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폐쇄되는 점포 수가 50곳 안팎이었던 몇 년 전에 비하면 점포 감소세가 가파르다. 4대 시중은행은 올 하반기에도 최소 130개 점포를 추가 폐쇄할 예정이다.
한편에서는 AI로 인한 위협적인 소식도 들린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AI 도입을 통해 투자자문 인력을 감축한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사를 가장 많이 두고 있는 미국에서는 길거리에 은행이 사라지고 있다.
노령층이나 장애인 등 금융취약계층의 금융 이용에 불편이 커진다는 우려에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계속 점포나 인력 감축에 제동을 걸었지만, 빠르게 디지털화하며 변하는 시장을 멈춰 세우기는 어려워 보인다.
◇ 대도시권 위주로 사라져가는 은행 점포
금융감독원은 14일 ‘2021년 상반기 국내은행 점포 운영현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국내은행 점포 수는 총 6326개로 지난해 말(6405개) 대비 79곳이 줄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감소세는 더 뚜렷하다. 14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대비 1년 6개월 만에 기준 5대 은행의 점포 수는 191개(국민 63개‧신한 19개‧하나 52개‧우리 43개‧농협 14개)가 줄었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 하반기에도 5대 은행 점포는 130여 개가 축소될 예정이다. 2012년 말 7681개였던 국내은행 점포 수와 비교하면 17.64%(1355개)가 줄어든 모양새다.
폐쇄된 점포는 대도시권 시중은행 위주로 드러났다.
시중은행 점포는 올 상반기 54곳이 사라졌다. 이는 전체 폐쇄 점포 중 68.4%를 차지한다. 지방은행은 대구은행 위주로 15곳이 줄었고, KDB산업은행 등 특수은행은 10곳이 줄었다. ▲국민·하나은행이 각각 18곳 ▲산업은행 8곳 ▲DGB대구은행 7곳 ▲우리은행 6곳 ▲신한은행 5곳 ▲씨티은행 4곳이 폐쇄됐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경기·인천과 광역시를 포함한 대도시권 점포가 61곳 감소했다. 폐쇄된 점포 전체의 77.2% 비중이다. 대도시권을 벗어난 지역에선 18곳이 줄었다.
이에 지방은행 관계자는 “디지털화가 계속되며 핀테크(금융+기술),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가 활기를 치고 있는데, 지방은행으로서는 디지털화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지역 기반 은행이다 보니 점포를 확 줄일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지역 균형 발전과 지역 상생의 가치를 위해 금융당국이 금융소외계층을 생각해서 새로운 대책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 인력 감축도 이어져... 해외도 마찬가지
점포 축소는 인력 감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 3월 기준 17개 은행의 직원 수는 11만5022명으로 1년 전보다 2423명(2.1%)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279명 늘어나며 감소세를 막는 듯했지만, 올해 다시 늘어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 가속화가 계속되며 5대 은행들은 퇴직금을 많이 쥐여주고 연령대를 낮추며 ‘희망퇴직’을 서둘러 추진했다. 신한은행은 올해 들어 유례없이 두 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추세에 올해 상반기에만 희망퇴직으로 은행원 2600여 명이 짐을 쌌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당시 희망퇴직 시행을 두고 “이번 희망퇴직으로 조직 활력 유지를 위한 인재 선순환과 새로운 핵심인재들의 채용 여력을 확보해 미래 금융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신한은행은 하반기 250여명 채용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다른 은행은 현재 정보통신(IT) 분야 수시채용만 창구를 열어둘 뿐 채용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은행권 상반기 순이익이 ‘최대 실적’으로 7조원을 거둔 만큼 금융당국이 ‘대규모 일자리 발굴’을 요청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러한 감소세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해외 사정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최근 영국 국제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웰스파고, 씨티그룹, JP모건 등 미국 대형은행은 올해 상반기에만 250곳 지점을 폐쇄했다. 하나금융연구소가 발표한 ‘은행 점포 폐쇄 대안으로 등장한 공동점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는 3324개 점포가 문 닫았다. 온라인과 모바일 뱅킹을 활용하는 고객이 늘어나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쳐 ‘효율성’을 중심으로 디지털 전환이 더 빨라졌기 때문이다.
4대 은행(국민·신한·우리·하나)은 올 하반기에만 점포 130곳을 추가로 통폐합하기로 했다. 상반기(51곳)의 2.5배 규모다. 지난해에도 연말에만 점포 수가 300개 이상 축소된 바 있다.
◇ ‘디지털 점포 구축’으로 출구 전략 모색
은행들도 난감한 상황이다.
디지털로 산업과 문화가 모두 바뀌어가는 상황에 점포를 찾는 고객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고령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대도시권의 경우 평일 오전이면 손에 꼽을 정도로 방문객이 적을 때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 은행들은 출구 전략을 찾고 있다.
그 첫 번째로 ‘디지털 점포 구축’을 본격화한다. 비대면 중심의 챗봇 상담이나 모바일 채널 확장은 그대로 진행하고, 기존에 핵심 금융 업무를 맡던 오프라인 영업점도 AI 기술을 도입해 새롭게 탈바꿈한다.
하나은행은 최근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과, 신한은행은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과, 우리은행은 세븐일레븐과 손잡았다. 편의점처럼 소규모 점포를 지역 곳곳에 뿌리내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고객에게 지역별 맞춤형 서비스를 더 폭넓게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어려운 노인이나 장애인 등 금융 소외계층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아울러 기존 직원들은 더 전문적인 분야에 배치해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AI 기술 발전은 사람의 지적 노동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 적용돼 은행 업무 전반을 바꿀 것으로 전망되지만, AI가 제공하는 정보만으로 업무가 완결되지 않기 때문에 은행원들 역할을 대체하기보다는 업무 파트너로 활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디지털 점포 증가보다 현재 우리가 잘 아는 일반 점포가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빠를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점포 운영에 관한 은행의 자율성은 존중하되 노령층 등 금융 이용자 불편이 최소화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이 사전 영향 평가 등 ‘점포 폐쇄 공동 절차’를 충실히 운영하도록 하거나 점포 운영현황 공시 확대를 통한 시장규율 기능을 강화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은행 지역재투자 평가 시 점포 감소에 관한 불이익도 부여할 계획이다. 점포 감소 수에 비례해 감점하되, 광역시 외 시·군 지역은 감점 폭 확대하는 등이다. 지역재투자 평가 결과는 ▲결과 공시 ▲경영실태평가 반영 ▲시·도 금고 및 법원 공탁금 보관은행 유치 평가 등에 쓰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고령층 등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방안이 확충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병호 부산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혁신과 전환은 불가피한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군이나 면 단위 작은 지역에 고령 인구 등 금융 취약계층이 많이 있다”며 “실제로 스마트폰도 활용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ATM기를 배치하거나 전문 상담원을 따로 배치하는 등 점포 통폐합에 따른 부작용도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미수 서울디지털대학교 금융소비자학과 교수도 “은행의 디지털 혁신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지만, 금융 취약계층에 관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다”며 “거점 중심으로 대면 서비스는 다양하게 운영하되 작은 소규모 지역의 경우 금융 취약계층이 이용할 수 있게 우체국 등을 금융기관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 재편이 일어나는 지금의 상황에 섣불리 미래를 예단해서도 안 되고, 과도하게 우려해서도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임홍순 빅트리 대표이사는 저서 <인공지능 인사이트>를 통해 “점포 축소나 일자리 감소가 경제 상황이나 청년이 느끼는 ‘취업난’을 봤을 때 우려할 상황은 맞지만, 이는 혁신적인 기술이 출현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두려움이기도 하다”며 “과거 산업혁명이나 인터넷‧모바일 등 기술 진보가 산업구조 전반을 재편할 때도 일자리를 둘러싼 갈등과 우려는 컸지만, 결과적으로는 산업 생산성이 향상됐고 대체되는 일자리보다 신규 일자리가 훨씬 늘어났다”고 전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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