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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창립 52주년 (1)] 세계 1등의 시작 ‘갤럭시’ 탄생기

기사입력 : 2021-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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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건희 회장 “회사 문 닫아도 불량 없애라”
애니콜부터 갤럭시까지…1위 신화 이어져

▲ 갤럭시S시리즈. 사진 = 삼성전자이미지 확대보기
▲ 갤럭시S시리즈. 사진 = 삼성전자
[한국금융신문=정은경 기자]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IM(IT+모바일)부문은 올해 3분기 매출 28조 4200억 원, 영업이익 3조 3600억 원을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감소하면서 모바일 시장 규모가 확대됐고, 3세대 폴더블폰 갤럭시Z폴드3와 Z플립3의 높은 수요가 실적을 견인했다.

삼성전자 모바일은 반도체와 함께 전체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효자 사업 부문이다. 지난 7월 LG전자가 휴대폰 사업에서 철수한 이후 국내 유일 휴대폰 제조사가 됐다.

삼성전자는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휴대폰 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세계 1위 모토로라를 상대로 자체 개발한 ‘SH-100’을 내놨다. 국내 기업이 최초로 제작한 휴대전화다. 두꺼운 사각 형태 디자인으로 ‘벽돌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휴대폰 사업의 시작 ‘애니콜’


‘벽돌폰’ 출시 6년 뒤인 1994년 삼성전자는 통화 성공률을 대폭 향상시킨 ‘SH-770’을 선보였다. 삼성전자 최초 휴대폰 브랜드 ‘애니콜(Anycall)’ 첫 작품이다.

애니콜은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잘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첫 등장 이후 2011년까지 무려 20년 넘게 삼성전자 휴대폰 브랜드로 역할을 이어갔다. 애니콜 첫 모델인 SH-770 광고에는 ‘한국 지형에 강하다’라는 카피가 등장했다.

실제로 삼성전자 개발진도 애니콜 이름값을 위해 전국 곳곳을 돌며 통화 품질 테스트를 진행했다.

시작은 순조롭지 않았다. 당시 휴대폰 1위 업체인 모토로라 점유율을 넘어서기 위해 생산량 증가에 집중한 나머지 불량률이 높아진 탓이다.

이에 1995년 3월 9일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은 “고객이 두렵지도 않냐”며 “시중에 판매 중인 핸드폰을 전량 수거 후 소각하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애니콜 등 휴대폰을 비롯해 무선전화기, 팩시밀리 등 불량제품 15만대, 약 500억 원어치를 모두 수거해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 전량 폐기 처분하는 ‘애니콜 화형식’을 거행했다.

이후에도 이 회장은 “세계 일류가 되면 이익은 지금의 3~5배 난다”며 “1년간 회사 문을 닫더라도 불량률을 없애라”며 품질 향상을 강조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1994년 11.8%나 됐던 불량률을 2%대까지 떨어뜨렸다. 품질경영으로 소비자 신뢰를 얻은 애니콜은 이듬해인 1996년 모토로라, 노키아를 제치고 국내시장 점유율 51.5%를 차지하며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애니콜 화형식 이후 품질경영을 지속한 결과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 타이틀을 내걸며 혁신적 기술력을 입증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애플워치, 갤럭시워치 등 스마트워치 조상격인 시계형 휴대전화 ‘와치폰’을 1999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이후에도 ▲세계 최초 MP3 기능 탑재 ▲세계 최초 카메라 탑재 ▲세계 최초 컬러 휴대폰 ▲세계 최초 TV 탑재 등을 선보이며 혁신을 거듭해왔다.

특히 2002년 선보인 세계 최초 컬러 휴대폰 ‘SGH-T100’은 이건희 회장이 디자인에 적극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건희폰’이라 불리기도 했다.

1998년 선보인 클램셸(clamshell)과 같은 모양이지만, 각진 모양 대신 원형으로 디자인해 그립감을 높였다. 이 휴대폰은 출시 2년만에 삼성전자 사상 최초로 단일 모델 기준 판매량 1000만 대를 기록하며 첫 텐밀리언셀러 휴대폰이 됐다.

2004년 안테나를 내장한 휴대폰 ‘SGH-E700‘도 이 회장이 직접 챙긴 제품으로 ’제2의 이건희폰‘이라 불렸다. 한 유럽 일간지가 ‘휴대폰 분야 메르세데스 벤츠’라고 극찬한 이후 ‘벤츠폰’으로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졌다.

이 제품은 삼성의 두 번째 텐밀리어셀러가 됐다. 업계 관계자는 “벤츠폰을 계기로 삼성과 모토로라 점유율이 완전히 역전됐다”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블루블랙폰’, ‘울트라에디션’, ‘SGH-E250’ 등 많은 제품들이 판매량 1000만 대를 돌파하며 소비자들에게 ‘삼성 휴대폰=명품’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 안드로이드와 함께 등장한 ‘갤럭시’ 신화


지금은 사라진 휴대폰 공룡 노키아와 더불어 삼성이 휴대폰 글로벌 1위 경쟁의 정점에 도달해 있을 무렵, 시장은 혁신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새로운 휴대폰 시대의 여명을 열고 있었다.

2007년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한 손으로 들어올린 ‘아이폰’은 이후 휴대폰 시장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삼성전자도 스마트폰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시행착오를 밟아야 했다. 위기였다. 그러자 이건희 회장이 다시 나섰다. 2008년 삼성 특검으로 경영에서 물러났다 2010년 경영에 복귀하면서 ‘갤럭시’ 브랜드를 내건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당시 출시된 스마트폰이 ‘갤럭시S’다.

이 회장은 경영 복귀 직후 스마트폰 사업부에 갤럭시S 판매량을 100만 대까지 끌어올리라고 주문하는 등 휴대폰 사업을 직접 챙겼다. 전작인 ‘옴니아’에서 지적받은 ‘무늬만 스마트폰’이라는 혹평에서 벗어나고자 스펙 차별화에 중점을 뒀다.

이 회장과 삼성 경영진의 노력 끝에 갤럭시S는 출시 70일 만에 국내 판매량 100만 대를 돌파했다. 7개월 뒤에는 글로벌 판매량 1000만 대를 기록하며 스마트폰 최초로 텐밀리언셀러에 등극했다. 당시 구글 부사장인 앤디 루빈은 갤럭시S에 대해 “최고 중 최고”라며 극찬했다.

역대 최고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갤럭시S2’는 출시 5개월 만에 판매량 1000만 대를 기록했다. 같은 해 처음 선보인 갤럭시노트로 흥행을 이어가며 삼성은 2011년 3분기 처음으로 애플, 노키아를 제치고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이후 해외에서는 삼성 갤럭시가 안드로이드폰 대명사가 됐다.

2019년 삼성전자는 클램셸, 바(Bar)에 이은 새로운 폼팩터인 폴더블폰 ‘갤럭시Z폴드’를 출시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세계 최초 타이틀은 중국에 빼앗겼지만, 기술력에서 큰 차이가 나 현재 폴더블폰 대명사는 삼성전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의 글로벌 점유율이 다소 감소하면서 위기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애플 아이폰에, 중저가 시장에서는 샤오미·비보 등 중국 제조사들 추격이 거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올초 ‘폴더블 대중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지난 8월 3세대 폴더블폰 ‘갤럭시Z폴드3’와 ‘Z플립3’를 내놓으며 시장 불안감을 일시에 날려버렸다. 폴더블폰은 출시 한 달 만에 국내 판매 100만 대, 글로벌 판매 200만 대를 기록하는 등 흥행을 지속하고 있다.

김성구 삼성전자 IM부문 상무는 “폴더블폰 시장이 플래그십 시장에 중요한 카테고리로 자리 잡고 성장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은경 기자 ek7869@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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