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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5(월)

자산 버블의 팽창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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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버블의 팽창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이미지 확대보기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는 일본 자산 버블의 형성 조건으로 미래에 대한 과도한 낙관적 기대와 신용 및 대출의 급격한 확대를 지적하였다.

아울러 버블을 증폭시킨 요인으로는 (1) 장기간 지속된 완화적 통화정책, (2) 금융과 실물경제 간의 경기순응적(pro-cyclical) 상호작용, (3) 부동산 가격 상승을 가속화한 조세제도를 제시하였다. 이밖에 일본 은행들의 대차대조표의 구조적 특이성이 자산 가격 상승과 신용 팽창 간의 상호 피드백 메커니즘을 유발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여기에 기업과 가계의 재테크 열풍이 결합하면서 버블 확대가 한층 가속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버블을 증폭시킨 요인을 논의하기에 앞서 은행 대출이 어떤 경로를 통해 확대되었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은행의 대출 재원 측면에서 점진적인 금융규제 완화는 대출 여력을 크게 확충하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1985년 거액예금 금리 자유화는 은행 예금의 급격한 증가를 초래하였다. 아울러 은행들은 양도성 예금증서(CD), 금융채 발행, 유로시장을 통한 외화표시 채권 발행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금 조달을 한층 확대하였다.

대출 수요 측면에서 대기업의 차입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은행은 대기업 대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 마진이 압박을 받았다. 자본시장을 통한 대기업의 자금 조달이 크게 확대되자, 은행은 이를 단기간에 대체할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우에다 카즈오 현 일본은행 총재는 도쿄대학 재직 시절 이러한 대출 환경 변화 속에서 은행들이 신용 모니터링 비용이 적은 대출 기회를 모색하게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결과 대형은행들은 가치 평가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것으로 보였던 토지를 보유한 중소기업과 가계를 대상으로 담보대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채택하였으며 이를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부동산·건설·비은행 금융기관 부문으로 대출을 집중시켰다.

자산 버블의 형성과 금융·실물 부문 간 경기순응적 상호작용은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전개된다.

첫 번째로 부동산 및 주식 가격의 상승은 자산 효과(wealth effect)를 매개로 소비를 증대시키고 이러한 소비 증가가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림으로써 다시 자산 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순환적 메커니즘을 형성한다.

두 번째 경로는 주가 상승을 통한 메커니즘이다. 주가가 오르면 자본 비용이 낮아져 기업 투자가 늘어나고 이는 총수요와 현금흐름 개선을 통해 다시 주가를 끌어올리는 피드백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주가 상승은 자기자본의 확충을 통해 부채비율을 낮추고 차입 비용을 줄임으로써 기업의 추가 차입과 투자 확대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과정은 벤 버냉키가 ‘금융가속기(financial accelerator)’라고 지칭한 메커니즘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부동산 담보대출이 늘어나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다른 대출의 수익성까지 높여 은행은 대출을 더 공격적으로 늘리게 된다. 대출 확대에 따른 총수요 증가로 차입자의 재무 상태와 담보가치가 개선되면서 은행은 대출을 추가로 확대하려는 유인을 가지게 되며, 이러한 과정은 순환적 피드백을 한층 강화한다.

일본 은행들의 대차대조표 구조의 특이성 또한 자산가격 상승과 신용 확대가 상호작용하며 증폭되는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우선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한 부동산 담보대출을 확대함에 따라 부동산 가격 상승은 담보가치의 상승을 통해 추가 대출 확대를 가능하게 했다. 이와 함께 주가 상승은 은행의 자기자본을 증대시키고 보유 주식에서 발생한 미실현 자본이익을 통해 보완자본을 확대함으로써 대출 능력 확충에 기여했다.

일본 은행들의 경우 보유 주식의 장부가와 시가 간 차이에서 발생한 미실현 자본이익은 사실상 잠재적 준비금으로 기능했다. 동시에 은행이 보유한 대규모 주식 포트폴리오는 주가 변동이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증폭시켰다. 일본 금융당국은 이러한 미실현 자본이익의 45%를 보완자본으로 인정하도록 허용하였으며 그 결과 상당한 미실현 이익이 BIS 자기자본비율을 충족시키는 데 기여하였고 나아가 은행의 대출 확대와 자산 확장의 기반으로 활용되었다.

1990년 3월 이전까지는 은행 보유 주식의 시가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히토츠바시 대학 경제연구소 후카오 미츠히로의 추정에 따르면 1989년 3월 말 기준 은행 부문의 주식 보유액은 장부가로 약 23.2조 엔이었으나 시가로 환산할 경우 약 97.2조 엔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는 은행 부문 전체 총자산 1,300조 엔의 약 7.5%에 해당해 보유 주식의 미실현 자본이익까지 반영하면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은행들은 보유 주식의 가치 상승을 바탕으로 부동산 담보 대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산 버블의 팽창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금 증가와 자기자본비율 상승으로 대형은행들은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소규모 기업이나 부동산 관련 기업, 그리고 주택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주센과 같은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렸다. 즉 은행이 보유한 주식 가격의 상승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담보가치 상승과 결합하여 대출 확대 효과를 한층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1989 회계연도 말 기준으로 은행 부문의 부동산 관련 대출 잔액은 총대출의 12.3%에 해당하는 49조 엔으로 1985 회계연도 말 25조 엔에 비해 거의 두 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동시에 여신전문회사, 리스사, 7개의 주센 등 비은행 금융기관들의 부동산 관련 대출은 더욱 가파른 속도로 확대되어 1985 회계연도 말 22조 엔에서 연평균 37% 이상 증가하며 1989 회계연도 말에는 80조 엔에 도달했다. 일본 재무성의 조사에 따르면 300개 대형 비은행 금융기관의 1991년 9월 말 기준 총대출에서 63%가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이 차지하고 있었다. 아울러 은행의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잔액은 1985 회계연도 말 20조 엔에서 연평균 38%의 속도로 증가하여 1989 회계연도 말에는 42조 엔에 이르렀다.

한편 1980년대 후반 비금융 대기업들은 은행 대출, 주식 발행, 주가연동채권, 기업어음(CP) 등 다양한 금융 수단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조달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조달 비용과 다양한 자금 조달 수단을 활용한 기업들은 이러한 자금을 본업에 투입하기보다 주식 및 부동산 투자에 치중하며 차익을 노리는 재테크에 몰두했고 이는 자산 버블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 기업들의 재테크 투기가 본격화된 시점은 1979년 일본 기업들이 역외시장인 런던 유로본드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이후라고 한다. 1981년 일본 재무성은 금융자유화 조치의 일환으로 기업들이 유로본드 시장에서 신주인수권부 회사채(BW)를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환경 속에서 매우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었다.

또한 엔화 강세를 활용해 외화표시 채무를 스왑시장에서 엔화표시 채무로 전환한 뒤 이를 국내로 들여와 주식 등에 투자함으로써 운용 수익을 얻고 만기에는 환차익까지 실현하는 구조를 활용하였다. 1980년대 후반 이러한 기업들의 재테크 규모는 도쿄 주식시장 활황과 맞물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주가 상승은 다시 기업들의 재테크 확대를 촉진하는 순환적 고리를 형성했다.

물론 1980년대 후반 일본 기업들이 조달한 자금이 모두 재테크에 투입된 것은 아니었다. 신주인수권부 회사채 발행 등으로 확보한 자금의 상당 부분은 생산설비 투자에 사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역사상 유례없는 설비투자 붐이 형성되었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일본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연평균 10% 이상 증가하였고 특히 1988년에서 1990년 사이에는 연평균 15%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설비투자는 당시 일본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며 경제성장에 30~40% 수준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과도한 설비투자는 버블 붕괴 이후 생산시설 과잉 문제를 초래하게 되었다.

비금융 기업과 마찬가지로 개인들도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여 금융자산에 투자하였다. 개인들은 은행, 신협, 소비자금융회사 등 민간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였으며 신규 대출 규모는 1985년 5조 엔에서 1989년 29조 엔으로 약 6배 증가했다. 조달된 자금은 주로 시장금리 연동형 정기예금과 생명보험 상품으로 유입되었다.

모든 경제주체들의 차입이 급증함에 따라 일본의 레버리지는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유례없이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일본의 가계와 비금융 기업의 부채는 1986년에서 1989년까지 매년 GDP 대비 약 10%씩 증가하여 GDP의 2배에 달하였다. 이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 이전 민간부채가 매년 GDP 대비 약 5% 수준으로 증가했던 것과 비교할 때 1980년대 일본의 민간부채의 증가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기간 지속된 일본의 완화적 통화정책은 자산 버블의 팽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통화정책 완화가 자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로 통화 완화는 차입 비용을 낮춤으로써 투기자들의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하고 그 결과 투기적 자금 흐름을 촉진하였다. 둘째로 통화 완화에 따른 주가 상승은 주식 발행이나 전환사채(CB) 등 주가연동채권 발행을 통한 기업의 자금 조달 확대를 가능하게 하였다. 셋째로 지가와 주가의 상승은 토지와 주식을 다량 보유한 기업의 담보가치를 높여 차입 능력을 강화하였고 이는 대출 확대를 유도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였다. 이와 같은 세 가지 경로가 버블 기간 동안 실제로 기능한 것은 사실이나 장기적 통화 완화만으로 버블의 팽창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장기적 통화 완화는 버블 형성의 필요조건이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이후 엔/달러 환율은 244 엔에서 1986년 8월 153 엔으로 급락하며 엔화가 단기간에 급속도로 강세를 보였다. 엔화의 급격한 강세에 따라 1986년 초부터 일본의 수출은 가파르게 위축되고 성장률도 하락함에 따라 일본 정부는 팽창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에 대한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압력에 대응하여 일본은행은 기준금리인 공정할인율을 1986년 4차례 그리고 1987년 2월 1차례 인하하여 5%에서 2.5%로 대폭 낮추었다. 이후 2.5%의 공정할인율은 환율 안정과 국제정책 공조의 목적으로 1989년 5월까지 유지되었다.

1987년 2월 루브르 합의 이후 엔화 환율은 달러당 150~160 엔 사이에서 안정세를 보였다. 이와 같은 일본은행의 통화 완화 기조 하에서 광의의 통화(M2+CD)와 은행 대출은 크게 확대되었으며 명목 GDP 대비 M2+CD 비율은 1985년 말 0.85에서 1989년 말 1.2로 그리고 은행대출 비율은 0.65에서 1.21로 각각 상승했다.

이처럼 통화 공급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자산 가격이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이 통화정책을 긴축기조로 전환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산 버블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논거는 긴축 없이는 인플레이션이 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 일본은 플라자 합의에 따른 엔화 강세와 원유 가격 급락 등으로 물가 상승률이 매우 낮게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다고 한다.

일본은행의 오키나, 시라카와, 시라츠카 등에 따르면 버블 기간 동안 일본은행은 통화정책 수행에 있어 몇 가지 상호연관된 제약에 직면했다고 한다. 첫째로 당시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은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에 따른 국제정책공조로 인해 상당한 제약을 받았다.

국제정책공조의 핵심은 두 가지로 미 달러화의 과도한 강세를 방지하기 위한 외환시장 협조 개입과 거시경제정책의 공조였다. 거시경제정책 공조에서는 경상수지 흑자국인 일본과 서독이 내수 확대를 위한 정책을 운용하는 반면 경상수지 적자국인 미국은 재정적자 축소를 강화하는 구조였다. 이러한 국제 공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이 완화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로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의 지나친 강세를 억제하고 환율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일본은행은 금리 인하에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제약을 안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동산 보유와 관련해서는 낮은 보유세율과 높은 자본이득 세율이 그리고 주식과 관련해서는 은행과 기업 간 상호출자가 가격 상승폭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부동산의 보유세율은 낮은 반면 양도차익에 대한 세율이 높을 경우 소유자는 매각보다 보유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결과 시장에 매물이 부족해지고 이는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며 다시 매물 부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특히 지가 상승이 예상되는 시점에는 토지 보유 인센티브가 더욱 강화되어 가격 상승을 가속화시키는 효과가 나타난다.

한편 일본 주식시장의 높은 변동성의 원인 중 하나는 기업과 은행이 상호출자를 통해 상당한 규모의 주식을 장기 보유함으로써 실제로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 수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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