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준과 한국은행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시장이 유례없는 침체기를 맞이한 상황임에도 불구,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 시장에서는 불황이 무색한 호황이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재개발·재건축에서 더 나아가 리모델링이나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도시정비 사업의 저변이 확대된 것이 이유로 지목된다. 여기에 신규 택지발굴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사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검증된 지역의 도시정비 사업이 높은 효율을 나타낸다는 점도 건설사들의 도시정비 사업 확대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내년까지 미 연준의 꾸준한 금리인상이 예고된 가운데, 국내 기준금리도 이에 발맞춰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건설사들의 이 같은 ‘수주 잔치’도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점점 무게를 얻고 있다. 현재 펼쳐지고 있는 건설사들의 수주 호황이 사실상 ‘라스트 댄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부산 최대 재개발로 불리는 해운대구 우동3구역 재개발사업은 물론, 최근 포스코건설 등과 함께한 ‘성원토월 그랜드타운’ 리모델링·대우건설 등이 함께한 성남 ‘수진1구역 재개발사업’ 등을 수주하며 연내 도시정비 수주 9조3000억원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3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것은 물론, 창사 이래 최초로 9조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지난 주말 하반기 재개발 최대어였던 ‘한남2구역’ 재개발사업을 수주한 대우건설은 4조6000억원 규모의 수주고를 달성하며 도정 누적수주 2위로 올라섰다. 공사비 1.2조 규모의 매머드급 사업인 부산 ‘촉진3구역’ 재개발사업을 수주한 DL이앤씨도 4조2000억원여의 수주고를 올리며 4조클럽에 가입했다.
◇ “당장 시장 안좋아도 장기적 관점 투자”…재무구조 개편·전담팀 확대
이 같은 수주가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각 건설사들이 재무구조 개편을 통해 건전성 강화에 나선 것이 꼽힌다.
NICE신용평가 기준으로 현대건설은 2018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지속적으로 업계 최고 수준인 AA-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해외공사에서의 원가율 변동위험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채산성을 시현 중인 주택부문의 풍부한 수주 잔고, 우수한 자본 완충력 및 재무적 융통성을 가져가고 있는 것이 높은 평가의 비결로 꼽히고 있다.
GS건설은 지난해 말 장단기 신용등급이 A+/Stable, A2+로 상향조정됐다. 건축·주택부문에서의 우수한 분양실적을 바탕으로 견고한 이익창출을 시현하고 있고, 해외공사의 체질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추가적인 대규모 손실 발생가능성은 완화된 점이 상향 요인으로 지목됐다.
최근 대우건설 역시 장단기 신용등급이 A/Stable, A2로 상향조정됐다. 해외현장 손실축소 및 채산성이 양호한 주택현장의 다수 확보로, 회사의 영업실적 및 재무안정성이 개선됐다는 점이 상향 요인이었다.
건설사들의 이 같은 도시정비사업 집중이 결과적으로 불가피한 부분이라는 해석도 있다. 수도권 핵심지역의 신규 택지발굴이 지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수익성과 사업성을 챙길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도시정비 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 한 전문가는 “지방 단지들의 미분양은 아마 내년에도 갈수록 심해질 텐데, 건설사 입장에서도 분양을 원활히 진행하려면 도심 내 수요층 선호도가 큰 곳에서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카드”라며, “특히 정부가 도시정비 관련 규제 완화 스탠스를 가져가고 있으니 지금 당장 금리 상황이 안 좋다고 수주를 주저할 것이 아니라 미리 수주를 해놓고 장기적으로 시장을 지켜보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건설사들은 기존의 재개발·재건축에서 한 발 나아가 리모델링과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비교적 수익성이 적은 사업에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2020년 현대건설은 주택사업본부 내 리모델링 전담조직을 구성해 역량강화에 나섰다. 대우건설과 GS건설, 포스코건설, 롯데건설 등 내로라하는 대형사들 역시 리모델링 조직을 신설하거나 강화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리모델링 사업 경쟁이 강해지면서, 각 건설사들의 ‘하이엔드’ 브랜드를 리모델링 사업에 적용하려는 움직임도 늘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현대건설이 잠원동아 리모델링 사업에 제안한 디에이치 브랜드다. 롯데건설 역시 청담 신동아아파트 리모델링에 프리미엄 브랜드 ‘르엘’을 제시하기도 했다.
◇ 9년 8개월만에 최악 치닫고 있는 건설경기, 레고랜드발 PF대출 부실 우려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수주경쟁이 차후 건설사들에게 리스크로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분간 미 연준과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비롯해 건설업계의 자금 융통 환경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제 원자재값 상승, 현장 인력 부족과 이에 따른 인건비 상승 등도 부담으로 작용하며 시장의 냉기류를 부추기고 있다.
금리 인상과 원자재값 상승, 레고랜드발 부동산PF 부실화 우려 등 복합적인 요인이 겹치며, 지난달 건설 체감경기는 9년 8개월만에 최악의 수치를 기록한 상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충재)은 31일 “10월 CBSI가 전월 대비 5.7p 하락한 55.4로, 9년 8개월래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건설기업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CBSI는 기준선인 100을 밑돌면 현재의 건설 경기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낙관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의미다. CBSI는 지난 8월부터 3개월 연속 감소하였으며, 2013년 2월 54.3 이후 9년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55.4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박철한 연구위원은 “레고랜드발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우려로 체감경기가 악화된 것으로 보이며, 특히 중견건설사들의 기업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이 지수하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까지는 시중유동성도 풍부해서 주택사업이 세분화·다각화되면서 소위 ‘먹거리’가 많았다면, 올해는 수주만이 아니라 분양조차 선별적으로 한다고 할 정도로 자금 융통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또 수주를 해도 현장 관리직이나 근로 인력이 부족해서 공사 기한 맞추기도 어렵고, 조합들의 요구사항도 늘어나는 실정이다 보니 이런 부분에서의 피로감도 건설업계를 망설이게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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