전환, 인구 구조 급변이라는 거대한 거시적 파도에 대응할 광역적 마스터플랜이 작동하기 어렵다.
셋째, 고금리 장기화와 공사비 폭등으로 인해 대규모 신축 개발 프로젝트들이 동력을 잃고 있으며, 오피스 자산의 가치 재평가(Repricing) 압박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의 성장 공식에 기대어 오피스 공급만 늘려온 대도시들은 언제든 LA가 겪은 공실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잠재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LA가 던지는 교훈: 한국 대도시 도심 재생의 4대 전략적 제안
DTLA의 부활 시나리오는 한국의 대도시들이 향후 수십 년간 도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채택해야 할 구체적인 실무 지침을 제공한다. 이를 한국적 맥락에 맞춰 네 가지 차원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① 오피스 중심 도시에서 '초융합 24시간 도심'으로의 전환
한국의 주요 오피스 밀집 지역은 더 이상 '일만 하는 공간'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노후 오피스 빌딩과 저효율 상업용 건축물을 주거·문화·여가가 수직적으로 결합된 복합 용도 건축물로 전환하는 대대적인 '적응형 재사용(Adaptive Reuse)' 제도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 도심 내 상주 인구를 대폭 늘려 평일 주간에만 붐비는 공간이 아니라, 주말과 야간에도 사람이 모이고 소비가 일어나는 자생적 24시간 생태계를 구축해야 공실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② 파편화를 넘어선 '민관 합동 통합 거버넌스'의 구축
한국의 도심 정비 사업은 여전히 공공의 규제와 민간의 이익 추구가 대립하는 소모전 양상을 띠고 있다. LA가 여러 상권 지구를 하나의 연합체로 묶어 마스터플랜을 추진했듯,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는 도심 내 각기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아우르는 범도심 거버넌스를 제도화해야 한다. 공공은 인허가 간소화와 인프라 지원을 맡고, 민간 자본은 자산의 효율적 개조와 운영을 담당하는 신뢰 기반의 파트너십만이 사업의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다.
③ 보행 친화적 공공 공간의 재창조와 기후 회복력 결합
도심의 매력은 얼마나 사람이 걷고 머물고 싶어 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의 도심 가로는 여전히 차 중심이고 콘크리트 구조물에 갇혀 있다. 도심 속 유휴 부지와 공공 공간을 그늘 녹지, 공공 예술, 그리고 기후 재난(폭염·폭우)에 대응하는 스펀지형 우수 관리 시스템을 갖춘 친환경 공공 자산으로 재창조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미관 개선을 넘어 도심의 유입 인구를 늘리는 강력한 도시 마케팅 수단이 된다.
④ 단일 용도의 한계를 넘어서는 '용도 다변화'와 자산 리프라이싱
오피스 위주의 단조로운 공간 구조와 고비용 자본 환경 속에서, 과거의 과도한 레버리지에 기댄 획일적인 분양·개발 방식은 이제 생명력을 잃었다. 자산 소유주와 금융권은 수익성이 저하된 부실 오피스와 상업 시설을 단순한 만기 연장으로 묶어두는 미봉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장의 실질 가치를 반영한 냉정한 리프라이싱을 수용하는 동시에, 해당 자산을 도심형 엣지 데이터센터, 헬스케어, 임대주택 등 고부가가치 복합 용도 상품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이처럼 공간의 용도를 다변화하고 미래 수요에 부합하는 새로운 부동산 상품으로 체질을 재구축하는 것만이, 한국 도심 부동산 시장의 장기적 생존과 자산 가치를 지켜낼 유일한 해법이다.
낡은 개발의 시대를 넘어, 유연한 도심 경영으로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이 ULI의 마스터플랜을 발판 삼아 단순한 업무 지구에서 살아 숨 쉬는 복합 문화 거점으로 탈바꿈하고 있듯, 대한민국 대도시들도 이제 기로에 서 있다. 도시의 외연적 확장과 도심 오피스 위주의 성장 시대는 저물었다. 오피스 공급에만 주로 의존하던 낡은 도시계획의 틀을 과감히 깨부수고, 유연한 공간 재활용과 철저한 자본 효율성, 그리고 24시간 생동하는 복합 도심으로의 체질 개선을 이뤄내야 한다.글로벌 자본과 도시 공간을 지배하는 새로운 규칙을 냉철히 직시하고, 지금 당장 실효성 있는 공간 혁신에 착수하는 도시만이 다가올 미래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금이 바로 도심의 체질을 바꿀 골든타임이다.
최민성 칼럼니스트/델코리얼티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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