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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경제의 생명줄: 재무성의 정책 실패와 1997~98년 신용경색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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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경제의 생명줄: 재무성의 정책 실패와 1997~98년 신용경색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이미지 확대보기
1997년 11월 산요증권의 채무불이행은 일본 금융시스템의 근간인 신용 체계를 뒤흔든 결정적 도화선이었다. 가장 안전한 영역으로 간주되던 단기자금 시장에서 디폴트가 발생하자 금융기관 간 상호 신뢰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는 곧 홋카이도 타쿠쇼쿠은행과 야마이치증권의 연쇄 파산으로 이어지며 일본 경제는 금융 시스템 붕괴라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다.

위기를 심화시킨 근본 원인은 개별 기관의 파산보다 정책 당국의 치명적인 판단 착오에 있었다. 당시 재무성은 당면한 사태를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결함이 아닌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으로 과소평가했다. 버블 붕괴 이후 누적된 부실채권 문제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회복되면 문제가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론에 안주한 것이었다.

이러한 안이한 인식은 '시간 벌기식 관용 정책'이라는 미봉책에 의존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부실을 키우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당국은 선제적인 자본 확충이나 부실 기관의 과감한 정리 같은 근본 처방 대신 단기 자금 공급을 통한 단기적인 임기응변식 대응에 치중했다. 산요증권 사태가 금융권 전체의 신뢰 붕괴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를 묵살한 결과 부실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었고 결국 시장의 마지막 신뢰마저 무너뜨리는 파국을 초래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우량 금융기관이 부실 기관을 인수하게 하여 시스템을 보존하는 이른바 ‘호송선단 방식’을 고집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소규모 기관의 정리에나 유효했을 뿐 대형 기관의 연쇄 파산을 처리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기댄 이 처방은 위기가 심화된 국면에서 부실을 전이시키고 건전한 기관까지 동반 부실화함으로써 사태를 한층 악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간 금융권의 자율적 조정 능력이 고갈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재무성은 과거의 호송선단식 해법에 집착했다. 특히 홋카이도 타쿠쇼쿠은행이 붕괴 직전에 몰릴 때까지 우량 은행을 상대로 인수 압박을 가하는 등 구태의연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구조 개혁의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정리되지 않은 부실이 금융시스템 내부에 고착되며 잠재적 폭발력을 축적해 나갔다.

정책적 실책은 금융감독 기능의 마비로 이어졌다. 대표적 사례인 홋카이도 타쿠쇼쿠은행은 파산 직전까지도 높은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했으나 이는 부실을 감추기 위한 허수에 불과했다. 당국이 야마이치증권의 부실 자산을 부정하게 처리하는 ‘토바시’ 관행을 묵인하면서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고 사전에 교정할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이러한 감독 실패는 금융시장의 정보 신뢰도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렸다. 공시 지표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되자 시장 내 정보 불균형이 급격히 심화되었다. 개별 기관의 재무 상태를 평가할 객관적 기준이 상실되면서 시장의 불안감은 시스템 전반의 불신으로 급격히 확산되었다.

이처럼 상호 신뢰가 완전히 상실된 상황에서 시장 참여자들은 각자도생을 선택했다. 예금자들의 뱅크런이 이어졌고 금융기관들 역시 상호 불신으로 인해 단기 자금 시장인 콜시장에서의 거래를 중단했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공포를 넘어 정보의 불확실성이 팽배한 환경에서 형성된 합리적 생존 전략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금융권의 혈맥인 자금 순환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금융기관 사이의 신용 공급이 중단되자 자금 중개라는 본연의 기능은 마비되었고 그 충격은 즉각 실물경제로 전이되었다. 생존을 위해 현금 확보에 급급해진 은행들이 대출을 대폭 축소하는 ‘신용 경색(Credit Crunch)’ 현상이 나타나면서 건실한 기업들조차 심각한 자금난에 직면했다. 결국 감독 실패로 촉발된 정보의 불확실성이 금융 불안을 심화시켰고 이것이 다시 실물경제의 침체를 부추기는 치명적인 악순환이 형성되었다.

노무라연구소의 리처드 쿠와 사사키 마사야는 당시의 신용 위축을 통상적인 경기 순환 차원의 충격이 아니라 특정 시점부터 고착화된 구조적 과정으로 해석했다. 이들은 단순한 경기 지표의 등락을 관찰하는 차원을 넘어 일본 경제가 직면했던 ‘대차대조표 불황’의 특수성에 주목하며 금융 시스템의 마비가 장기 침체의 근본 원인으로 고착화되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특히 이들은 1997년 11월 금융기관의 연쇄 파산을 기점으로 은행 대출 증가율이 급격히 둔화하며 본격적인 신용 수축 국면에 진입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대출 급감은 같은 해 4월 하시모토 내각의 재정 긴축으로 이미 하향 곡선을 그리던 GDP 성장률을 더욱 가파르게 끌어내리는 결정타가 되었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결국 금융 시스템의 신뢰 붕괴와 정책 당국의 대응 실기가 맞물리면서 신용 흐름의 구조적 위축과 경기 하강을 가속화했다는 것이 이들의 핵심 주장이다.

다만 당시 대출 둔화의 실질적 원인이 은행의 공급 축소에 있는지 혹은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의 수요 감소에 있는지는 양자를 단정적으로 분리하여 규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경기 침체는 기업의 투자 의지를 꺾어 차입 수요를 줄이는 동시에 은행의 위험 회피 성향을 강화해 대출 문턱을 높이는 이중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요와 공급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상호 작용하는 상황에서는 단순한 통계 수치만으로 명확한 인과관계를 분리해내기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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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교의 벤저민 프리드만은 당시 일본 경제가 자산 가격 폭락, 금융 규제 변화, 대외 경제 충격 등 복합적인 외부 요인에 동시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외부 요인들까지 은행의 대출 행태와 실물경제 양측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두 변수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규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은행 신용이 GDP를 변화시켰는지 혹은 경기 변동이 신용 행태를 바꿨는지를 계량적으로 명확히 검증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따른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식별의 어려움 속에서도 신용 위축의 성격을 가늠할 만한 설득력 있는 정황 증거는 존재한다. 대표적인 지표가 일본은행 단칸(Tankan) 조사의 ‘은행 대출 태도 지수((Diffusion Index, DI)’다. 기업들이 체감하는 은행의 대출 태도는 1997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악화되어 1998년 초에는 -30 수준까지 폭락했다. 이는 단칸 조사 역사상 유례없는 변동으로 경기 요인에 의한 수요 감소를 넘어 은행들이 공급 측면에서 대출에 극도로 소극적인 태도로 바뀌었음을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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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가 이토록 급락한 것은 단순한 경기 둔화에 따른 점진적 대출 심사 강화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은행의 신용 중개 기능 자체가 구조적으로 마비되었다는 신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당시 은행들은 신규 대출을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대출금까지 회수하는 강도 높은 자금 회수에 나섰다. 그 결과 건실한 기업들까지 예기치 못한 자금난에 직면했다. 이러한 흐름은 당시의 신용 위축이 실물경제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보다는 금융 부문의 기능 장애에서 비롯된 공급 측 충격의 성격이 강했음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충격은 중소기업 부문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났다. 단칸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대출 태도는 1998~1999년경 조사 이래 가장 긴축적인 수준으로 악화되었으며 중소기업의 재무 상태 또한 1997년 이후 급격히 취약해졌다. 신용 경색의 파고가 모든 기업에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고 외부 자금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에 집중되는 비대칭적 양상을 보인 것이다.

민간 신용의 급격한 수축이 가져온 충격은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넘어 실물경제 전반으로 전이되었다. 자본 조달의 길이 막힌 중소기업들은 고용 조정과 투자 축소를 통해 생존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중소기업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이들의 신용 위축은 노동시장 경색과 내수 침체를 심화시키는 결정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신용이 급격히 수축되자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동시에 꺾였고 이는 곧 성장률의 가파른 하락으로 이어졌다. 자본시장 접근성이 낮은 중소기업에 타격이 집중된 현상은 신용경색의 충격이 기업 규모나 재무 상태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나는 ‘신용 경로(Credit Channel)’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당시 일본의 경기 침체는 단순한 소비 위축을 넘어 금융권의 대출 억제가 실물경제의 하락을 가속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즉 전반적인 수요 감소에 금융시스템의 기능 마비가 결합되면서 일시적 불황을 넘어 장기적이고 깊은 침체 국면에 진입한 것이다.

실물 경기의 위축은 다시 금융 시스템을 훼손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기업의 수익성과 상환 능력이 저하되자 은행의 자산 건전성은 더욱 악화되었고 이는 다시 추가적인 대출 축소로 이어져 실물경제 부문을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과 실물경제가 서로를 끌어내리는 ‘금융 가속기(Financial Accelerator)’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금융 불안이 실물경제를 침체시키고 실물경제 악화가 다시 부실채권을 누증시키며 금융권을 흔드는 양방향의 악순환이 형성되면서 불황은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었다.

하지만 당시 정책 당국은 금융과 실물경제의 상호 피드백이 위기를 증폭시키는 가속 메커니즘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실 정리와 자본 확충의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면서 금융 본연의 기능이 도리어 퇴보하게 되었으며 이는 일시적 유동성 문제를 넘어 장기적인 구조적 결함으로 고착되었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정책 대응이 시스템의 기능 회복보다 단기적 안정이나 정치적 논리에 치우칠 경우 경기 회복 경로가 어떻게 장기적인 저성장 기조로 고착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은 일본 특유의 금융 구조 탓에 더욱 심화되었다. 은행 중심의 자금 조달 체계와 부동산 담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자산 가격 하락을 개별 차입자의 문제를 넘어 금융시스템 전체를 압박하는 ‘대차대조표 쇼크(Balance-sheet Shock)’로 변질시켰다. 담보 가치 하락은 가계와 기업의 추가 자금 조달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은행의 자기자본비율까지 위협했고 이는 다시 대출 축소로 이어져 자산 가격과 실물경제를 동시에 억누르는 경로로 작동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본의 경기 침체는 이례적으로 장기화되었다. 자산 가치가 붕괴되자 은행들은 수익성 악화와 조달 비용 상승에 직면했고 생존을 위해 자기자본비율 유지에만 사활을 걸었다. 실물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공급을 늘리기보다 자산을 줄여 부채를 갚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개별 기관의 대응은 국가 전체의 신용 공급 정상화를 가로막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범했다. 결국 금융 가속기는 침체 국면에서 위기를 심화시키는 침체 국면에서 강력한 하강 모멘텀(Downside Momentum)으로 작용하며 신용경색을 고착화시켰고 일본 경제는 실물과 금융 부문이 상호 작용하며 위기를 증폭시킨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sheet Recession)’의 전형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장기간 이어진 신용경색은 단순한 경기 후퇴를 넘어 디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켰다. 소비, 투자, 고용이 상호 작용하며 서로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자 총수요 회복의 길마저 차단되었다. 이런 점에서 1997년 11월의 금융 위기는 일본 경제가 일시적 조정을 지나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의 터널로 본격 진입한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신용경색의 심각성이 가시화된 이후에도 정부의 초기 대응은 안일했다. 1998년 3월 은행권의 연쇄 붕괴를 막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했으나 규모와 운용 메커니즘 측면에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정상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는 위기의 확산을 일시적으로 늦추는 미봉책에 그쳤으며 금융 불안과 신용 수축이라는 구조적 난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

신용경색의 여파가 중소기업 부문으로 급속히 확산되며 위기감이 고조되자 정부는 직접적인 개입에 착수했다. 1998년 10월 도입된 ‘소기업 특별 신용보증 제도’는 은행이 대출을 회수하는 상황에서 민간의 신용 위험을 정부가 전적으로 보증함으로써 소기업에 자금이 공급되도록 만든 긴급 유동성 공급 장치였다. 당초 20조 엔 규모로 시작된 이 제도는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30조 엔까지 확대되었고 운용 기간도 연장되었다.

2001년까지 약 29조 엔에 달하는 대출이 이 제도를 통해 집행되었는데 이는 훗날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했으나 금융 기능이 마비된 국면에서 소기업의 연쇄 도산을 막는 핵심적인 완충장치 역할을 수행했다. 노무라연구소의 리처드 쿠와 사사키 마사야는 두 차례의 자본 투입과 특별 보증 제도가 맞물린 1999년 3월에 이르러서야 신용경색이 비로소 완화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 확보와 경제 전체의 신용 회복이 얼마나 상충되는 과제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개별 은행이 자기자본비율을 준수하기 위해 대출을 회수하는 행위는 각자에게는 합리적인 생존 전략일지 모르나 거시적으로는 자산 가격 하락과 경기 악화를 심화시켜 시스템 전체를 다시 위태롭게 만드는 '구성의 오류'의 역설을 낳기 때문이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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