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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기억의 공간ʼ으로…서대문이 이어가는 역사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②]

기사입력 : 2026-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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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남은 독립운동의 흔적
어린이·청소년부터 군인까지 역사 현장 찾아

▲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역사공원에서 시민들이 독립문·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사진 = 주현태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역사공원에서 시민들이 독립문·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사진 = 주현태 기자
[한국금융신문 주현태 기자] [공익 콘텐츠]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협찬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서울의 지역자산은 과거의 흔적에만 머물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는 지역의 정체성이 되고, 잘 보존된 공간은 관광과 교육·일자리와 도시재생 등 새로운 지역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다. 한국금융신문은 이번 기획에서 서울 10개 자치구를 찾아간다. 지역의 유산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으며, 주민과 행정은 이를 미래의 가치로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현장에서 살펴본다. 과거를 보존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가 미래의 자산이 되는 서울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여름이 조금씩 물러나는 듯 선선한 바람이 불었지만 햇볕은 여전히 따가웠다. 반팔 차림 사이로 긴소매 옷을 입은 사람들도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지난 15일 기자가 찾은 곳은 서대문구 독립문역사공원이었다. 공영주차장에서부터 걸어가는데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문 하나가 보였다. 독립문이다. 주변에서는 킥보드를 타는 어린이들이 이리저리 움직였고, 선생님을 따라 이동하는 유치원생들과 2~8명씩 모여 이동 중인 군인들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독립문은 1897년 11월 20일 완공됐다.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자는 독립협회의 뜻에서 출발했으며, 서재필을 중심으로 모금 활동이 이뤄지고 고종의 승인을 받아 건립됐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독립문은 원래 자리에서 약간 옮겨진 모습이다. 1979년 성산대로 건설 과정에서 현재 위치로 이전됐다.

독립문을 바라보면서 한 번쯤 짚어볼 대목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독립’은 단순히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만을 담은 것이 아니다.

당시 독립문이 상징했던 것은 중국을 비롯한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국가를 세우겠다는 의지였다. 이름 그대로 ‘독립’이라는 단어에는 당시 조선이 처했던 시대적 고민과 새로운 국가를 향한 열망이 함께 담겨 있었던 셈이다.

독립문을 지나 앞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서재필 동상이 나온다. 정치인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의사였던 서재필은 독립협회와 독립신문 창간 등을 통해 근대적 여론 형성과 독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자인 나에게는 개인적으로도 조금 반가운 이름이다.

한국프레스센터에는 ‘서재필방’이라는 기자실이 있는데, 서재필의 글씨체를 활용한 표식에 ‘記’라는 글자가 함께 들어가 있다. 애용하는 기자실의 이름과 같고, 기자로서 선배 기자 한 분을 역사 현장에서 다시 만난 기분이라고 할까. 동상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혼자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감옥에서 ‘기억의 공간ʼ으로…서대문이 이어가는 역사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②]이미지 확대보기

감옥에서 ‘기억의 공간ʼ으로…서대문이 이어가는 역사 [지역 역사 보존·미래 가치로 발전 ②]이미지 확대보기
그 옆에는 유관순 열사의 동상도 자리하고 있다. 독립문을 지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공원의 밝은 분위기는 조금씩 사라졌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과 높은 담장이 눈앞에 들어오면서 공간의 온도가 달라지는 듯했다. 방금 전까지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고 뛰어다니던 장소에서 이제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과 사건을 마주하게 된 셈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고 고초를 겪었던 옛 서대문형무소의 시설 일부를 보존해 역사교육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의 역사는 1908년 경성감옥에서 시작됐다. 이후 수감자가 늘면서 시설과 명칭이 바뀌었고, 1923년 서대문형무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는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만해 한용운, 강우규, 유관순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탄압을 받았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전시관을 따라 걸으면 책이나 교과서에서 이름으로만 접했던 인물들의 삶이 조금씩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됐던 옥사와 고문과 관련된 전시물, 수감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 등을 차례로 지나자 3·1절, 광복절에 흔히 들을 수 있는 독립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단순히 가벼히 들을 수 없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특히 지하 전시공간은 분위기가 무거웠다. 독립운동가들의 의지를 꺾기 위해 사용됐던 고문 관련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고, 좁은 공간을 따라 이동할수록 당시 수감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상상하게 했다.

독립운동가의 투쟁활동이 이곳에서는 전혀 다르게 읽혔다. 그 말은 누군가에게는 감옥에 갇히는 일이었고, 고문을 견디는 일이었으며, 가족과 생이별하는 일이었다. 때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가장 무겁게 보여주는 곳이 사형장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북서쪽 구석에 위치한 사형장은 높은 붉은 벽돌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와 철저하게 분리된 상태였다.

현장을 살펴보면 당시 사형 집행은 교수형으로 이뤄졌다. 사형수가 의자에 앉으면 집행자가 뒤에서 레버를 당기고, 바닥이 열리면서 형이 집행되는 방식이다.

글로 읽을 때는 한 줄이면 끝나는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 공간에 서면 그 한 줄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좁은 건물 안에 서서 당시 상황을 떠올리다 보면 독립운동이 얼마나 큰 결심을 필요로 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형장을 빠져나와 시구문이 있던 공간으로 향했다. 그 앞에 서자 한여름의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누군가에게 이곳은 마지막 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아픔 기억의 장소였을 터. 책이나 사진으로만 접했던 역사적 사실을 실제 공간에서 마주하면 같은 내용도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어두운 내부 공간은 여전히 슬픔의 무게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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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의미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그대로 보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1988년 남아 있는 옥사와 사형장 등이 사적 제324호로 지정된 이후 역사적 공간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현재는 시민들이 이곳을 찾아 역사를 배우고 체험하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서대문구는 이 공간을 다양한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다. 3·1절과 광복절 등 주요 기념일에는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가 마련되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역사교육도 이어진다.

역사를 ‘전시’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시민들이 직접 공간을 경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날 현장에서 눈길을 끈 것도 이런 모습이었다.

옥사 안에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만든 독립운동 관련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오래된 감옥 안에 아이들의 작품이 놓이면서 묘한 대비가 만들어졌다.

한쪽에는 수십 년 전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흔적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지금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시선이 담기면서, 다수의 옥사를 오갔다. 과거와 현재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장면으로, 기자가 해당 장소를 찾았던 이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서대문구민 구모씨(41·여)도 비슷한 이유로 다시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구씨는 “최근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됐던 여옥사를 자세히 보기 위해 다시 찾았다”며 “지난달에도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미리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혼자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9살 아들과 6살 딸을 키우고 있는데, 이곳에 수감돼 고초를 겪었던 분들을 계속 만나고 기억하면서 우리 역사를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런 역사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정확한 역사를 전해주고 싶어 공부하고 있다”며 “다음에는 아이들과 함께 다시 찾아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유독 눈에 많이 띄는 사람들이 있었다. 군인들이었다. 체감상 방문객 10명 가운데 9명이 군인으로 보일 정도로 단체 방문이 이어졌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기자는 결국 군인 아저씨 두 명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방문 이유를 묻자 해당 주간이 집중정신교육 기간이어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아 현장견학을 진행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역사관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우고 퀴즈 등을 통해 교육 내용을 확인하는 방식인데, 만점을 받으면 1일 포상휴가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역사를 배우러 왔는데 포상휴가라는 현실적인 보상까지 걸려 있으니, 기자 입장에서는 꽤 솔깃한 동기부여였다.

두 군인 역시 처음부터 역사적 의미만 생각하고 이곳을 찾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설명했다. 다만 김모 병장과 정모 일병은 실제 현장을 둘러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독립운동가들이 고초를 겪었던 공간을 직접 보고 나니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라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사형장을 둘러볼 때는 자연스럽게 부대원들 사이에서 말수가 줄었다고 했다. 웃고 떠들며 들어왔던 공간에서 어느 순간 모두가 조용해졌고, ‘왜 우리가 군인으로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포상휴가라는 작은 동기가 역사 현장으로 이끄는 출발점이 됐지만, 결국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휴가가 아니라 우리가 누리고 있는 오늘의 의미였던 셈이다.

기자도 취재를 잘하면 포상휴가를 주는 제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이날 취재를 마치고 하루 휴가까지 받았다면, 어쩌면 기자도 4시간째 쓰고 있는 지금보다 조금 더 글이 잘 써졌을지 모를 일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은 시민들의 반응에서도 이 공간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여행을 위해 오고, 누군가는 교육을 위해 오고, 누군가는 아이에게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다시 찾는다. 같은 공간이지만 방문 목적은 제각각이다.

기자에게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직접 마주했던 기억 중 하나는 중국 상하이에서였다. 상하이 마당로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공간을 찾았을 때 임시정부가 활동했던 당시의 흔적과 자료를 마주할 수 있었다. 책과 사진, 문서 등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이 타국에서 임시정부를 꾸리고 독립을 위해 활동했던 시간을 엿볼 수 있었다.

이어 홍커우공원을 찾아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을 둘러봤을 때는 또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곳에는 당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들이 마련돼 있었고, 영상과 글, 사진 등을 통해 그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

특히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자료와 처형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전시물을 바라보면서 윤봉길 의사에게는 일상마저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상황이었던 점이 안타깝고 감사했던 생각이 들었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았다. 누군가는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했으며, 누군가는 목숨까지 잃었다. 그들의 희생과 수많은 이들의 노력은 결국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범한 일상이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둘러보고 나오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붉은 벽돌 담장을 뒤로하고 다시 독립문역사공원 쪽으로 걸어 나오자 아까 보았던 아이들이 여전히 공원 주변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버스정류장 근처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누군가는 킥보드를 타고 누군가는 부모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어둡고 무거운 감옥의 역사를 보고 나온 뒤라 그런지 그 평범한 풍경이 오히려 더 특별하다.

이곳의 역사를 보존하고 시민들이 그 의미를 기억할 수 있도록 묵묵히 공간을 지켜온 서대문구 관계자들과 오늘은 이끌어가는 박운기 서대문구청장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앞으로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단순히 과거를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미래세대가 다시 역사를 마주하는 상징이 되기를 기대한다.

주현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gun131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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