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다룬 책이 꽂혀 있는 서가에는 방법론이 넘쳐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델파이 기법을 배우고, 시나리오 플래닝을 익히고, 로드맵 양식을 외워도 정작 책상 앞에 앉으면 손이 멈춘다. 이론과 실무 사이 간극을 메워줄 안내서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갈증을 해소해줄 책이 출간돼 관심을 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임현 선임연구위원이 쓴 『미래를 설계하는 기술기획』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론에만 밝은 학자를 넘어 과학기술 현장에서 이론과 함께 예산과 전략을 다뤄온 실무 전문가로 사례가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기술기획이나 전략기획 실무에 발을 디디려는 이는 물론 기술예측, 방법론을 정리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확대보기하나의 사례로 처음부터 끝까지
기존 기술기획 서적의 가장 큰 약점은 '파편화'였다. 방법론은 방법론대로, 산업별 사례는 사례대로 따로 놀았다. 환경분석에서 얻은 결과물이 시나리오 작성 단계에서 어떻게 재료가 되고, 그 시나리오가 다시 기술로드맵으로 어떻게 압축되는지, 그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책은 많지 않았다. 학습자들은 각 단계의 개념은 익혀도 실제로 이어 붙이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하지만 이 책은 완전히 다른 길을 택했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 2035'라는 단 하나의 일관된 사례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간다. 환경분석으로 시작해 시나리오를 쓰고, 마지막에 기술로드맵을 완성하기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스토리라인으로 엮은 것이다. 책을 읽는 독자는 여러 가지 다른 사례를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이해할 필요가 없다. 하나의 구체적인 산업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기획의 전체적인 흐름을 통째로 체득할 수 있다.
이론과 실무를 잇는 7단계 프로세스
이 책의 뼈대는 AI 시대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기술기획 7단계 프로세스다.기술예측과 기술로드맵의 이론적 토대를 다진 뒤에 현장에서 곧바로 꺼내서 쓸 수 있는 실무 매뉴얼까지 단계별로 쌓아 올린다. 이론과 실무를 별개의 장으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프로세스 안에 녹여낸 구성이 독특하다. 처음 기술기획·전략기획 업무를 맡은 실무자라면 이 7단계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실전적인 업무 감각을 잡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년 현장경험 응축한 실전 노하우
저자의 이력은 그 자체로 이 책의 신뢰도를 뒷받침한다. 국가 단위 기술예측을 총괄하고 글로벌 기업 컨설팅도 고루해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한 권의 책에 모두 쏟아 넣었기 때문이다.이 책은 조직의 규모와 목적에 맞춰서 유연하게 변형할 수 있는 실전 템플릿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돋보인다. 정부기관이든 대기업이든, 이제 막 전략기획팀을 꾸린 스타트업이든, 어떤 조직에서도 처한 상황에 맞게 뜯어 쓸 수 있게 설계됐다.
전문가들도 호평한다.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AI가 방대한 분석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전략적 판단과 집단적 숙의, 합의 형성의 가치가 오히려 커진다며 이 책의 문제의식과 전개를 칭찬했다. 이흥권 로운인사이트 대표는 이 책의 실전 템플릿과 정교한 프로세스가 실무자의 기획을 전략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고 평가했다. 나준호 LG경영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저자의 20년 기술예측 경험에서 우러난 노하우가 책 곳곳에 촘촘히 보석처럼 박혀 있다며 실전 활용성을 높이 쳤다.
이미지 확대보기기획하려는 모두가 읽어볼만
이 책은 네 부류의 독자를 타깃으로 한다. 기술기획·전략기획 업무를 막 시작한 실무자, 기술예측과 로드맵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연구자, 조직에 맞는 실전 템플릿이 필요한 기업·정부기관 담당자, AI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인간의 전략적 판단력을 기르고 싶은 모든 이들이다. 한마디로 집약하면 기획을 해보려는 모든 이들이 한번쯤 집어들 만하다는 얘기다.지금은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시대다. 미래를 예측하고 전략을 설계하는 역량은 이제 특정 부서만의 과제가 아니다. 어쩌면 조직 전체의 생존을 가르는 조건이다. AI가 데이터를 대신 훑어주는 시대일수록, 그 데이터를 해석하고 합의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몫은 오히려 무거워진다. 『미래를 설계하는 기술기획』은 그런 의미에서 그 무거운 몫을 짊어진 모든 이들에게 이론이 아닌 손에 쥘 수 있는 지도를 건네고 있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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