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KB증권과 NH투자증권은 압도적인 딜 소싱과 세일즈 역량으로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 발행사들이 시장 변동성에 대비해 자금 조달 안정성이 검증된 ‘빅하우스’로 몰리면서 대표주관 수임 물량의 상위사 집중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량 딜 쏠림…상위사 과점 구조 심화
본지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바탕으로 분석한 ‘2026년 1월 공모 회사채 발행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공모채 시장에서는 총 27개 발행사가 8조 3210억 원의 물량을 쏟아냈다. 그러나 대표주관 실적(트랜치별 발행금액 균등 배분 기준, 자본성증권 제외)을 살펴보면 SK증권과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의 성과는 대형사 그룹(A군) 내에서 하위권에 머물렀다.지난해 SK그룹 계열사 발행 물량을 기반으로 5위권을 유지했던 SK증권은 1월 한 달간 총 5건, 2833억 원의 주관 실적에 그쳤다. 이는 업계 1위 KB증권(1조 9267억 원)의 약 7분의 1에 불과한 수준으로, 대형사 중 최하위인 10위까지 떨어졌다. SK가스 등의 딜에 대표주관사로 참여했으나 작년과 같은 물량 확보 동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초대형 IB(투자은행) 타이틀을 보유한 삼성증권(4167억 원, 5건)과 미래에셋증권(3328억 원, 8건)도 부진한 실적을 보이며 8위와 9위에 그쳤다. 이는 자기자본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대신증권(5050억 원, 5위)이나 하나증권(4942억 원, 6위)보다도 뒤처진 결과다. 우량 발행사들의 대규모 자금 조달이 줄을 잇는 환경 속에서도 이들 하우스가 주관사단 선정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것은, 선제적인 영업력과 발행사 맞춤형 전략 제시에서 뚜렷한 한계를 드러낸 결과다.
반면 KB증권과 NH투자증권(1조 3922억 원), 한국투자증권(1조 308억 원) 등 소위 ‘빅3’가 1월 한 달간 주관한 금액은 총 4조 3497억 원으로, 점유율은 52.3%에 달했다. 회사채 대표주관 실적의 절반 이상이 이들 상위사에 집중된 셈이다.
KB증권은 단일 하우스 기준 2조 원에 육박하는 물량을 확보하며 압도적인 1강 체제를 굳혔다. KB증권은 1월 한 달간 29건, 총 1조 9267억 원의 주관 실적을 쌓으며 2위와의 격차를 5000억 원 이상 벌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5000억 원) · LG유플러스(5000억 원) · 현대제철(5000억 원) 등 시장의 주목을 받은 대형 딜에서도 KB증권이 대표주관사로 이름을 올렸다. NH투자증권(1조 3922억 원, 19건)과 한국투자증권(1조 308억 원, 24건)도 나란히 1조 원 이상의 실적을 기록하며 시장 내 입지를 다졌다.
이미지 확대보기중소형사 그룹인 B군에서는 메리츠증권과 한화투자증권 등이 상대적으로 선전했으나 상위권과의 자본력 및 대형 딜 소화 역량 격차를 좁히지는 못했다. 특히 5000억 원 이상 대형 딜(총 2조 8000억 원 규모)의 상당 부분이 상위 3사에게 집중되면서, 실적 부진 증권사들은 중소 규모 딜 위주의 포트폴리오에 머무는 구조가 이어졌다.
이 같은 주관 실적 쏠림은 발행사들의 ‘안전 지향’ 성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1월 발행된 회사채의 82.3%인 6조 8510억 원이 차환 목적이었고, 대부분이 AA등급 이상의 우량채였다. 대규모 차환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발행사로서는 미매각 리스크 대응 역량이 검증된 선두권 주관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 과정에서 미래에셋증권과 SK증권 등은 우량 딜 수임 경쟁에서 뒤처지며 입지가 약화됐다.
유동성의 금융화... 주관사 실적, 'K-자형' 격차 심화
1월 채권시장은 기준금리 인하 지연 우려와 함께 시중 유동자금이 증시 등 위험자산으로 분산 이동하면서, 주 초반 국고채 3년물 및 10년물 금리가 전고점을 경신하는 등 투자 심리가 다소 위축된 상태였다. 하지만 시장 내 투자 자금이 완전히 마른 것은 아니었다.키움증권은 최근 거시경제 분석 보고서에서 현재 한국 경제는 유동성이 실물 경제보다 금융시장에 머무는 ‘유동성의 금융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계와 기업의 통화량(M2) 증가율은 둔화되는 반면, 증권사와 보험사 등 기타 금융기관의 M2 증가율은 12월 기준 전년 동월 대비 12.3%까지 확대되며 금융시장 내 대기성 자금이 급증하고 있다.
이는 시중에 풀린 자금이 설비 투자나 생산 확대 등 실질 경제 활동으로 이어지기보다 주식 · 채권 등 금융자산 시장 안에서 머무는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더라도 신규 투자보다는 기존 부채를 상환하는 차환 목적에 활용되는 사례가 늘면서, 통화 증가가 곧바로 성장 확대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확대된 금융 유동성은 주관사 간 ‘K-자형’ 실적 격차를 벌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상위사 실적은 가파르게 오르는 반면 하위사는 반대로 미끄러지는 양극화 구도다. 유동성이 풍부한 환경일수록 대형 발행사들은 단순한 수수료 경쟁력보다 기관투자자 자금을 안정적으로 유인할 수 있는 검증된 주관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 결과 상위사는 풍부한 대기 자금을 바탕으로 대형 딜을 원활히 소화하며 실적을 확대한 반면, 자본력이나 영업력이 뒤처진 일부 증권사는 기관 자금 선점에 실패하며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평가다.
연초 격차, 연간 판도의 분수령 되나
금융투자업계에서는 1월의 실적 격차가 올 한 해 DCM 시장의 판도를 결정짓는 ‘예고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연초 우량 딜 수임 경쟁에서 밀린 주관사는 연간 실적 목표 달성을 위해 무리한 영업에 나설 가능성이 크고, 이는 장기적으로 수익성 관리와 시장 신뢰 측면에서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1월 한 달간 6조 원이 넘는 우량 차환 물량이 쏟아지는 우호적 환경에서도 점유율 확보에 실패했다는 것은 주관사로서의 딜 소싱 역량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실적이 부진한 주관사가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관계 영업을 넘어, 발행사에게 실질적인 조달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 2월 이후 금리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국면에서 이들 증권사가 향후 어떤 전략적 대응으로 반전을 모색할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용어 설명] 'M2' 통화량이란?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등 즉시 결제가 가능한 자금(M1)에 정기예금·적금·MMF 등 단기 금융상품을 포함한 통화 개념으로,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대표적 유동성 지표다. M2 증가율은 시중 유동성 규모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로 활용된다.
두경우 한국금융신문 전문위원 kwd1227@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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