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 창업주 고(故) 임성기 전 회장의 차남인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의 의결권 행사 가부가 향후 경영권 분쟁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3라운드로 접어든 '집안싸움'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 만큼 이달 19일 열릴 한미약품 임시 주주총회가 이번 한미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OCI 통합, 내홍의 시작
시작은 모녀와 형제 간 싸움이었다. 경영권 분쟁은 지난 1월 12일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그의 딸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과 함께 OCI그룹과 통합 합의 계약서를 체결하면서 촉발됐다. 송 회장은 신약 연구개발(R&D) 자금력 확보와 상속세 재원 마련을 목적으로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당시 고 임성기 선대 회장이 별세하면서 송 회장 등 한미그룹 오너 일가가 내야 하는 상속세는 5400억 원 규모였다.
송 회장의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는 이후 1월 17일 모녀의 결정에 반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OCI홀딩스가 통합 지주사로서 한미그룹 경영권을 장악할 것이라고 본 거다. 통합 지주회사의 예상 지분율은 ▲임주현 10.4% ▲이우현 5.87% ▲이화영 6.64% ▲이복영 6.61% 등이었다.
형제와 모녀 측은 3월 정기 주총을 앞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형제 측은 본인을 포함한 추천 인사를 이사로 선임해달라는 주주제안을 냈다.
송 회장과는 더 이상 특수관계가 아니라며 보유 지분 특별관계도 해소했다. 송 회장은 형제를 사장직(한미사이언스 임종윤 사장·한미약품 임종훈 사장)에서 해임하는가 하면, 그 다음 날엔 임주현 사장을 공식 후계자로 지정해 그룹 경영 총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신 회장 덕을 본 형제(46%)는 우호지분이 당초보다 늘면서 모녀(42%)를 앞설 수 있었다. 일부 지분을 갖고 있던 오너가 친인척이 막판에 형제 측 손을 들어 준 것도 한몫했다.
'키맨' 신동국 회장의 변심, 진흙탕 싸움으로
주총 이후 한미사이언스가 임종훈 대표 체제로 구축되면서 내홍도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신동국 회장의 변심이 갈등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7월 3일 그가 돌연 모녀 측을 지지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거다. 업계는 형제가 승리한 후 회사 주가가 떨어지자 신 회장이 모녀 측으로 돌아섰다고 보고 있다.
신 회장은 이날 모녀 측의 한미사이언스 지분 6.5%를 매수하는 주식매매계약과 공동의결권 행사 약정 계약을 체결했다. 모녀와 신회장은 '3자연합'이라는 이름으로 형제 측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구도가 바뀌면서 양측 갈등도 점차 격화됐다. 이사회 정원을 각자 유리하게 구성하기 위해 약 한 달 간격으로 두 건의 임시 주총을 소집했고, 수위 높은 비난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헐뜯었다.
한미사이언스는 3자연합에 "묵묵히 일하는 임직원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꼬집으며 "회사 주인이 신동국 회장으로 바뀌고, 한미약품 경영은 허수아비 전문경영인이 이들의 지시를 수행하는 파행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고 맹비난했다.
한미약품도 "형제들의 막가파식 경영에 소액주주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며 "두 아들이 어머니를 상대로 이런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참담한 심정"이라고 받아쳤다.
특히 11월엔 고소전을 이어가며 불화는 최고조에 달했다. 한미사이언스가 15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업무방해와 배임 및 횡령 혐의로 3자연합 측 인사들을 고발했다. 한미약품도 26일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며 임종훈 대표를 업무방해로 고소했다.
19일 한미약품 3라운드 결과, '41.4% 위법성'에 달려
지난달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에서 치러진 두 번째 경영권 분쟁은 무승부로 끝났다. 정관 변경은 부결됐지만, 신동국 회장 이사 선임은 가결됐다. 이사회 구성이 5대 5 동률이 되면서 경영권 분쟁 장기화도 불가피해졌다.양측 모두 반쪽짜리 승리에 그쳐 오는 19일 열리는 한미약품 임시 주총에서 3라운드를 겨루게 됐다.
이번 주총엔 모녀 측 이사 2인(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해임의 건, 형제 측인 박준석 한미사이언스 부사장과 장영길 한미정밀화학 대표를 이사로 선임하는 건이 논의된다. 상법상 이사 선임은 참석 주주 과반 찬성으로 가능하고, 이사 해임은 특별결의요건으로 출석주주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당초엔 형제 측이 승리할 거란 관측이 우세했다. 한미사이언스가 가진 한미약품 지분이 41.4%에 달해서다. 2대주주는 약 10%의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다.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의 절대적 주주인 점을 들며 국민연금, 소액주주와 충분한 소통을 통해 무리없이 안건을 통과시킬 거란 확신을 갖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에선 중립을 지킨 바 있다.
형제가 승기를 잡으면서 2년 이상 갈등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모녀 측 이사진들의 임기가 끝날 때까진 분쟁이 지속될 거란 관측이다.
내년 3월엔 모녀 측 인사 3명의 이사진 임기가 만료되고, 2026년 3월엔 송영숙 회장의 임기도 만료된다. 임 대표의 임기는 2027년 3월까지다.
이에 임종훈 대표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 결과와 상관없이 2027년까지는 나를 중심으로 경영체제가 지속된다"며 "늦어도 2026년 3월엔 완전한 경영권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하지만 최근 모녀 측이 새로운 변수 하나를 만들었다. 임종훈 대표의 의결권 행사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 모녀 측은 지난 3일 임종훈 대표가 임시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임 대표가 지난 8개월간 지주사 대표란 지위를 이용,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를 근거 없이 전무로 강등시키고 형제 측 지지자를 고위 임원으로 위법하게 채용하는 등 사적 이익을 위해 경영권을 행사했단 주장이다.
결국 한미약품에 대한 한미사이언스의 41.41% 의결권 행사의 위법 여부에 따라 경영권 향방이 갈리게 됐다.
모녀 측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임시 주총에서 승리할 거라 확신하는 분위기다. 모녀 측 관계자는 "이사회 결의도 없이 마음대로 대표를 전무로 강등시키는 건 위법"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형제 측은 임 대표의 의결권 행사는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한미사이언스 측은 "이미 지난 10월 송영숙 이사의 요청으로 한미약품 이사 개임의 필요성과 한미약품 임시 주총 소집 청구 철회 여부에 대해 논의을 완료했다"며 "임 대표의 의결권 행사는 법적 흠결이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는 사이 모녀 측은 우호지분을 보태줄 백기사를 착실히 모으고 있었다.
앞서 모녀 측은 지난달 18일 라데팡스의 특수목적법인인 킬링턴 유한회사와 주식 매매 계약과 의결권 공동행사 합의를 맺었다.
신 회장에 이어 또 한번 주식 일부(3.7%)를 넘겨 두 번째 백기사를 얻은 셈이다. 킬링턴은 모녀 지분 외에도 가현문화재단 주식 1.94%를 매입했다. 또 임종훈 대표가 상속제 재원 마련을 위해 처분한 105만 주(1.54%) 중 약 90%인 95만 주를 사들여 지분율을 5.09%까지 끌어올렸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형제 측이 버티곤 있지만 사실 상속세 재원 마련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모녀처럼 백기사도 없고, 돈도 부족해 지분 확보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한국금융신문 기자 steami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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