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강화로 대출금리가 급등하고 은행이 이자로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자 금융당국이 진화에 나섰다. 금융위는 최근 대출금리 상승이 국채, 은행채 등 시장금리가 오른 영향이라고 밝혔다. 금융시장에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도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은 주요 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들을 소집해 대출금리 산정체계 등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말부터 9월 말까지 은행권 신용대출금리는 3.75%에서 4.15%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74%에서 3.01%로 각각 0.40%포인트와 0.27%포인트씩 상승했다. 주요 시중은행의 대출 취급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달에는 대출금리 상승폭이 더욱 커졌을 것이란 추정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대출금리 상승이 가산금리나 우대금리 인상보다 준거금리가 오른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금융사들은 통상 대출 준거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한 뒤 우대금리를 빼서 대출금리를 산출한다. 대출 준거금리에 해당하는 국채, 은행채는 세계적 긴축 흐름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경계감 등으로 하반기부터 크게 오르고 있다. 금융위는 “가산금리나 우대금리 등이 차주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측면이 있으나, 상대적으로 그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글로벌 유동성 축소가 계속되면서 이 같은 금리상승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금융위는 “지난달 금리상승은 글로벌 신용팽창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로 접어들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며 “앞으로 국내외 정책 및 시장상황 전개에 따라 당분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당국은 대출 규제로 인해 가계대출 금리가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반박했다. 우선 이달 12일 기준 4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3.31∼4.84%)가 신용대출(3.39∼4.76%)보다 높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비교 대상이 된 주택담보대출 상단금리가 신용등급 3등급의 장기(35년) 주택담보대출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신용등급 1등급에 주로 단기(1년)로 취급되는 신용대출 금리 상단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대출자들이 실제로 받아간 취급금리를 봐도 여전히 주택담보대출이 신용대출보다 크게 낮은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9월 신용대출 신규 취급금리가 은행(4.15%)가 2금융권(3.84%)보다 높은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는 연초부터 지속된 것으로 최근 부채 총량 관리의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금융위는 “이러한 현상은 사실상 은행과 같은 고신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호금융권의 적극적인 영업에 따른 것"이라면서 “그간 풍부한 유동성으로 은행권과 2금융권 간 자금 조달비용 격차가 축소됐고 2금융권을 대상으로 상대적으로 완화된 규제가 적용된 점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최근 가계대출 예대마진이 급증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코로나19 이후 은행권의 예대금리차가 확대됐다”면서도 “올해 들어 9월까지 예대 금리 차는 2%포인트 내외에서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3분기 은행권 이자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한 것도 예대금리차 확대보다 가계대출 누적 규모 자체가 늘어난 것에 주로 기인했다는 분석이다. 금융위는 “다만 대출금리가 다시 급격하게 상승한 10월에 예금금리 조정은 지연되면서 예대금리차가 확대됐을 가능성이 있어 이 부분에 대해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분할상환 전세대출이 거주비를 높이고 재산형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반박하고 나섰다. 분할상환 때 2년 만기 고금리 비과세 적금 가입과 동일한 효과가 있으며 이는 금리 상승기에 전세대출을 상환하면서 저축 등으로 재산을 형성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달 현재 전세 대출금리는 3.3~4.0%로 대출 상환 때 이자소득세 납부가 필요 없고 대출 납부액은 연간 300만원까지 소득공제가 가능한 점을 언급한 것이다. 예컨대 월 80만원 정기적금(연간 이자 1.2%) 2년 납입으로 얻을 수 있는 세후 이자수익(20만3000원)을 월 24만50000원의 전세대출(연간 이자 3.6%) 원금상환으로 동일하게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최근 금리 상승세는 신용팽창이 신용위축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판단된다”며 “금융위와 금감원은 금융불균형 해소를 통해 금리상승기의 잠재위험을 최소화하는 한편 시중 예대금리추이 등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대출금리 상승세와 관련해 시중은행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열고 금리 산정체계 등을 살펴보기로 했다. 금감원은 오는 19일 오후 금감원 수석부원장 주재로 8개 주요 은행의 여신담당 부행장 등이 참석하는 ‘은행 가계대출 금리 운영현황 점검회의’를 연다. 금감원은 이날 회의에서 은행권의 대출금리 산정체계 및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개선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또 금리 상승기에 금융소비자들의 금리 부담이 줄어들도록 금리인하요구권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논의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이 최근 금리상승을 둘러싼 논란에 진화에 나선 것은 “가산금리 폭리를 막아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할 정도로 여론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이 청원인은 “기준금리와 채권금리보다 은행의 가산금리가 더 먼저, 더 크게 올라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금융당국에서 실태를 파악하고 조치를 취해 달라“고 촉구했다. 다만 금융당국이 “정부가 대출금리에 직접 개입하기 어렵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다가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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