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동학’과 ‘개미’는 언어학적 의미에서 살펴보면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동학개미란 말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1894년 녹두장군 전봉준이 ‘반외세·반봉건’의 기치를 내걸고 일으킨 ‘동학농민운동’에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를 의미하는 개미를 더해서 만든 신조어다.
실제 동학개미들의 ‘파워’는 예상보다 강했다. 2020년 3월19일 코로나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아 코스피 지수가 1457.64로 연중 최저점을 찍으며 외국인들이 수십조의 주식을 팔아치웠을 때 이를 모두 받아낸 세력이 바로 동학개미였다. 이후 불과 두달여 만인 2020년 5월 코스피 지수가 다시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인 2천선으로 올라선 데는 동학개미들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뜨거웠던 동학개미들의 ‘투심’이 사그라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학개미들의 국내증시 이탈현상은 객관적 수치로도 확인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증시대기자금으로 분류되는 투자자예탁금은 62조5005억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 최저 수준이다. 예탁금은 올해 첫 개장일만 해도 71조727억원에 달했지만 이후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다.
한국증시를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어가 있는데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한국 기업의 주가가 비슷한 규모의 외국계 기업 주가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는 것을 뜻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가장 큰 원인은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고 기대작으로 주목받으며 지난 1월 코스피시장에 화려하게 입성한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상장을 앞두고 국내외 기관들은 수요예측에서 무려 1경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주문을 써냈다. 국내 IPO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개인투자자 442만명이 참여한 공모주 청약에선 역시 사상 최대인 114조원의 증거금이 들어왔다. 가히 ‘광풍’이라고 부를 만한 청약열기였다.
신기록의 이면엔 개미들의 ‘눈물’도 있었다.
알려진 것처럼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의 배터리 부문을 떼어내 만든 기업이다. LG화학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은 미래가 유망한 배터리 사업을 보고 투자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알짜 사업 부문을 따로 떼어내(물적 분할) 이른바 ‘쪼개기 상장’을 했으니 기존 LG화학 주주들로서는 울화통이 치미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의 분할과 상장 발표 이후 100만원를 넘나들던 LG화학 주가는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2월22일 현재 59만원대로 주저 앉았다.
기존 회사의 유망 사업을 분할해 자회사를 만든 뒤 상장시키는 물적 분할은 해외 증시에서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대표적인 경우가 구글과 유튜브다. 구글이나 유튜브는 누구나 아는 글로벌기업이지만 모두 비상장기업이다. 이들 기업에 투자하고 싶다면 모회사인 알파벳의 주식을 사야 한다.
회사 최고경영진들의 ‘도덕적 해이’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부추기는 요소다.
카카오페이 류영준닫기류영준기사 모아보기 대표와 임원들은 지난해 11월 상장한 카카오페이 주식 44만주를 상장 한달여 만인 12월10일 시간외거래로 대거 내다 팔았다. 이들이 챙긴 차익만 무려 900여억원에 이른다. 이들이 주식을 판 시점은 공교롭게도 주가에 호재로 작용하는 코스피200지수 편입일이었다. 주주 가치를 보호해야 할 상장사 경영진이 대형 호재에 맞춰 차익실현에 나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최근 발생한 오스템임플란트 직원의 2천억원대 횡령사건이나 신라젠 상장폐지 결정건도 모두 맥락은 비슷하다.
투자자들 입장에서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국내 주식시장을 믿고 투자할 수 있겠느냐”는 하소연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불과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유력 대선후보들은 개인투자자들의 흔들리는 표심을 잡기 위해 앞다퉈 주식관련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식시장 제대로 바꾸겠습니다’라는 글을 통해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앞서 윤석열닫기윤석열기사 모아보기 국민의힘 후보는 1월 주식양도세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주식관련 투자를 한번이라도 해본 투자자 입장에선 거부할 이유가 없는 반가운 공약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정비보다 더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국내 증시 전반을 휘감고 있는 ‘불신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꾸는 일의 첫 단추는 자명하다.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장질서를 확립하는 일에 모두가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더 많은 동학개미들이 한국증시에 작별을 고하기 전에.
김재창 기자 kidongod7@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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