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 기구와 각국 중앙은행은 기후 리스크와 사회적 책임 요소를 산업과 금융의 가치 평가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기후 변화와 관련한 규제와 비용이 증가하면서 배터리, 재생에너지 등 환경 중심 포트폴리오 전환은 기업에 숙명이 됐다.
최근 재계 화두는 단연 ESG(환경·사회·지배구조)다. 국내 주요 기업 중 ESG를 내세우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멋져 보이기 위해 ESG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ESG가 곧 돈이자 생존인 시대에 돌입했다.
과거 기업은 매출과 이익 증대를 ‘지상 과제’로 여기고 경영에 임해왔다. 당연히 ‘재무 성과=기업 성과’였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이에 따라 기업도 ‘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비(非)재무적 가치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실제로 ESG 평가는 외부 투자와 직결된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10월 이사회에서 석탄 신규 사업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석탄 사업을 유지하면 새로운 투자 유치가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실제 북유럽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 노르디아자산운용은 2020년 10월 삼성물산에 석탄 투자 금지를 권유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한화그룹이 분산탄 사업을 떼어낸 것도 ESG 투자와 관련 깊다. 분산탄은 넓은 지역에 파편을 뿌리는 무기로, 유럽은 분산탄을 비인도적 무기로 지정했다. 관련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에 투자를 금지한다.
또 ESG 경영과 주가 간 상관관계가 높아진 것도 큰 이유다. ‘SK하이닉스 청주공장 화학물질 사고’, ‘현대오일뱅크 서산공장 화학 사고’,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산안법 위반’, ‘LG화학 인도 유독물질 유출’ 등 지난해 국내 기업 화학물질 유출 사고는 적지 않았고. 이때마다 기업 주가는 무너졌다. 주가를 움직이는 변수는 많지만, ESG 경영은 최근 들어 주가에 심각하게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ESG 3요소 중 G(지배구조)는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보고서도 나왔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한 보고서를 통해 “기업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주가 방어에 성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로 ‘환경’의 중요성이 여느 때보다 높아진 것도 ESG 트렌드를 가속화했다. 코로나19가 환경 파괴에 따른 인재로 해석되면서다. 또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등장도 ‘환경’이라는 키워드를 각인시켰다.
그는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고 2050년까지 순탄소배출량 ‘제로’를 목표로 세우겠다는 등 ‘친환경’을 제1의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전 세계 그 어느 기업이 ESG 경영을 소홀하게 여길 수 없는 중요한 이유가 된 셈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 구체적 성과 논하기엔 ‘시기상조’
오래 전 ESG 개념을 도입한 해외와 달리 국내는 지난해부터 논의를 시작한 상태다. 그러나 시작이 늦었다고 해서 글로벌 트렌드로 급부상한 ESG를 등한시할 수는 없는 일. 이에 국내 10대 그룹을 중심으로 ESG 흐름에 대응하며 활로를 모색하는 중이다. 노력의 결과 단기간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리는 데 성공한 기업도 일부 등장했다.
환경 분야에서는 삼성SDI와 LG화학이 우수한 평가를 받는다. 탄소 감축에 활발히 나서고 있어서다. 삼성SDI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배출권 거래제에 2015년부터 참여하고 있다.
2019년에는 오스트리아 법인이 전력 사용량 중 75%를 재생에너지에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또 지난해 천안 사업장을 중심으로 EES(Energy Effciency System)를 적용해 그린에너지 사용을 시작했다. 향후 모든 사업장에 그린에너지를 도입할 계획이다.
LG화학은 제품 생산 공정에서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 자원 선순환 활동으로 플라스틱 재활용과 폐배터리 ESS 재사용 정책을 도입했다. 매년 환경 개선을 위한 투자금을 낸다. 2019년에만 1,466억원을 투자했다.
2015년 이후부터는 시설을 신설하거나 증설할 경우 온실가스 영향 분석을 시행하도록 내부 규정을 마련했다. 미주·유럽 사업장은 발전 업체로부터 직접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SK그룹은 ‘사회적 가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한다. 그룹을 이끄는 최태원닫기최태원기사 모아보기 회장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만큼 성과도 뚜렷하다. 일회성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고 그룹이 보유한 기술로 사회 문제 해결에 나선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는다. 대표적인 예가 SK텔레콤의 ‘행복커뮤니티 인공지능 돌봄’이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 분석 역량을 기반으로 사회적 기업·지자체와 함께 독거노인의 고독·안전·치매 문제를 해소하는 데 주력한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는 소상공인과의 상생 전략으로 사회적 가치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네이버 전자상거래 플랫폼 스마트스토어는 빠른 정산 서비스를 지원해 소상공인들의 현금 흐름이 원활하도록 돕는다.
지배구조 이슈에서는 IT 기업 카카오의 활약을 눈여겨볼 만하다. 기업 지배구조 헌장을 제정해 공정한 지배구조 확립을 위한 규정을 만들었다. 헌장에는 주주·이사회·감시기구·이해관계자·시장에 의한 경영 감시 등 5개 영역에 대한 운영 방안을 담았다. 올해 들어 이사회 내부에 김범수 카카오 회장을 주축으로 한 ESG 위원회를 설립해 활발히 운영 중이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민정 기자 minj@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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