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에서 온 23세 아리나 씨 얼굴 가득히 기대와 설렘이 피어났다. 앞치마를 두른 아리나 씨는 조리대 앞에 놓인 한국의 식재료와 조미료, 소스 등을 보면서 흥미롭다는 듯 옅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코를 킁킁거리며 새우젓이나 매실청 등의 냄새를 맡기도 했고, 손으로 찍어가며 고춧가루나 양파즙 등을 맛보기도 했다.
인사동은 한국식 전통과 현대식 유행이 흐르는 곳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 중 하나다. 인사동 한복판에 들어선 ‘뮤지엄 김치 간’ 역시 김치를 주제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았다. 이곳에서는 김치의 유래, 종류, 김장 도구 및 유물 등이 한눈에 읽힌다. 박물관을 단순 감상용이 아닌 디지털 콘텐츠를 결합한 체험용 전시로 꾸몄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크게 김치 탄생을 다룬 ‘김치 마당’과 김치 유산균을 소개해주는 ‘과학자의 방’, 옛 부뚜막처럼 공간을 구현한 ‘김치 사랑방’ 등으로 나뉘었다. 전시실마다 스크린이 걸려있으며, 직접 손으로 누르면 김치 관련 다양한 영상이 흘러나온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도 지원된다. 지난해 약 3만6000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찾았으며, 그중 47%인 1만7000명이 외국인 관광객이다. 2001년부터 2024년까지 누적 관람객은 140만 명을 돌파했다.

강사는 조리에 앞서 간략하게 김치의 역사와 종류, 재료 등을 영어로 설명했다. 이후 강사의 진행과 함께 재료를 다듬고 썰면서 김치의 외형을 갖춰 나갔다. 특히 다진 마늘과 생강, 고춧가루, 새우젓 등을 배합해 김치 소스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외국인 참가자들이 웃음기를 쏙 빼고, 신중한 얼굴로 각자의 입맛에 따라 소스를 배합했다. 그러면서도 서툰 솜씨로 고춧가루를 배추와 무, 쪽파 등에 버무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성스러웠다. 한국에서는 고된 노동과 비용 부담으로 김장 문화가 차츰 사라지고 있지만, 외국인들의 눈에는 그저 신기하면서도 배워가고 싶은 하나의 놀이처럼 비친 듯했다.
닭이 없으면 알이 없듯, 김장이 없으면 김치도 없다. 김장을 연례 명절 행사처럼 여기는 지금의 문화가 어쩌면 김치를 멀리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온 가족이 끙끙대며 다량의 김치를 만드는 것이 아닌, 이처럼 필요할 때 놀이하듯 간단히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김장은 여전히 가장 큰 숙제이자 부담이다. 외국인들을 통해서 김장도 새롭게 정의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체험 중에 외국인들은 스스로 간을 보거나 손질을 하는 등 대단한 열의를 보였다. 또한, 본인이 만든 김치와 다른 사람이 만든 김치를 직접 비교해가며 맛을 평가하기도 했다. 김장이 만든 한국식 ‘정(情)’ 문화가 그들 틈에 스며들었다.
김장 체험은 ‘뮤지엄 김치 간’ 휴관일인 매주 월요일과 신정, 설·추석 명절, 성탄절을 제외하고 하루 평균 2회씩 진행된다. 풀무원은 올해 이를 확대, 장애인과 시니어 대상 ‘김치 학교’도 운영한다. 또한 김장을 접하기 어려운 어린이나 MZ세대를 위한 내국인 전용 맞춤형 프로그램을 열 계획이다.
김장 체험을 마친 아리나 씨는 “김치 종류가 배추김치뿐으로 알았는데, 이렇게 다양한 김치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며 “우리 어머니에게도 한국에 가서 김장을 배워봤으면 좋겠다고 권유할 생각”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손원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tellme@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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