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에서만 16년째
송호성 사장은 ‘현대차맨’일까, ‘기아맨’일까. 그는 1988년 현대차에 입사해 2007년 임원으로 승진하며 기아로 적을 옮겼다. 현대차에서 19년 정도 일했고, 기아에서 16년째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기아맨’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대부분 현대차에서 바로 대표로 임명되거나 옮긴 후 몇년 지나지 않아 대표가 된 이들과 비교하면 더 그렇다. 송 사장은 13년 최장 기간 기아에서 재직하다가 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역대 대표 가운데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이해도가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송 사장은 주로 해외 관련 영업전략 파트에서 근무하며 글로벌 시장 전문가로서 활약했다. 프랑스판매법인장, 수출기획실장, 유럽총괄법인장, 글로벌사업관리본부장 등이 그가 맡았던 역할이다.
2020년 기아를 이끈 첫 해, 국내 중형세단 시장에서 기아 K5가 현대차 쏘나타를 이겼다. 그해 3세대 K5와 8세대 쏘나타가 각각 풀체인지(완전변경)된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맞붙었다. 8만 4550대를 판매한 K5는 6만7440대에 그친 쏘나타를 1만7000여대 앞섰다.
이어 2021년에는 승용차(세단+SUV) 내수 판매량에서 4만여대 차이로 현대차를 이기더니, 작년엔 7만대 차로 벌렸다.
소형SUV에서는 기아 셀토스(4만 3095대)가 코나(8388대)를 크게 누르고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준중형SUV 기아 스포티지(5만 5394대)는 현대차 투싼(3만 2890대)을 눌렀다.
게다가 중형SUV 기아 쏘렌토는 6만 8902대가 팔리며 가장 많이 팔린 승용차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시장에서 독보적 강자 현대차 준대형세단 그랜저 6만 7030대를 2000여대 차이로 제쳤다. 국내 시장에서 SUV가 세단을 꺾고 연간 판매 1위에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사명변경 승부수
지난 2021년 1월 기아는 사명을 기아자동차에서 자동차를 떼고 현재 이름으로 변경했다. 1990년 이후 31년 만이다.자동차 산업 구조 변화에 따라 사명 변경 필요성은 이해가 간다는 반응이다. 다만 대다수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바꾸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비용 문제 때문이다. 사명을 바꾸면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사업장과 대리점 등 모든 곳 디스플레이를 바꿔야 한다.
그래서 기껏해야 차량에 새기는 로고를 변경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실제 기아는 이번 사명변경으로 8000억원 이상 비용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송호성 사장은 “고객 목소리가 변화의 이유”이라며 “전통적인 제조 중심 사업에서 탈피해 새롭게 구상하는 혁신적 모빌리티 제품과 서비스로 고객 니즈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개편한다”고 말했다.
슬로건도 바꿨다. ‘젊은 기아’ 이미지에 기여를 했던 ‘파워 투 서프라이즈(The Power to Surprise)’에서 ‘무브먼트 댓 인스파이어스(Movement that inspires)’로 변경했다.
이에 맞춰 기존에 딱딱한 느낌의 엠블럼도 필기체로 흘려 쓰는 방식으로 바꿨다. 기아는 “70년 넘는 세월 동안 변하지 않는 기아 사업의 핵심은 사람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며 “이는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도 변하지 않을 DNA”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디자인 철학 ‘오퍼짓 유나이티드(Opposites United, 상반된 개념의 창의적 융합)’도 발표했다.
새 디자인 철학은 첫 전용 전기차 EV6에 처음 적용했다. 기존처럼 단순한 선과 면을 사용하면서도, 때로는 과감하게 위로 뻗는 디자인 요소를 곳곳에 적용해 역동성이 한층 강조된 개성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앞서 북미에서는 자동차 이름을 일부 변경하기도 했다. 옵티마에서 K5로, 세도나를 카니발로 바꿨다. 즉 국내 차명과 통일한 것이다.
그동안 해외 시장에서 기아는 ‘저가 자동차’라는 이미지가 있던 게 사실이었다. 차명 변경은 혁신된 상품성에 대한 자신감의 반영이었다. 이미지를 쇄신할 적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형을 이긴 전기차 EV 시리즈
송호성 사장이 생각하는 변화는 단순히 껍데기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사업과 조직 전반의 구조를 완전히 바꾸기 위한 조치다.그는 기존에 수립한 중장기 대변혁 프로젝트 ‘플랜S’를 이어받아 매년 성과를 점검하고 메세지를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송 사장은 플랜S 핵심으로 전기차, 모빌리티 서비스, 목적기반모빌리티(PBV) 등 3대 사업을 제시했다.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사업은 전기차다. 특히 전용 전기차 EV6는 지난해 ‘유럽 올해의 차’에 등극했다.
EV6가 인정받은 부분은 2900mm 휠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넓은 실내공간이다. 여기에 차량 외부로 일반 전원을 공급할 수 있는 V2L, 18분 만에 10%→80% 충전하는 초급속 충전 시스템 등 전기차 혁신기술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장점은 최종 3위를 차지한 아이오닉5와도 대부분 공유한다. 그럼에도 심사위원단은 “EV6가 더 완성도 높고 매력적 디자인을 하고 있고, 스포티한 주행감성도 갖췄다”고 평가했다.
기아는 올 상반기 두 번째 전용 전기차 EV9을 출시한다. EV9은 대형 전기SUV다. 현대차는 대형 전기SUV 콘셉트 세븐에 기반한 아이오닉7을 2024년 출시할 예정이다. 기아가 현대차보다 1년 더 빨리 대형급 전기차 시대를 여는 것이다.
송 사장은 “EV9에는 레벨3 수준 자율주행 기술이 탑재될 것”이라며 “제로백은 5초대, 1회 충전시 최대 주행가능거리는 540km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처럼 송 사장은 전기차 사업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송 사장은 ‘CEO 인베스터데이’를 통해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88만대를 판매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같은 행사에 나와 2030년 판매 목표를 120만대로 36% 올려잡았다.
2027년까지 매년 2종의 전기차를 추가해 총 14개 라인업을 구축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커넥티비티·자율주행 기술 중심으로 상품성도 강화한다.
2025년 출시되는 모든 신차에 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커넥티비티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한다. 2026년에는 주요 시장의 모든 신차에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적용한다.
이를 바탕으로 송 사장은 “2026년 시가총액 100조원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시총 26조원에서 4년 만에 3배 이상으로 키우겠다는 공격적 선언이다.
작년 영업익 사실상 8조원대
송호성 사장은 기존 사업을 통해 실적도 고공질주를 하고 있다. 이는 대대적 사업구조 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기아는 2021년 영업이익 5조 657억원을 달성했다. 사상 최대 이익을 냈던 2020년 보다 145.1% 증가하며 신기록을 썼다.
2022년 영업이익은 6조 8000억원대로 더욱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 3분기 세타2 엔진 리콜 비용 1조 5000억원을 치렀음에도 또 다시 크게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런 일회성 비용만 없었다면 영업이익 8조원대를 바라볼 수 있는 놀라운 성과다.
송 사장이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다. 최근 기아 성과는 반도체 수급난 등 생산차질에 따라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덕을 본 부분이 있다.
이에 따라 차량 가격을 비교적 쉽게 인상할 수 있었고, 해외 시장에선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의 딜러 인센티브를 지불하는 등 수익성 개선에 도움을 받았다.
올해 상황은 반대다. 생산차질 완화에 더해 경기침체에 따른 자동차 수요 하락이 전망된다.
하지만 기아는 “모든 자동차 브랜드가 혜택을 본 작년과 달리, 올해야말로 개선된 상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시기”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다만 6년째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중국 시장은 고민거리다. 기아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합작법인 장쑤위에다기아(KCN)는 지난해 3분기말 기준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부채총액이 2조 2792억원으로 자산총액 2조 1240억원을 넘어섰다. 돈을 버는 것은 고사하고 본사 차원 자금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기아는 전기차를 통해 반등을 꾀하고 있다. 회사는 올해 EV6를 중국에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곽호룡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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