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수장들은 리스크 관리에 온 힘을 기울이면서도 토큰증권(STO, Security Token Offering) 등 새로운 상품을 아우르는 금융플랫폼을 선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터널을 넘어 글로벌 딜소싱(투자처 발굴)도 정조준하고 있다. 특히 저평가 우량자산 투자 기회 확대를 엿보고 있다는 적극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금융권(증권·자산운용·은행·생명보험·손해보험·카드·캐피탈·저축은행) 총 68개사, 69명 CEO가 답변한 이번 한국금융신문 설문조사에서 증권업계의 경우 15개사 사령탑이 응답했다.
확장보다 내실 경영…디지털혁신 주목
이번 설문조사는 2023년 1월 25일~2월 8일 실시됐다. 전체 금융업권 공통 질문 5개 문항은 객관식 익명 답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먼저 1번 ‘2023년 한국 경기 전망’에 대해 응답한 증권사 사령탑의 절반 이상이 ‘상반기 침체, 하반기 반등’(53.3%)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2번 ‘2023년 경기침체 우려를 높이는 가장 위협적인 불확실성 요인’에 대한 응답의 경우 ‘산업/기업 경기 악화(예: 투자, 수출, 소비 부진 따른 실적악화 우려 등)’(33.3%)가 가장 높았다. 이어 ‘부동산 경기’와 ‘금리 불확실성이 각각 26.7%로 추격했다.
역시 2개 선택지에 응답한 4번 ‘2023년 가장 주목하는 신성장 동력 키워드’에 대해서 증권사 대표들은 1위로 ‘금융플랫폼, 종합금융서비스’(40%)를 뽑았다.
이어 연관된 ‘자산관리’(26.7%)가 2위를 차지했다. ‘슈퍼 리치’ 고액자산가 대상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는 물론, 특히 대중(mass)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자산관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 상속/증여, 신탁업 비즈니스 확장 등도 포함된다.
이 밖에 ‘데이터 비즈니스’와 ‘AI(인공지능)’이 각각 10%, 그리고 ‘친환경’(6.7%) 순이었다.
5번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우선으로 해결돼야 할 점’에 대한 질문에 증권사 CEO들의 60%가 ‘규제 완화’에 한 목소리를 냈다. 비합리적 규제를 해소하고, 포괄주의 방식의 유연한 네거티브(negative)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았다. ‘내/외부 제휴 및 협업’(20%)도 ‘새 먹거리’를 위한 핵심 키워드로 지목했다.
저평가 우량자산 찾아라…투자 선택폭 확대
15개사 증권사 CEO 가운데 개별 업권 별 주관식 5개 문항 질문에 대해 6개사 사령탑들이 기명으로 상세 답변을 했다. 우선 1번으로 ‘2023년 증권업 기상도를 어떻게 보십니까?’라는 업황 전망 질문에 대해 흐린 가운데서도 기회를 엿보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최현만닫기최현만기사 모아보기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회장은 “금리 상승률은 둔화되겠지만 경기침체 우려, 미중 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지정학적 위험이 잔존하여 시장 불확실성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다만 최현만 회장은 “이미 예측된 위험이라는 측면에서 관리가 가능하고 동시에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특히 작년 한 해 자산가격 하락으로 저평가된 우량자산이 많아 투자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주식·채권 운용에서 수익 확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각자대표로 자산관리(WM), 세일즈앤드트레이딩(S&T), 경영관리 부문을 담당하는 박정림닫기박정림기사 모아보기 KB증권 대표이사 사장은 “주식, 채권 동반 부진은 다소 나아지며 투자 기회는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변화 속에서 나타날 다양한 수익 기회를 면밀하게 살피고 포착하는 노력을 병행한다면, 우호적이지 않은 경영 환경 속에서도 반등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정영채닫기정영채기사 모아보기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은 “상반기까지는 금리 및 물가 상승으로 인한 자본시장 손실 흡수 및 완충이 지속될 것이나, 이후 금리/물가 상승 둔화 및 경기의 완만한 회복 기대감이 시장에 반영되면서 자본시장 지수 상승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최병철닫기최병철기사 모아보기 현대차증권 대표이사 사장의 경우 증권업 전망에 대해 “흐림” 속에서 기회를 제시했다. 최병철 대표는 “브로커리지(위탁매매) 부문, IB 부문은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경제 상황 속에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매우 어려운 시장이 예상되나, 고유자산의 운용 측면에서는 새로운 투자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판단했다.
오창훈 토스증권 대표이사는 “금리상승 기조는 2023년 중 조절될 것으로 보이지만 높아진 금리 수준과 매크로(거시경제) 불확실성을 고려했을 때 투자수요 회복에는 좀 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제시했다. 오창훈 대표는 “경제 불황과 호황 사이클은 10년 주기로 반복되어 왔고, 이러한 시기일수록 시장을 예측하기 보다는 본질에 집중하고 내실을 다지는 장기적인 시야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우종 SK증권 대표이사 사장은 주식, 채권 모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할 정도로 강세로 출발한 점에서 2023년 증권업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수출 전망이 밝지 않아 기업이익의 회복을 기대하기에는 이른 상황이고, 부동산 발(發) 신용경색도 마무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지목했다.
전우종 대표는 “증권업은 과거와 달리 주식시장 의존도가 많이 낮아져서 경기가 나쁠 경우 증시 약세에 따른 수익감소를 채권운용 및 발행시장과 기업구조조정, NPL(부실채권) 등 기업금융에서 만회하는 구조”라며 “그러나 그간 수익 기여가 컸던 부동산 금융에서는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조달금리 상승과 충당금 설정 등으로 경영에 부담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자산관리·토큰증권·탄소금융·글로벌 ‘눈독’
2번 ‘증권업에서 사업기회가 기대되는 미래 성장동력은 무엇이고, 어떻게 준비 및 대응하고 있습니까?’라는 ‘새 먹거리’에 대한 질문에 대해 디지털 금융플랫폼 구축과 모바일 자산관리에 주목했다. STO(토큰증권), 탄소배출권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사업 경쟁력 강화에도 힘을 실었다.황현순 키움증권 대표이사 사장은 “테크(tech)와 데이터 기반 다각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금융플랫폼 포지션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기존 플랫폼 혁신을 통한 대변신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현순 대표는 “조각투자, STO 등 신규 서비스 및 상품을 아우르는 플랫폼 역할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또 UX(사용자경험), 데이터랩(DataLab), 마이데이터(Mydata)로 연결되는 빅데이터 체계 시스템을 통해 독보적인 디지털금융플랫폼의 위치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박정림 KB증권 대표는 미래 키워드로 온라인 자산관리, 글로벌, STO,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비즈니스를 제시했다. 박정림 대표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뉴욕, 홍콩 등 현지법인 중심 글로벌 영업기반을 공고화하고 밸류업을 위해 디지털 기반 현지법인 자체 사업경쟁력 강화와 본사 사업부문의 글로벌 역량 제고를 통한 사업기회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정림 대표는 “ESG 투·융자 강화, 탄소배출권 시장 진출, 넷제로(Net Zero) 이행을 위한 파이낸싱 수요 대응 등 선도적 시장지위 확보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은 “해외법인의 글로벌 IB(투자금융), 트레이딩, WM(자산관리) 비즈니스를 확장함과 동시에 국내 자본이 글로벌 투자를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해외주식 주간거래, 인도 직접투자와 같은 투자 인프라 서비스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며 “빅데이터와 AI(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한 자산관리를 통해 디지털 자산관리 시장에서 초(超)격차를 추진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전우종 SK증권 대표도 수 년 전부터 정책 및 감독당국의 규제수준에 맞추어 STO와 디지털자산관리 관련 비즈니스를 준비해왔다고 강조했다.
전우종 대표는 “벤처기업 펀블과 함께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을 이미 운영하고 있으며, 관련 경험을 바탕으로 부동산뿐만 아니라 미술품, 신재생에너지, 탄소배출권 분야에서도 사업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벤처기업 인피니트블록에 지분을 투자하고 리서치 경험을 공유하면서 디지털 커스터디(수탁) 사업 진출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오창훈 토스증권 대표는 테크핀(TechFin) 증권사로서 “코로나 이후 국민들의 주식 보유와 관심이 크게 확대되며 개인투자자의 투자 생활 전반을 다루는 투자 플랫폼으로서 기회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브로커리지 이외 영역으로 무리한 확장보다는 모바일 투자경험을 계속해서 혁신해 나가는 게 여전히 토스증권의 최우선 순위”라고 강조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는 “거대한 대고객 금융투자 플랫폼화”를 신성장 동력으로 꼽았다. 정영채 대표는 “글로벌 거점을 활용해 선진시장의 경우 전통자산 중개 기능에 더해 디지털 대체투자 플랫폼을 확장해 투자상품 다변화에 집중하고, 동남아시아 등 성장시장에서는 유망한 핀테크 기업을 발굴하고 대상 투자기구를 확대해서 고수익 투자상품을 국내에 공급하고자 한다”고 제시했다.
기대 정책은 STO(토큰증권) 제도화
3번 ‘글로벌 자본시장 및 투자업계 동향 중 최근 가장 주목하는 이슈, 키워드는 무엇입니까?’에 대해 박정림 KB증권 대표는 “변동성이 심한 환경 속에서도 꾸준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S&T(세일즈 앤 트레이딩) 부문의 전체적인 운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 왔고 미국의 투자은행 등 선진사례를 참고하여 다양하게 연구해 조직개편을 했다”고 말했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은 “산업측면에서 챗GPT 등 AI(인공지능) 산업의 급발전에 주목하고 있다”고 제시하기도 했다.
4번 ‘2023년 정부 당국의 자본시장 정책/제도’에 대한 질문에 대해 증권 수장들은 STO(토큰증권)에 대한 기대에 한 목소리를 냈다.
황현순 키움증권 대표도 “기존 법제 하에서 허용되지 않았던 토큰증권 발행을 허용하고 안전한 유통체계를 마련하겠다고 금융당국에서 발표한 내용처럼, 다양한 자산의 증권화를 통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박정림 KB증권 대표는 “STO를 통해 다양한 권리의 증권화가 가능해지면서 발행자는 기존 증권에 비해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할 수 있고, 투자자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상품에 투자할 수 있어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양화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에 대응해 STO 플랫폼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5번 질문으로 어떤 증권사가 되고 싶은 지 목표를 묻자 디지털 금융투자 플랫폼 선점을 키워드로 하는 답변이 다수였다.
오창훈 토스증권 대표는 “고객 친화적이고 직관적인 경험을 통해 투자하면 첫 번째로 생각나는 서비스가 된다는 비전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병철 현대차증권 대표는 “고객의 편의성 제고를 위해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개선, 마이데이터 업그레이드 등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림 KB증권 대표는 “모든 판단과 의사결정에 있어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시하고, 고객경험 중심 금융투자플랫폼을 구현하기 위해 속도감 있는 개선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황현순 키움증권 대표는 “조각투자, 데이터 기반의 대출 및 카드 중개 등 새 먹거리를 발굴하고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독보적 넘버원(No.1) 디지털금융플랫폼 완성을 통해 경쟁우위 확보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는 “고객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증권사가 되고 싶다”며 “대(對)고객 자문역량을 고도화하고, 고객 관점에서 최적의 플랫폼 인프라를 구축하며, 지속성장 가능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 영토 확장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은 “투자를 통해 자본시장을 선도하는 증권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해외투자를 통해 국부를 창출하고 연금 비즈니스에 투자하여 개인연금, 퇴직연금 시장을 선도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신성장 국가와 산업, 신규 비즈니스에 과감히 투자하여 자본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STO, 리테일 기반 증권사 유리” “자발적 탄소배출권 부상”
금융위원회는 2023년 2월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했으며, 올해 상반기 중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제도화를 추진하기로 했다.김세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기존 유동화가 어려운 자산을 위주로 토큰화가 가능해지면서 증권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BM(비즈니스모델)이 추가된 것”이라며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STO를 통한 자금 조달 수요 증가를 기대할 수 있어 리테일 기반 증권사가 시장 선점에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제시했다.
국내 증권사들은 잠재력이 큰 자발적 탄소 시장(Voluntary Carbon Market, VCM) 선점에 도 힘을 싣고 있다.
탄소배출권 시장은 두 갈래다. 먼저 탄소감축 의무가 있는 규제 대상 기업이 배출권을 사고 파는 규제적 탄소 시장(CCM, Compliance Carbon Market)이 한 축이다. 또 감축 대상에 속하지 않은 기업, 기관, 비영리조직(NGO) 등이 자율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활동으로 확보한 탄소 크레딧을 거래하는 자발적 탄소 시장(VCM)이 있다.
금융감독원에 ‘자발적 탄소배출권에 대한 자기매매 및 장외거래 중개 업무’를 부수업무로 보고한 국내 증권사는 2023년 2월 현재까지 8곳이다.
하나증권(2022년 3월)을 시작으로, 한국투자증권(4월), KB증권·SK증권·NH투자증권(7월), 신한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8월), 삼성증권(11월)까지 모두 2022년 한 해 동안 자발적 배출권 시장 진출이 이뤄졌다.
정부도 배출권 시장 활성화에 힘을 싣고 있다. 환경부는 2023년 1년간 기존 산업은행, 기업은행,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SK증권을 비롯 신규로 KB증권, 신한투자증권을 추가해 총 7개 배출권 거래 시장조성자가 활동하도록 하고 있다. 또 증권사가 보유할 수 있는 배출권의 한도도 50만톤으로 상향됐다.
향후 배출권 수요 확대를 고려하면 자발적 탄소 시장(VCM) 확대를 필연적으로 보는 견해가 높다.
성지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자발적 탄소시장의 부상과 금융회사의 신규 사업기회 검토’ 리포트에서 “ESG 경영 강화, 탄소절감 노력 확산으로 배출권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자발적 탄소 시장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전망”이라며 “신규 배출권 창출이 보다 중요한 자발적 시장 성장과 함께 금융회사의 역할도 중개·파생상품 중심에서 프로젝트 기반 배출권 창출 업무로 빠르게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선은 기자 bravebambi@fntimes.com,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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