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는 11일 회계기준위원회가 가상 자산 회계 처리와 관련한 안내 방향을 논의했다. 아울러 가상 자산 관련 필수 공시사항을 추가하는 내용의 기업회계기준서 제1001호 ‘재무제표 표시’ 개정 공개 초안도 심의·의결했다.
가상 자산 관련 법적 지위 확립
이번에 금융당국이 마련한 가상 자산 회계 처리 기준이 의미 있는 이유는 가상 자산 관련 법적 지위가 확립됐다는 점이다. 회계적 판단 시 경제적 측면 외에도 법률적 소유권 등이 고려돼야 하는데 그동안엔 가상 자산 관련 법적 지위가 없었다.
한국회계기준원(원장 이한상)을 비롯해 주요 회계법인과 학계 등 회계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가상 자산 관련 회계 쟁점 논의를 지속해왔다. 올해엔 금융위, 금융감독원(원장 이복현닫기이복현기사 모아보기)까지 합세했다. 연말엔 ‘가상 자산 주석공시 모범사례 및 감사 절차 가이드라인(Giude-line·안내 지침서)’에 관해서도 관계 기관 합동 세미나(Seminar·연수회)를 열어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
이는 국제회계기준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당국은 시장 회계 불확실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제 재무 보고 기준(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제정 속도가 가상 자산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지난달 30일 ‘가상 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국제회계기준과 상충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규제안이 나올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은 현재 독자적 회계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가상 자산 사업자의 고객 위탁 가상 자산 회계 처리 지침을 내놓거나 가상 자산 보유자에 대한 회계 처리 기준 공개 초안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회계 처리 지침을 공표 중이다.
이에 반해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International Accounting Standars Board)는 가상 자산 관련 회계 처리 기준 제정에 비교적 미온적이다. 지난해 마련한 향후 5개년 업무계획 수립에 있어 가상 자산 거래 관련 내용은 제외했었다.
최근 블록체인(Blockchain·분산원장) 기술 기반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는 상황도 회계기준 마련 필요성을 부추겼다. 블록체인 매개체인 토큰 등 가상 자산 거래가 활발해지는데 명확한 회계 처리 지침은 없었기 때문이다. 회계정보 이용자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못하는 상황을 개선해야 했다.
발행자, 발행 의무 완료하면 매각 대가도 수익
가상 자산 관련 회계·공시 투명성 제고를 위한 방안은 크게 ‘가상 자산 관련 거래별 회계 처리에 대한 감독지침’과 ‘가상 자산 거래에 대한 주석공시를 의무화하는 회계 기준서 개정’ 등 2가지로 구성된다. 금융위는 회계 처리 감독지침 적용 범위의 경우, 가상 자산 이용자 보호법 제2조의 가상 자산 정의를 준용하되 자본시장법이 적용되는 토큰 증권도 포함하기로 했다.
우선 가상 자산 발행자는 앞으로 판매 목적이라면 가상 자산 보유자에 대한 의무를 모두 완료한 뒤 가상 자산 매각 대가를 수익으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수행 의무를 명확히 파악하고, 그 의무 성격과 범위를 고려해 수익 인식 시기를 판단해야 한다.
의무 완료 전 회사가 받은 대가는 모두 부채로 잡힌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발행사에 부여된 의무 범위를 사후적으로 임의 변경하지 않아야 한다. 부채로 인식한 매각 대가의 수익 인식 시점을 앞당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는 수익 기준서 ‘K-IFRS 제1115호’를 적용한 조치다.
현재 국내 상장사 중 가상 자산 발행자는 △카카오(대표 홍은택닫기홍은택기사 모아보기) △위메이드(대표 장현국) △넷마블(대표 권영식·도기욱) △네오위즈홀딩스(대표 김상욱) △다날(대표 박상만) 등이 있다. 이들이 지난해 말까지 유상 매각한 가상 자산 규모는 7980억원에 달한다. 유상 매각 후 수익을 인식한 금액은 3건으로, 총 1126억원이다.
기존엔 회사가 발행한 가상 자산을 고객에게 매각할 때 금전 대가를 즉시 수익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가 불분명한 측면이 있었다. 수행 의무를 식별해 수익 인식 시기를 결정하는데, 구체적 지침이 없다 보니 수익 인식 시점에 대한 판단 기준이 발행 주체마다 달랐다. 또한 회사와 감사인이 다른 의견을 표출하는 사례도 있었다.
두 번째는 비용에 관한 회계기준이다.
이제 가상 자산 발행자는 가상 자산과 그 플랫폼 개발 과정에서 지출된 원가의 경우, 가상 자산 및 플랫폼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할 수 없거나 관련 개발 활동이 무형자산 기준서 ‘K-IFRS 제1038호’에서 규정한 개발 활동에 해당한다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발생 시 비용으로 회계 처리해야 한다.
만약 회계 기준상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 무형자산으로 인식할 때는 본질적 가치 손상 여부에 대해 매년 회계연도마다 검토해야 한다. 발행사가 발행 후 자체 유보(Reserve)한 가상 자산은 가상 자산과 직접 관련되는 원가가 있는 극히 예외 경우를 제외하고는 취득원가가 없는 만큼 재무제표에 자산으로 계상하면 안 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상장사가 발행 후 유상 매각이나 무상 배포 등 유통하지 않은 내부유보 물량은 254억개로, 발행물량 총 310억개 대비 81.7% 수준이다.
다음은 가상 자산 보유자의 경우다. 가상 자산 보유자는 투자 목적 등으로 가상 자산을 보유한 상장회사를 의미한다.
그간 IFRS 해석위원회는 가상 자산 ‘보유자’에 대해 판매 목적 여부에 따라 무형자산 또는 재고자산으로만 분류했다. 이에 따라 가상 자산이 자본시장법상 토큰 증권에 해당한다면 금융자산·부채 분류가 허용되는지 의문이 있었다.
앞으론 토큰 증권이 금융상품 기준서 ‘K-IFRS 제1032호’에 해당하는 금융상품 정의 충족 시 금융자산·부채로 분류하고, 관련 기준서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가상 자산 사업자, 즉 가상 자산 거래소에 관한 내용이다.
가상 자산 사업자가 고객 위탁 가상 자산을 보유하는 경우, 사업자의 재무제표에 자산·부채로 인식하는 데 고려 요소가 명확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이제는 가상 자산에 대한 경제적 통제권을 고려해 자산·부채를 인식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다만, 국제동향 등을 감안해 고객에 대한 법적 재산권 보호 수준 등을 경제적 통제권 판단 때 고려토록 한다.
가령 해킹사고 발생 시 고객이 위탁 가상 자산에 대한 법적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거나 사업자가 위탁 가상 자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명시적·암묵적 권리가 있는 경우엔 사업자의 자산·부채로 인식할지 따져야 한다. 경제적 통제권은 가상 자산 사용을 지시하고, 가치 상승 등 효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현재 일본은 가상 자산의 재산적 가치와 사업자 법적 지위 등을 교정한 자금 결제 법을 2016년 개정해 사업자가 자산·부채로 인식할 수 있게 회계 처리 기준을 제정한 상태다.
유럽은 유럽 재무 보고 자문위원회(EFRAG·European Financial Reporting Advisory Group)가 지난 2020년 7월 가상 자산 회계기준 토론서를 발표했는데, 여기에 고객 위탁 가상 자산의 경제적 통제 판단 지표가 제시돼 있다.
미국은 사업자의 보호 의무와 법적 모호성에 따른 유의적 위험을 고려해 증권 거래 위원회(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가 위탁 가상 자산 관련 의무를 부채 및 자산으로 인식하도록 올해 지침을 내렸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5대 거래소의 자체 보유자산은 3710억원이다. 전년 대비 59%(5330억원) 줄었다. 같은 기간 위탁 보유자산은 65.6%(34조9491억원) 감소한 18조3067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5대 거래소는 ▲업비트(Upbit·두나무 대표 이석우닫기이석우기사 모아보기) ▲빗썸(Bithumb‧빗썸 코리아 대표 이재원닫기이재원기사 모아보기) ▲코인원(Coinone·대표 차명훈) ▲코빗(Korbit·대표 오세진) ▲고팍스(GOPAX·스트리미 대표 이중훈) 등이다.
가상 자산 사업자에게 부과되는 의무는 하나 더 있다. 활성시장, 공정가치 등의 개념에 대한 구체적 조건을 사례와 함께 충실히 제공해야 한다. 회사와 감사인이 재무제표 작성과 감사 절차 수행 시 참고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활성시장 요건은 지속·충분한 빈도와 규모로 거래되면서 신뢰성 높은 법정화폐로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공정가치는 ‘접근이 가능한 주된 시장’ 또는 ‘가장 유리한 시장’에서 시장 참여자 사이 ‘정상 거래’ 기준을 용어별로 가상 자산 거래와 관련지어 구체화해야 한다.
가상 자산이 다양한 상황에서 공정가치로 측정돼야 하는데, 공정가치 측정에 있어 구체적으로 회사나 감사인의 통일된 기준·절차가 없어 단순히 기준서만으로 실무적으로 적용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감안한 조치다.
가상 자산 보유 정보·물량 등 ‘주석공시 의무화’
금융위는 가상 자산 보유 정보나 물량 등에 대한 ‘주석공시 의무화’도 추진한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 ‘DART’에 준하는 형태의 충분하고 검증된 정보를 재무제표 주석 형태로 기록해야 하는 것이다.
발행자는 해당 가상 자산의 수량과 특성, 이를 활용한 사업모형 등 일반 정보를 상세히 기재해야 한다. 가상 자산 매각 대가에 대한 수익 인식 등 회계정책과 수익 인식을 위한 의무 이행 경과에 관한 회사 판단까지 적시하는 것 역시 필수다. 특히 가상 자산 발행 이후 자체 유보한 가상 자산 보유 정보와 물량을 포함한 사용 내역까지 공시해야 한다.
그동안에는 가상 자산 관련 일부 정보가 백서(White-paper)에 공시됐었다. 이에 따라 공시 정확성과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는 문제가 존재했다. 또한 해당 가상 자산 개발·발행 회사의 재무제표와 관련 있는 정보임에도 이를 주석에 기재하지 않은 경우, 정보이용자가 그 내용을 알기 어려웠다.
다음 가상 자산 보유자 내용이다.
앞으론 회계정보 이용자들이 가상 자산에 투자한 회사가 받게 될 영향을 충실히 파악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제공이 의무화된다. 가상 자산 보유자는 가상 자산 분류 기준에 대한 회계정책, 회사가 재무제표에 인식한 장부금액 및 물량 등 시장가치 정보를 기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상 자산 사업자다.
기존엔 가상 자산 사업자가 상당한 규모를 보유 중인 고객 위탁 가상 자산에 대해 회계기준 미비로 인해 충분한 정보가 공시되지 않았다.
앞으론 자산·부채로 인식하는지와 관계없이 보유한 고객 위탁 가상 자산 물량과 시장가치 등의 정보를 가상자산별로 공시해야 한다. 가상 자산 보유에 따른 해킹 등 물리적 위험과 예방을 위한 보호 수준 등에 대한 정보도 같이 제공해야 한다.
금융위는 외부 감사인이 가상 자산을 보유·개발·발행한 회사에 대한 회계감사 시 참고할 수 있는 감사 절차 가이드라인도 마련·배포할 예정이다.
앞으로 약 2개월에 걸쳐 상장사, 가상 자산 사업자, 회계법인 등 이해관계자별로 각각 한차례 이상 설명회를 열어 의견을 청취하려 한다. 의견수렴 결과를 바탕으로 감독지침 및 기준 개정안을 확정한다. 공표·시행은 회계제도 심의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 심의·의결이 끝난 10~11월 중 추진할 계획이다.
회계 처리 감독지침은 공표 즉시 시행된다. 주석공시 의무화는 내년 1월 1일 이후 최초 개시되는 사업연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조기 적용도 가능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앞으로는 가상 자산 회계 처리가 명확해지고 주석공시도 강화되는 만큼 회계정보 이용자 입장에서 기업 간 비교가 가능해진다”며 “신뢰성 있는 유용한 정보가 충실히 제공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와 외부감사인 간 회계기준 해석과 관련한 이견도 상당수 줄어드는 등 양측의 불확실성 또한 모두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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