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은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퇴직연금 상장지수펀드(ETF) 출시 등을 통해 상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수수료 무료 정책 등을 통한 적극적인 마케팅 정책을 펼치고 있다. 퇴직연금 특화 센터를 설치하고 전용 고객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증권사와의 차별화 전략도 실행 중이다.
2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최근 퇴직연금 ETF를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15일부터 확정기여형 퇴직연금(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 고객이 ETF에 투자할 수 있는 퇴직연금 ETF를 판매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현재 20종의 ETF를 운영하고 있고 상품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1월 말과 지난달 초에는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 각각 퇴직연금 ETF를 선보였다. KB국민은행은 연초 출시를 목표로 제반 사항을 준비하고 있다. NH농협은행도 퇴직연금 ETF 거래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개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다른 은행과의 차별화를 위해 향후 상장 리츠 운용도 가능하도록 개발하는 등의 편입상품 다양화를 검토하고 있다.
은행들이 퇴직연금 ETF 상품 출시에 나서는 이유는 퇴직연금 잔고를 지키기 위해서다. 퇴직연금 계좌에서 ETF 투자가 가능한 증권사로 가입자들이 대거 빠져나가자 일종의 방어전략을 꺼내 든 것이다. 상품 라인업을 다양화해 250조원이 넘는 국내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복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체 퇴직연금 잔고는 255조원으로, 은행이 이 중 절반가량인 130조원을 차지하고 있다.
퇴직연금은 안정적으로 은행 예금에 넣어두는 게 관행이었지만 최근 몇 년 새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해부터 펀드보다 ETF 투자를 선호하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직접 ETF로 운용하며 실시간으로 수익률을 확인할 수 있는 증권사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주식투자 열풍이 불면서 퇴직연금 직접 투자에 대한 관심도 커졌기 때문이다.
◇ ‘수수료 0원’으로 반격…마케팅 잰걸음
증권사들은 수수료 면제 정책을 꺼내 드는 등 공격적인 영업과 동시에 높은 수익률을 강점으로 내걸면서 자금 유입을 이끌어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증권업계의 IRP 평균 수익률은 6.76%로 은행권(2.50%)의 2.7배였다. DC 수익률도 증권업계(5.91%)가 은행권(2.10%)의 2.8배 높았다. 높은 수익률을 바탕으로 증권사의 IRP 시장점유율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증권업계의 IRP 시장점유율은 지난 1분기 22%에서 3분기 26%까지 높아졌다. 적립금 규모도 올 들어 10조원을 넘어섰다.
이 같은 추세에 맞서 은행들도 수수료를 무료로 책정하고 나섰다. 우리은행은 지난 10월부터 비대면 채널을 통해 IRP에 가입한 모든 고객에게 운용·자산관리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있다. 우리은행은 퇴직금에 대해 운용관리 수수료와 자산관리 수수료 명목으로 각각 0.15%, 0.18~0.2%가량을 받아왔다. 개인부담금에 대해서는 운용관리 수수료로 0.02%, 자산관리 수수료로 0.18~0.2%를 부과했다.
신한은행은 오는 7일부터 DB형 퇴직연금 수수료를 일부 인하하기로 했다. 인하 예정인 수수료는 ‘운용관리수수료율’로 그간 적립자산 평가액의 0.1~0.4%를 부과했지만, 이를 0.07~0.4%로 낮출 예정이다. 현재 주요 은행의 퇴직연금 수수료는 0.5% 수준이다. 수수료를 전액 면제해주면 그만큼 퇴직연금 수익률이 올라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을 앞두고 은행에서 증권사로의 퇴직연금 머니무브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은행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별도의 상품 운용지시를 하지 않으면 사전에 지정된 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에 자동으로 투자하는 제도를 말한다. 가입자는 디폴트옵션에서 타겟데이트펀드(TDF), 장기가치상승 추구펀드, 머니마켓펀드(MMF), 인프라펀드(뉴딜펀드), 원리금 보장상품 등 5가지 상품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가입자의 의사 표시가 없으면 수익률이 낮은 원리금 보장상품에 투자한다. DC형 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는 내용의 퇴직급여법(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은 지난달 1일 국회를 통과한 상태다.
◇ ”수익률 높여라”…자산관리센터·고객관리시스템 강화
은행들은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한 자구책도 마련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퇴직연금 고객관리제도’를 전면 도입하고 ‘퇴직연금 전용 고객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고객·수익률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대1 맞춤형 ‘퇴직연금 자산관리 컨설팅센터’와 은퇴준비부터 은퇴 이후 연금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프라인 상담센터인 ‘KB골든라이프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및 친환경 펀드, 수익구조 확정형 펀드 등 새로운 연금 운용상품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연금자산관리의 목표인 장기수익률 개선을 위해 투자 기간과 투자성향을 고려한 ▲유형별 모델 포트폴리오 ▲TDF ▲인공지능(AI)이 투자하는 로보어드바이저 ‘하이로보’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상품 라인업을 지속 확대하고 연금자산 운용에 적합한 TDF·타깃인컴펀드(TIF) 상품 편입 비중을 늘려나가기로 했다. 특히 연금사업부 내 마케팅팀과 상품 전담 인력의 협업을 통해 상품과 마케팅 업무 간 시너지를 끌어올릴 계획이다.
농협은행은 ‘NH퇴직연금 자산관리 상담센터(가칭)’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고금리 원리금보장상품과 실적배당형 상품도 늘려나가기로 했다. 저축은행 예금 비중 확대를 위해 저축은행과의 신규협약을 우선 추진할 방침이다. 만기도래 시 콜센터를 통한 고금리 원리금보장상품 추천과 포괄적 운용지시 적용도 확대한다. 독자적인 전략상품 출시와 사후관리 강화로 실적배당형 상품도 늘린다. 특히 매분기 고객 투자성향별 추천 포트폴리오 정보를 제공하고 정기적으로 비대면 세미나를 열어 추천 포트폴리오 안내와 성과 홍보를 실시할 예정이다.
◇ 영업지원 기능 확대 조직개편…퇴직연금 업무 본부 집중화도
은행들은 디폴트 옵션 도입에 선제적 대응을 위해 조직정비에도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연금사업 담당 부서의 연금 마케팅 및 고객수익률 제고 등 영업 지원 기능을 확대 재편했다. 자산관리그룹 내 연금사업본부를 신설하고 산하에 기존 연금사업부와 신설 연금지원부를 뒀다. 연금사업부에는 상품·마케팅팀이 새로 생긴다. 상품라인업 및 포트폴리오 구축, 고객수익률 관리, 시니어마케팅 등을 담당한다. 연금지원부는 연금 영업 지원, BPR, 계리·정산등의 업무를 맡는다.
신한은행은 2016년 퇴직연금 업무를 영업점에서 본부로 집중화 ‘퇴직연금 전문센터’를 구축했다. 이에 더해 ‘고객관리센터(가칭)’를 신설해 수익률 관리를 위한 핵심 역할을 부여할 예정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디폴트 옵션 도입은 원리금 보장상품 위주로 운용되고 있는 퇴직연금계좌의 수익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TDF 중심 상품안내, 포트폴리오 제안 등 수익률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은 농·축협 현장지원반을 신설해 다양한 요구사항에 대응할 계획이다. 퇴직연금 사업의 본부 집중화를 통해 전문성과 업무 효율성도 높일 방침이다. 퇴직연금 업무지원센터의 집중업무를 확대해 영업점 업무부담을 낮추고 오류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퇴직연금 전용 콜센터의 고객 상담 역할을 강화하고 영업점 직원 문의 전화는 본부로 일원화한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관련기사]
가장 핫한 경제 소식! 한국금융신문의 ‘추천뉴스’를 받아보세요~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